Pleasure booth2015.12.10 22:05


# 봉콘의 제왕: 대구 원정대

- 제가 여태까지 가봤던 콘서트들은 모두 티켓 구입에 별다른 애를 먹지 않았습니다. 애초부터 공연 소식을 늦게 접해서 좋은 자리는 진작에 다 팔려나가고 남은 구석진 자리를 주워가는 식이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번에는 티켓 예매가 오픈되기 전에 어찌어찌 공연 소식을 입수했습니다. 저로서는 꽤나 드문 일이죠. 이왕 이렇게 된 거 각 잡고 좋은 자리를 차지해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3년만에 아이유를 더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기회니까요.


허나 현실은 냉정한 법, 데스크탑의 시간을 초 단위까지 교정하는 수고가 무색하게 부산 공연 예매는 처참히 실패로 돌아가고 맙니다. 앞자리는 커녕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좌석 등급을 불문하고 단 한 자리도 남지 않게 되었죠. 대학생 생활 수 년간 수강신청을 하면서 쌓아온 반사신경이 졸업하자마자 모두 퇴화하기라도 한 건지 원... 결국은 집에서 30분 남짓인 부산 벡스코는 포기하고 대구로 원정을 가기로 마음먹습니다. 물론 예매에 성공했을 때의 이야기지만요. 대구 예매 실패하고 광주까지 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입니다.


- 부산 공연 예매에서 쓴 맛을 본 덕분인지 대구 공연 예매는 꽤 좋은 자리를 건져내며 성공했습니다. 스테이지 기준으로 10열이라... 그렇죠, 이래야 공연 가는 맛이 나죠. 부산이 아닌 대구로 가게 되면서 왕복 유류비와 통행료, 그리고 소요시간이 몇 배로 뛰었지만 이쯤 되면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가 된 상황입니다. 주말이었기에 고속도로 상황이 썩 좋지는 않을 것이라 예상했고 그 예상은 제대로 적중해서 갓길 없는 구간에서 고장 차량이 길을 막아주시는 바람에 교통체증 크리를 맞고 내비게이션이 표시하는 예정시간보다 40분 정도 늦게 공연장에 도착했습니다.





- 서울 공연장에는 봉갤에서 봉콘 축하 애드벌룬을 걸거나 아이유의 팬클럽들이 쌀화환을 진열해놓은 모습을 볼 수 있었다는데 대구는 그런 거 없더군요. 서울이 첫 공연이라 거기에 몰빵이 된 건지...


제 블로그의 유입 키워드를 보면 디씨 아이유 갤러리가 왜 '봉갤'이냐고 묻는 분들이 종종 있는데 봉갤의 '봉'은 아이유의 닮은꼴 연예인으로 자주 언급되는 신봉선에서 유래된 명칭입니다. 아이유 팬덤 내에서는 문장이나 단어를 마무리짓는 '유'와 더불어 아이유를 상징하는 글자로 자리매김했죠. 마찬가지 이유로 아이유 콘서트의 약칭을 '봉콘'이라고 부르는 사람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 오피셜 굿즈들의 가격이 참... 완장에 '유애나(아이유 공식 팬클럽)'가 적힌 걸 보면 굿즈 제작에는 유애나가 관여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럭저럭 적절한 가성비로 서울과 부산 공연에서 호평이었던 머그컵은 제가 공연장에 도착한 시점에서는 교통체증과 함께 증발한 지 오래였습니다. 야광봉의 가격을 보고 있자니 비상용으로 챙겨둔 잼 프로젝트 야광봉을 쓸까 싶기도 했지만 그래도 콘서트장에서의 반쯤 필수품인데다 공연 기념품이 되기도 하는지라 야광봉을 구입하기로 합니다.





...그런데 말이죠, 이거 크기가 상당하군요. 조명 색상만 빨간색이라면 사진 오른쪽에 보이는 차량용 비상신호기 대용으로 써도 손색이 없을 것 같습니다. 마침 점멸등 기능도 있고 말이죠. <CHAT-SHIRE>의 테마 색상이 보라색인지라 보라색 야광봉을 사용할 줄 알았는데 이번 공연에서도 야광봉의 색상은 어김없이 네온 옐로우입니다. 아이유의 응원도구 지정색상은 이걸로 밀고 가는 모양이군요.





아이유 전국투어 콘서트 <CHAT-SHIRE>

2015/12/06 대구 엑스코 컨벤션홀 공연 셋리스트


~ 오프닝 스테이지

01. 새 신발

02. 누구나 비밀은 있다

03. Obliviate

04. Red Queen


05. Zezé

06. 너랑 나

07. 분홍신


08. 푸르던

09. 무릎

10. 싫은 날


~ 지붕 세트

11. 나의 옛날 이야기

12. 너의 의미


13. 스물셋

14. 애니메이션 주제가 메들리

14-1. 달빛의 전설 (<달의 요정 세일러 문> OP)

14-2. Catch You, Catch Me (<카드캡터 체리> OP)

14-3. 내 꿈은 파티시엘 (<꿈빛 파티시엘> OP)

14-4. 모험의 시작 / 우리는 모두 친구 (<포켓몬스터> OP/ED)


15. 레옹 (feat. EPIC HIGH)


~ 관중석 스탠딩

* 게스트 : EPIC HIGH


16. 있잖아 (Rock ver.)

17. 하루 끝

18. 금요일에 만나요


~ 포토 타임


19. 좋은 날


~ 앵콜

20. 비밀 <밴드 소개>


~ 앵앵콜

21. 마음

22. 안경

23. 을의 연애

24. Drama

25. Boo

26. 마쉬멜로우

27. 편지




# 엑스코, 그리고 CHAT-SHIRE

- 공연 예매를 대행한 인터파크의 대구 공연 댓글란에서 더 좋은 공연장들 내버려두고 왜 하필 엑스코냐는 불평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직접 찾아가보니 그 불평을 이해할 수 있겠더군요. <Real Fantasy> 공연[링크] 때와는 달리 오케스트라 세션 없이 밴드 세션만 갖췄는데도 이미 스테이지가 꽉 차있었습니다. 아이유가 솔로 가수이니 망정이지 인원수 많은 그룹은 여기서 공연하기 힘들겠군요. 음향시설의 상태도 그리 좋은 수준은 아니었고 말이죠. 하지만 이러한 소규모스러운 구성이 후술할 앵앵콜에서는 오히려 더 도움이 된 감도 있습니다. 이와는 별개로 아이유는 대구 공연이 가장 큰 걱정거리였다고 하는데 이번 전국투어 중 좌석 수가 가장 많았기 때문이라는군요.


- 콘서트 <CHAT-SHIRE>는 동명의 미니앨범 <CHAT-SHIRE>와 동일한 테마를 사용합니다. 23살의 아이유에게 일어나고 보이는 일들을 소설과 동화 속 주인공들에게 빗대어 표현한다는 것이 그 골자죠. 챗셔라는 제목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체셔 캣'에서 유래한 것이고 말이죠. 저기 야광봉에도 고양이 한 마리 그려져 있잖습니까.


스크린을 통한 연출로 테마를 설명하고 셋리스트 간의 공백을 연결해나가는 것은 이전의 아이유 공연들과 유사한 맥락이지만 어째 음반 <CHAT-SHIRE>에서 보여준 것과 같은 날카롭고 섬찟한 감각은 느끼기 힘듭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공연의 테마와 스크린을 통한 연출이 유기적이었던 이전의 공연들과는 달리 스크린과 아이유의 무대가 따로 노는 경향이 컸다는 것이죠. 사실 음반 <CHAT-SHIRE>는 무거운 주제를 가벼운 제목과 테마로 눈속임하는 트릭을 사용하는지라 음반 챗셔를 콘서트에서 그대로 연출할 수 있어도 안 했다고 보는 편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 아이유의 말말말

- 대구 공연에서의 진 주인공은 물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생수 한 병이 무대와 무대를 이으면서 공연의 분위기를 휘어잡는 핵심 소품으로 맹활약했습니다. 물을 뿌리거나 하는 등 특별한 연출용으로 사용한 것도 아니고 단지 마시기만 했을 뿐인데... 네. 그렇습니다. 지은씨 말씀대로 물을 많이 마시면 피부가 좋아지고 건강해집니다.


- "이거지!"

떼창 싫어하는 가수가 어디 있겠냐만은 아이유도 떼창에 대한 감상을 말합니다. 바로 위의 멘트죠. <너랑 나>의 가사 "손 틈새로 비치는" 뒤에 이어지는 "아이유 참! 좋! 다!"라는 떼창 응원을 굉장히 좋아한다면서 관객 중 한 명이 즉석에서 실험대상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3천여 명의 관중들이 고○○(신원미상, 남성) 씨의 얼굴은 몰라도 이름은 확실히 기억하게 되었죠. "지영이 참좋다 같은 거... 좋잖아요? 설마 이 중에 한 명은 있겠지..."


- 아이유의 코멘트 중 몇몇은 이전의 서울 공연이나 부산 공연의 소식을 어느정도 알고 왔다는 것을 전제로 둔 듯 합니다. 제제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는 점이나 농담조로 물병 던지면 안 된다고 말하거나 본무대 엔딩곡인 좋은 날을 부르기 전에 '절차'를 강조한다거나...


- 부산 공연 끝나고 스탭들에게 갈굼을 먹었다는 이야기를 꺼냈는데 그 이유인 즉슨, 초반에 흥이 너무 돋은 바람에 기분이 좋아져서 수다가 굉장히 늘었기 때문이라고 하는군요. 30분 넘게 노래는 안 하고 멘트만 하는 등 반쯤 토크 콘서트가 되었다나 뭐라나... 그래서 오늘은 토크를 줄이고 공연의 비중을 늘리겠다고 했는데... 결국은 "오늘도 실패했지만 후회는 없다!"라며 장렬하게 자폭하셨습니다. 마약방송 하던 시절 어디 안 가는군요.


- 아이유의 공연은 언제나 금요일입니다. 2015년 12월 6일은 달력에 일요일이라고 적혀있지만 그래도 금요일입니다. 그리고 흥에 겨우신 이지은 여사님께서 한 말씀 남기십니다. "에... 그렇다고 술을 마시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 덕후 스페셜

- <CHAT-SHIRE> 공연에서는 상당히 균형잡힌 남녀성비를 보여줬지만 아이유의 첫 단독공연인 <Real Fantasy>에서는 아이유 추산 남녀성비 9:1일 정도로 남성팬들의 비중이 높았기에 여성팬들의 애정이 고팠다면서 여성팬들을 위한 선물이라는 멘트를 남기고 들어간 무대는 다름아닌 소녀만화 애니송 메들리 3종 세트. 마지막 곡인 <내 꿈은 파티시엘>은 아이유가 한국판 오프닝을 담당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작 무대가 끝나고 아이유가 남긴 감상평은 "카드캡터 체리 도입부부터 떼창이 벌써 나왔는데, 근데 더 웃긴 건 남자 목소리야..." 80~90년대 출생 남자분들, 이제는 솔직해집시다. 안 보는 척 하면서 다들 봤잖아요.


부산에서 애니송 메들리의 남자덕후들을 위한 새 레파토리를 리퀘스트 받았다면서 <드래곤볼>, <슬램덩크>, <원피스>가 언급되었는데 이걸 들은 대구 팬들의 호응은 썩 좋지 않았습니다. 이게 만약 성사되었으면 아이유가 잼 프로젝트 멤버의 곡을 부르는 진풍경을 볼 수 있었을텐데... 잼프빠 입장에서는 아쉽군요. 남덕 여덕 가리지 않고 모두 묶을 수 있는 곡으로는 <포켓몬스터> 오프닝과 엔딩이 언급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즉석 무반주 떼창 무대. 이 광경이 웃겨서 뿜으려는 것을 참으면서 노래부르는 아이유는 덤입니다.




# 역습의 에픽하이

- 오프닝 무대의 <누구나 비밀은 있다>와 <Red Queen>, 지붕 세트에서의 <너의 의미>는 각각 피처링이 있는 곡이지만 초대가수에 대한 특별한 언급 없이 무대가 진행되었습니다. <Red Queen>에서 자이언티 피처링 파트를 공연 오리지널 버전으로 편곡하고 <너의 의미>에서는 관객분들께서 도와주셔야겠다면서 김창완 파트를 관객들에게 넘긴 정도죠. 그런데 <레옹>에서는 '남자가수가 안 왔다'라는 입질을 띄우더군요. 이 쯤에서 초대가수가 나오겠구나 싶었습니다. 2절이 끝나고 전광판에서 가사 대신 <EPIC HIGH>라는 문구가 나옵니다. 허허... 누가 나올까 싶었는데 예상 외의 거물이 나오셨습니다. 포인트는 미쓰라진의 깨알같은 레옹 코스프레.


한국 힙합 씬의 기반을 만들어놓았다는 평을 받는 에픽하이답게 관객들을 휘어잡는 능력은 무시무시했습니다. 비교적 얌전하던 바로 옆 자리 여자관객들이 에픽하이가 나오자마자 광분을... <Real Fantasy> 콘서트 때는 게스트 무대에서의 호응이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말이죠. '에픽하이 feat. 아이유'를 언급하거나 타블로가 캐스팅 비화와 아이유 관련 에피소드를 늘어놓으면서 에픽하이는 본인들 말대로 '워밍업'을 해놓고 퇴장합니다.


에픽하이가 퇴장한 후 <극한직업 경호팀 편>과 함께 아이유가 다시 등장하면서 관객들에게 감사를 표했습니다. 대외적으로는 "우리 팬들이 이 정도다!"라고 자랑하는 의미라지만 뒤에 이어진 멘트에서 아이유의 진의가 나오더군요. 멀리서 찾아와준 초대가수에 대한 예의라고 말이죠.




# 포토 타임

- 포토 타임은 <Real Fantasy> 공연 때와는 달리 특별한 연출 없이 진행되었습니다. 다만 코멘트가 꽤나 인상적이었는데 포토 타임이 끝난 후에는 대놓고 사진을 찍는 관객들이 많다면서 경호팀 안 오시게 '눈치껏' 촬영하라는 팁을 남겼습니다. 그래서인지 앵콜이나 앵앵콜로 가서는 아예 동영상을 녹화하는 사례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습니다. 유튜브 등지에서 앵콜 직캠영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었군요.


그래서 그 포토타임에서 어떤 사진을 찍었냐면요...










85mm 초점거리에 1.5 크롭 바디인 미놀타 7D 조합이니 실질적으로는 127mm에 달하는 망원 화각인데도 역부족이었습니다. 거기에 초점범위가 너무 좁아서 AF가 죄다 후핀이 난 건 덤입니다. 옆자리에 아빠백통이나 백사같은 장망원렌즈들이 심심치 않게 보이던데 이런 렌즈가 있어야 인터넷에 흔히 올라오는 그런 사진이 나오는 모양이군요. 아니면 아예 미친 척 하고 1~2열을 잡던가... 지은씨 미안해요. 예쁘게 나온 사진으로 올려달라는 당부는 못 지켰습니다.





덧붙여 크롭을 하지 않은 원본은 대략 이런 상태입니다. 이게 10열에서 127mm로 찍은 사진이라니...




# 콘서트 리미티드

- 아이유는 방송활동을 하지 않는 음반을 종종 출시하고는 합니다. <CHAT-SHIRE>도 그 중 하나죠. 그래서 아이유의 곡은 공연에서만 볼 수 있는 오리지널 소스가 많은 편입이다. <Real Fantasy> 공연에서는 미활동 싱글 <스무 살의 봄>에 수록된 <하루 끝>의 댄스 무대를 선보이더니 이번에는 <CHAT-SHIRE>의 타이틀곡인 <스물셋>의 댄스 퍼포먼스를 선보였습니다.


운동량으로만 따지면 <분홍신>이 가장 많지만 정작 <스물셋>이 본인의 댄스곡 중에서 가장 어렵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분홍신에게 끌려다닌다는 설정이라 허둥지둥대거나 헉헉거리는 것을 연기로 포장할 수 있는 <분홍신>과는 달리 <스물셋>은 노래와 함께 몸짓부터 표정까지 프로페셔널을 연기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하는군요. 정작 곡을 만들고보니 연말이라 스물 세 살로서 <스물셋>을 부를 수 있는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한탄(?)과 함께 내년에는 <스물넷>으로 불러야겠다는 넋두리도 함께 남겼습니다.


- 아이유의 곡 중 음원으로는 발매되지 않고 콘서트에서만 들을 수 있는 곡이 있습니다. 앵앵콜에서 선보인 <Drama>가 바로 그 곡이죠. 아이유가 이 곡은 모르시는 분들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는데 제대로 짚으셨습니다. 그거 제 이야기입니다. 이 외에도 앞서 언급했던 <Red Queen>의 어레인지나 "도대체 넌... 누굽니까?" 등 몇몇 곡의 가사 속에 섞어둔 귀여운 애드립도 공연에서만 볼 수 있는 재미있는 요소죠.




# 앵앵콜

- "내일 출근 안 해요?"

사실 '앵앵콜'이라는 단어는 대구 공연에서는 언급되지 않았는데도 공연후기에서 더블 앙코르가 앵앵콜로 불리는 것을 보면 서울이나 부산에서 이걸 앵앵콜이라고 한 모양입니다.


- 이번 공연에서의 앵앵콜의 의미는 단지 공연을 마무리하는 피날레 수준을 넘어 가수 아이유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중요한 시간이었다고 봅니다. 앵앵콜의 진행과 스테이지 구성은 콘서트 전체를 관통하는 <CHAT-SHIRE>라는 주제에서 가장 동떨어진 분위기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아이유가 <CHAT-SHIRE>를 통해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이야기를 조금 더 깊숙히 읽을 수 있는 과정이 되었죠.

- 앵앵콜의 선곡을 보면 짐작이 가시겠지만 앵앵콜은 느긋한 분위기로 진행됩니다. 시작을 맡은 <마음>과 <안경>이 아이유의 자작곡이었고 이를 계기로 아이유가 노래를 만들 때, 그리고 그 노래에 대한 뒷이야기를 함께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중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아이유의 휴식 이야기입니다.


아이유가 휴식을 할 때는 보통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멍하게 앉아 드라마를 보는 정도라고 하더군요. 의외로 연습시간 외에 노래를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하는데 이미 발매 직전에 너무 많이 들어서 질리고 아쉬운 점만 보이게 되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이번에 발매한 음반인 <CHAT-SHIRE>는 쉬는 중에라도 스스로 노래 부르는 것을 즐기고 연습을 하게 되더라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그러면서 노래 부르는 것을 생각보다 훨씬 더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고...


사실 가수가 노래를 좋아한다는 것이 별 것 아닌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멘트를 통해 아이유의 음반 중 전례가 없을 정도로 <CHAT-SHIRE>가 심한 홍역을 치르고도 아이유가 본인의 첫 프로듀스 작품인 <CHAT-SHIRE>에 대해 가지는 애착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라고 봅니다. 대구 공연에서는 <Zezé>에 대한 언급이 없었지만 서울 공연에서의 '여전히 사랑하는 곡'이라는 코멘트와 같은 답변을 한 셈이죠.


- <안경>은 톨스토이의 소설 <바보 이반>을 모티브로 만들어져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아이유가 밝힌 진짜 모티브는 아이유의 어머니였습니다. 라식 수술을 받고 보니 또렷하게 보이는 세상이 마냥 아름답게만 보이지는 않더라는 이야기죠. 이를 일기처럼 옮긴 곡이 <안경>이라고 합니다. '이 곡이 히트할까? 사람들이 들어줄까?'같은 고민은 완전히 배제하고 만들었다고 하죠.


- 서울 공연의 셋리스트를 슬쩍 보고 갔기에 앵앵콜로 3곡 정도 부르겠거니 싶었는데 자비로우신 아이유님께서 무려 7곡이나 하사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7곡만으로도 소규모 공연을 따로 짤 수 있을 정도로 구성도 좋았습니다. <을의 연애>는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뜬금없이 등장해서 뜻밖의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죠. "부산에서는 안 한 거예요~"





- 앵앵콜의 느긋한 분위기만큼이나 클로징 MC도 꽤나 익살스러웠습니다. 막창집에 회식 예약해놔서 사장님께서 기다리신다고... 막창집 사장님 의문의 1패 그나저나 대구 사람들, 아이유가 대구 하면 사과로 유명하다고 할 때는 다들 시큰둥한 반응이더니 대구막창 이야기 나오니까 왜들 그리도 열정적으로 바뀌셨습니까.




# 음반 <CHAT-SHIRE>와 콘서트 <CHAT-SHIRE>

-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이번 콘서트는 음반 <CHAT-SHIRE>와 타이틀과 테마를 공유하지만 그 분위기는 사뭇 다릅니다. 하지만 그 본질은 생각 외로 크게 다르지 않은데 음반에서는 아이유가 체셔 캣의 이미지를 빌려서 스물 세 살 아이유의 이야기를 했다면 공연에서는 체셔 캣의 가면을 벗고 아이유의 본 모습 그대로 스물 세 살 아이유의 이야기를 한 것으로 볼 수 있습죠.


기분이 좋으면 말이 많아진다는 아이유는 3시간 반에 걸쳐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실없는 농담부터 자신이 생각하는 음악과 공연, 그리고 거기에 얽힌 뒷이야기 등등... 하고 싶은 노래 위주로 불렀다는 아이유의 멘트대로 셋리스트를 이루는 곡들도 그 이야기의 일부일 겁니다. 세계관이 짜여진 음반 <CHAT-SHIRE>와는 또다른 의미로 아이유식 세계관이 반영된 셋리스트라고나 할까요.


음반 <CHAT-SHIRE> 특유의 세계관을 기대하고 공연을 찾아왔다면 구성에 다소 의문점이 들 수 있는 공연입니다. 하지만 가수 아이유를 찾아왔다면 이번 공연의 구성에 대해 불평할 사람은 없을 듯 하군요. 아이유 덕질을 하던 사람이라면 익히 알고있는 약간 애늙은이같으면서도 입담 좋고 익살맞은 그 아이유의 이야기를 가감없이 볼 수 있거든요. 공연 전반의 구성, 특히 앵앵콜의 구성을 보면 아이유가 하고 싶었던 공연이 이런 분위기라는 것을 직감하게 됩니다. 톱스타 아이유보다는 옆집 봉서이 지은이에 더 가까운 그런 모습 말이죠.



- 개인적으로 아이유의 음반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을 꼽으라면 <Modern Times>[리뷰]입니다. 그리고 <Modern Times>도 동명의 전국투어 콘서트를 연 적이 있죠. 안타깝게도 저는 여기에는 못 가봤습니다. <Modern Times> 공연에서는 어떤 모습을 선보였을지, 그리고 앞으로 아이유가 만들어갈 콘서트에서는 어떤 모습을 선보일지 기대를 하게 만드는 <CHAT-SHIRE> 공연이었습니다. 그만큼 이번 공연도 아낌없이 즐기다가 왔으니까요.




Posted by Litz Blaz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