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pad2025. 1. 20. 20:56

#0. 14년 동안 끓인 사골로 일궈낸 역주행의 전설

 

자동차와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 '역주행'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오면 부정적인 인상을 주기 마련입니다. 사전적인 의미의 역주행은 사고를 유발하는 행위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대중문화에서 사용하는 은어적인 의미로서의 '역주행'을 대입하면 이 차만큼 역주행이라는 단어에 어울리는 차가 있을까 싶습니다. 2011년에 데뷔한 이래로 꾸준히 경차 시장 꼴찌를 담당하다가 어느 시기를 기점으로 판매량이 치고 올라가더니 지금은 경차 시장에서 부동의 1위 자리를 굳히고 있죠.

 

이 차는 도로에서 정말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자가용 승용차를 비롯해서 각종 기업의 법인차와 공공기관의 관용차, 렌터카, 배달 차량 등 다양한 포지션에서 만날 수 있죠. 당장 저도 이 차를 회사 업무차로 타는 중이기도 하고요. 

 

 

이번 리뷰는 제 차가 아닌 카셰어링을 통해 대여한 차량으로 촬영하였습니다. 다만 대부분의 본문 내용은 회사 업무차를 1년 이상 굴리면서 경험한 내용을 기반으로 작성하고자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내돈내산 리뷰도, 업체 협찬 리뷰도 아닌 처음으로 빌린 물건 리뷰를 쓰게 되는군요.

 

과연 리츠 블레이즈라는 사람이 자가용도 아닌 차의 리뷰 포스트를 시간을 들여 쓰게 만들 정도의 이야깃거리가 있는지, 그리고 어째서 14년 전에 출시된 차가 풀 체인지 한 번 없이 지금까지 시장을 휘어잡을 수 있었는지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썰을 풀어보고자 합니다. 이번에 소개할 차는 기아 레이입니다.

 

 

 

 

 

 

#1. Introduction :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이번에 리뷰할 모델은 레이의 2차 페이스리프트* 모델, 프로젝트명 'TAM PE2'입니다. 프로젝트명을 보면 2세대 모닝(프로젝트 TA)의 파생 모델이며 2번째 페이스리프트를 거친 모델임을 알 수 있죠. 현대차그룹의 프로젝트명에서 'PE'는 'Product Enhancement'의 줄임말로서 통상적으로 페이스리프트를 의미합니다.

 

이 차의 공식 명칭은 '더 뉴 기아 레이'입니다. 현대차그룹은 2020년대 초반까지는 몇몇 차종의 페이스리프트 모델의 공식 명칭에 서브네임을 붙여 기존 모델과의 차별화를 시도했습니다. '스팅어 마이스터', '모하비 더 마스터', '싼타페 더 프라임' 등이 그 예시죠. 하지만 최근에는 차종을 불문하고 풀 체인지*에는 '올 뉴', 페이스리프트에는 '더 뉴'로 서브네임을 통일하고 있습니다. '쏘나타 디 엣지'라는 공식 명칭이 붙은 DN8 PE 정도가 예외 사례군요.

 

그런데 레이의 경우 이미 1차 페이스리프트 때 '더 뉴 레이'라는 이름을 받았기에 2차 페이스리프트도 같은 공식 명칭이 만들어질 상황이 되자 기아는 '더 뉴 기아 레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즉, 기아 더 뉴 기아 레이라는 해괴한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죠. 그냥 2차 페이스리프트는 서브네임을 붙여주는 편이 더 낫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세대교체가 여러 번 이루어진 차종은 차명만으로는 몇 세대 모델인지, 그리고 어떤 버전의 차를 지칭하는지 한 번에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공식 명칭 대신 프로젝트명으로 차종을 구분하는 방법이 자동차 업계인부터 자동차 동호인에 이르기까지 널리 통용되고 있습니다. 이번 리뷰에서도 마찬가지 이유로 각각 버전별 설명이 필요할 경우 2011년에 출시된 초기형 모델을 TAM, 2017년에 출시된 1차 페이스리프트 모델을 TAM PE(이하 'PE1'), 그리고 이번에 리뷰할 2차 페이스리프트 모델을 TAM PE2(이하 'PE2')로 지칭하도록 하겠습니다.

 

* 페이스리프트(Facelift) : 본래는 주름살 제거 수술을 의미하는 단어이지만 자동차 업계에서는 출시된 지 수 년이 지난 자동차의 기본적인 틀은 유지하면서 외관, 실내 등의 일부 요소를 변경한 모델을 의미합니다. 대부분은 디자인 변경과 편의사양 추가를 통한 상품성 개선을 중심으로 하지만 엔진, 변속기 등의 주요 구성이 바뀌거나 프레임의 일부가 수정되는 등 성능 면에서 변화가 생기기도 합니다.

 

* 풀 체인지(Full Change) : 정식 명칭은 '풀 모델 체인지'이지만 통상적으로 '풀 체인지'라는 약칭이 더 널리 사용됩니다. 풀 체인지는 자동차의 신형 모델이 출시되어 세대가 바뀌는 것을 의미하는데 디자인을 비롯하여 파워트레인과 플랫폼이 모두 바뀌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풀 체인지가 이루어지더라도 이전 세대의 플랫폼이나 파워트레인을 그대로 이어가는 경우도 있으며 역으로 페이스리프트 때 파워트레인 또는 플랫폼이 바뀌는 경우도 있습니다.

 

 

 

 

촬영에 사용한 차량은 2023년형 더 뉴 기아 레이의 중간 등급 트림인 '프레스티지'인데 내비게이션과 ADAS 패키지(드라이브 와이즈 1+2)가 옵션으로 추가된 사양입니다. 제가 회사 업무차로 타는 사양도 이와 거의 비슷한 패키지인데 아마 자가용이 아닌 대부분의 레이가 이와 비슷한 구성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니면 아예 아무런 옵션도 들어가지 않은 깡통 사양의 밴이거나...

 

이 차가 출고된 2023년 6월 기준으로 이 차의 견적은 1,820만원입니다. 풀 옵션도 아닌 중간 트림에 옵션 몇 개 넣었을 뿐인데 1,800만원을 넘기는 걸 보면 결코 싸다고는 말할 수 없는 가격이죠. 여기에서 최상위 트림인 그래비티를 선택하고 모든 옵션을 때려넣으면 무려 2천만원을 넘게 됩니다. 제가 예전에 탔던 2013년형 쉐보레 스파크의 견적 가격이 1,299만원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10년 사이에 차값이 오르긴 정말 많이 올랐구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과연 레이가 이 가격에 걸맞은 가치를 가졌는 지금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 Exterior : 박스카의 정석

 

 

 

 

워밍업으로 이족보행 360도 VR을 돌려봤습니다. 레이는 페이스리프트 때마다 등화류와 라디에이터 그릴의 디테일을 손보면서 인상을 조금씩 바꾸고 있지만 14년 전인 2011년부터 지금까지 큰 변화를 보이지 않는 디자인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소위 말하는 '박스카'의 정석이죠. 1990년대의 유머 중 하나인 '티코 시리즈'에서 빨간색 티코를 깍두기, 흰색 티코를 각설탕으로 지칭하고는 했었는데 흰색 레이는 흰색 티코 저리 가라 할 정도로 각설탕의 정석이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레이 외에는 이런 유형의 박스형 왜건 디자인으로 만들어진 승용차가 없지만 바로 옆 나라인 일본으로 가면 대부분의 승용 경차가 한정된 규격 내에서 최대의 실내 공간을 끌어내기 위해 박스카 형태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일본의 경차 시장은 한국에 비해 시장 규모가 훨씬 크고 그만큼 여러 제조사에서 다양한 경차를 출시하지만 경형 SUV, 경형 스포츠카같이 특색있는 장르를 제외하면 죄다 박스카만 나오는 탓에 선택의 폭은 넓지만 의외로 고르는 재미는 밋밋한 시장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한국에서는 레이가 여전히 박스카로서 독보적인 디자인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사실 레이가 유일한 한국산 박스카였던 건 아니고 상위 체급의 박스카로 기아 쏘울이 레이보다 먼저 출시되었으나 쏘울이 해외 시장에서 호평을 받은 것과는 달리 내수 시장에서는 패션카로서의 수요를 레이에게 잡아먹히면서 결국 내수 시장에서는 3세대 만에 단종된 전력이 있습니다.

 

 

 

우선 전면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레이는 TAM에서 PE1으로 넘어갈 에는 기아 전체의 패밀리 룩의 기조가 크게 바뀌지 않은 탓인지 디자인의 변화가 크지 않았으나 PE2에서는 꽤 큰 폭의 디자인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기아가 엠블럼을 바꾸고 나서 도입한 새로운 디자인 언어인 '오퍼짓 유나이티드'를 기존의 금형을 유지하면서 최대한 반영하고자 노력한 흔적이 보입니다. 이 변화에 따라 PE2의 전면부는 레이의 전 세대를 통틀어 가장 굵직한 인상을 가지게 되었는데 이 때문에 기존의 레이가 가지고 있었던 귀여운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불호 여론도 꽤 있는 편입니다.

 

 

 

 

일반적으로 라디에이터 그릴이 들어가는 전면부는 가로줄 몰드 라인으로 장식된 넓은 플라스틱 패널로 막혀 있습니다. 패널 아래에만 얇은 공기 흡입구가 마련되어 있을 뿐이죠. 사실 이 부분은 PE1에서부터 그릴 대신 패널로 디자인되어 실질적으로 라디에이터 그릴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피터 슈라이어가 기아의 디자인 사령탑을 맡게 된 이후 기아 전체의 패밀리 룩이 된 '타이거 노즈' 그릴 디자인은 전면 패널을 둘러싼 블랙 하이그로시 파츠에 호랑이 코 디테일을 넣어 전면 페이스 전체를 타이거 노즈로 활용하는 '타이거 페이스' 디자인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타이거 페이스는 전기자동차의 특성상 라디에이터가 생략되는 기아의 EV 시리즈가 주로 사용하는 디자인 기법인데 레이는 전기자동차는 아니지만 라디에이터 그릴이 없는 구조라 이와 같은 방법을 사용하여 패밀리 룩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PE1의 헤드램프가 초기형 TAM에서 약간의 디테일을 더했던 것과 달리 PE2의 헤드램프는 큰 폭의 변화가 생겼습니다. 바로 헤드램프의 레이아웃이 가로 형태에서 세로 형태로 바뀐 것이죠.

 

기아가 2020년대부터 '스타맵 시그니처 라이팅'을 패밀리 룩으로 밀어붙이면서 이 시기를 전후로 출시되는 기아의 차량들은 죄다 수직형 헤드램프와 ㄱ자로 뻗은 LED 면발광 주간주행등을 달고 나오게 되었습니다. 레이의 경우 '스타맵 시그니처 라이팅'이라는 명칭이 명명되기 이전에 페이스리프트가 이루어지긴 했으나 디자인의 기조만큼은 그 영향을 충분히 받았습니다.

 

레이의 경우 옵션에 따라 두 가지 형태의 헤드램프를 제공하는데 리뷰 차량에 적용된 형태는 하위 사양으로 적용되는 2구식 MFR(Multi Focusing Reflector; 다중초점 반사경) 램프 타입입니다. 상위 사양으로는 2구식 프로젝션 램프가 적용되지만 전 사양 공통으로 누런색 할로겐 전구만 제공하고 LED 벌브는 제공하지 않습니다. 사실 TAM PE2가 출시되던 시기에만 해도 경차에 LED 헤드램프는 사치의 영역이었는데 이 이후에 등장한 모닝의 2차 페이스리프트(JA PE2)와 캐스퍼 페이스리프트(AX1 PE)는 LED 헤드램프를 적용하면서 레이가 상대적으로 시대에 뒤처진 모양새가 되었습니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MFR 램프 사양의 경우 주간주행등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프로젝션 램프 사양의 경우 헤드램프를 둘러싼 ㄷ자형 가니쉬가 LED 주간주행등으로 점등되지만, MFR 램프 사양의 경우 가니쉬가 문자 그대로 장식에 불과합니다.

 

자동차관리법의 하위법령 중 자동차규칙에 따르면 2015년 7월부터 주간주행등 설치 의무화를 규정했으나 부칙에 따르면 [개정규정은 이 규칙 시행 후 개발되어 제작ㆍ조립 또는 수입되는 형식의 자동차부터 적용한다.]라는 단서가 달려 있습니다. 즉, 레이는 단일 세대 모델로서 이 규칙이 적용되기 전인 2011년에 최초로 개발된 자동차라 규칙을 적용받지 않고 이 때문에 한 푼이라도 더 싸게 팔아야 하는 경차의 하위 트림에는 주간주행등을 빼버린 것이죠. 장하다 장해...

 

 

 

 

범퍼는 PE2의 사각사각한 디자인에 맞춰 좀 더 각진 디테일이 입혀졌습니다. 범퍼 하단의 에어 인테이크를 둘러싼 가니쉬와 스키드 플레이트를 SUV에 적용되는 오프로드 언더커버와 비슷한 형태로 디자인하여 조금 더 활동적인 RV로서의 이미지를 주고자 했습니다. 실내 편에서 좀 더 언급하겠지만 아웃도어 캠핑을 중심으로 하는 차박 문화의 유행이 이러한 디자인이 만들어지는 데에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다만 최근의 트렌드에 맞춰 전 트림 공통으로 안개등이 삭제되었는데... 보통은 직진성이 뛰어난 LED 헤드램프를 기본 사양으로 맞추고 헤드램프의 성능을 높이면서 안개등의 부재를 보완하는 것이 정석인데 낡디낡은 H4 규격의 할로겐 전구를 사용하면서 안개등만 쏙 빼버리는 건 역시 양심을 날로 먹은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측면의 디자인은 박스카의 전형이라고 불릴 수 있을 정도로 펜더와 A필러*를 제외한 거의 모든 디자인 요소가 수평선과 수직선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1,700mm에 이르는 전고 덕분에 다른 경차들보다 반 체급 정도는 더 커 보이는 시각적 효과를 보이고 있습니다.

 

사실 전장 3.6m, 전폭 1.6m, 전고 2.0m를 초과할 수 없는 한국의 경차 규격에 따라 한국에서 시판되는 경차의 차체 규격은 레이의 압도적인 전고를 제외하면 모두 mm 단위로 도토리 키재기 수준의 차이만 보입니다. 그런데도 레이가 시각적으로 커 보이는 이유는 바로 다른 경차들보다 훨씬 긴 휠베이스(바퀴와 바퀴 사이의 거리)에 있습니다.

 

레이는 앞바퀴와 뒷바퀴를 최대한 범퍼에 가깝게 밀어내면서 한눈에 봐도 다른 경차보다 훨씬 더 긴 휠베이스를 만들었고 이로 인해 차가 훨씬 더 커보이는 효과를 얻어냈습니다. 현세대 경차들과 비교하면 3세대 모닝(JA)과 캐스퍼는 모두 2,400mm의 휠베이스를 가지는데 레이의 휠베이스는 2,520mm에 달합니다. 무려 12cm나 더 긴데 이 점은 고스란히 실내 공간의 이득으로 연결됩니다.

 

* 필러(Pillar) : 자동차의 객실(cabin)을 구성하는 기둥을 의미합니다. 앞 유리(windshield)를 지탱하는 기둥을 A필러, 앞문과 뒷문 사이의 중간 기둥을 B필러, 뒷문 뒤의 기둥을 C필러로 지칭하며 자동차의 구조상 교통사고가 발생했을 때 필러가 무너지지 않고 객실의 형태를 유지해야 객실 내에 탑승한 사람이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기에 자동차에서 특히 단단하게 설계되는 부분 중 하나입니다. 

 

 

 

꽤 재미있는 부분은 후드의 길이가 극단적으로 짧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엔진룸에 엔진이 아닌 무언가를 넣었나 싶은 의심이 들 정도인데 사실 이는 A필러를 보면 이렇게 된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A필러를 최대한 후드 쪽으로 밀어내는 캡 포워드 디자인을 추구하다 못해 A필러와 카울 커버가 아예 엔진룸의 상단을 덮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디자인이죠.

 

이런 디자인의 영향으로 전면 충돌에서의 안전성이 의심될 수도 있지만 의외로 사고 시 충격을 흡수하는 구간인 크럼플 존(범퍼부터 객실까지의 거리)의 길이는 다른 경차와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입니다. 이런 A필러와 후드의 구조적 특이성은 뒤에서 좀 더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높은 전고 덕분에 그린하우스(측면 유리창이 차지하는 면적)도 현세대의 승용차로서는 이례적으로 넓게 형성되어 있습니다. 특이점으로는 A필러와 C필러에 모두 꽤 넓은 면적의 쿼터 글라스(필러와 도어 사이에 설치된 쪽창)가 마련되어 있는데 대부분의 승용차에서 쿼터 글라스가 디자인 요소 정도로만 기능하는 것과 달리 레이의 쿼터 글라스는 운전자와 승객의 시야 확보라는 관점에서 꽤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각각의 창틀은 바디컬러 도장 위에 무광 블랙 테이프를 씌워 마감했는데 좀 저렴해 보이긴 해도 차급을 고려하면 그럭저럭 수긍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사이드 미러는 플래그 타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LED 방향지시등이 부착되어 있습니다. 요즘 차답게 전동 접이식으로 구현되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경차 사이드 미러를 손으로 접지 않아도 된다는 시대가 온 것에 격세지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레이의 외형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좌측과 우측의 도어 구성이 다르다는 점입니다. 1열과 2열 도어 모두 통상적인 스윙 도어를 적용한 좌측과는 달리 우측의 경우 2열 도어를 슬라이딩 도어로 구성했습니다. 슬라이딩 도어는 보통 미니밴, 미니버스 등의 다인승 승용차 또는 소형 승합차에 적용하는 구성인데 레이의 경우 경차임에도 슬라이딩 도어를 적용했습니다. 경차 문화가 발달한 일본에서는 이미 1980년대부터 등장한 구성이긴 하지만요.

 

슬라이딩 도어의 적용에 따라 우측 리어 펜더에는 슬라이딩 도어를 가동하기 위한 도어 레일이 적용되어 있습니다. 그나저나 이전에 이 차를 빌린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르겠는데 거하게 한 방 하셨군요. 덕분에 슬라이딩 도어가 세일즈 포인트가 되는 차량임에도 우측면 사진을 거의 못 찍었습니다.

 

 

 

레이에는 14인치와 15인치의 휠이 적용되는데 리뷰 차량에는 14인치 알로이 휠이 적용되어 있습니다. 기아가 패밀리 룩으로 스타맵 시그니처 라이팅을 도입하면서 휠 디자인에 삼각형과 사각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는데 레이도 PE2로 넘어오면서 예외 없이 사각사각한 휠로 바뀌었습니다.

 

타이어는 14인치 리뷰 차량 기준으로 165/60R14 규격의 한국 키너지 ST AS가 출고 타이어로 배정됩니다. 15인치 사양의 경우 175/50R15 규격의 넥센 엔프리즈 S, 넥센 iQ 시리즈 1, 한국 옵티모 H724 등 다양한 타이어가 랜덤으로 제공되는데 사실 타이어의 특성 자체는 OE로 공급되는 제품 모두 평범한 성능의 보급형 올시즌 타이어인지라 휠 사이즈와 편평비에 따른 특성 차이가 더 두드러집니다. 타이어의 규격은 2세대 모닝(TA)과 동일하나 3세대 모닝(JA)에서 타이어의 규격이 커지고 캐스퍼는 이보다 더 큰 타이어를 사용하면서 현재 시판 중인 경차 중에서는 레이가 가장 작은 타이어를 사용합니다.

 

전륜의 브레이크 시스템은 벤틸레이티드 디스크 브레이크, 서스펜션은 맥퍼슨 스트럿 방식으로 구성됩니다. 차급을 생각하면 별다른 특이점은 없는 평이한 시스템이죠.

 

 

 

 

후륜의 경우 타이어와 휠의 규격은 동일하며 브레이크 시스템은 디스크 브레이크, 서스펜션은 토션 빔이 적용됩니다. 경차로서는 이례적으로 드럼 브레이크를 사용하지 않고 모든 트림에 리어 디스크 브레이크를 기본 사양으로 적용하고 있습니다. 디스크 브레이크 대비 저렴한 가격 덕분에 경차에서 널리 사용되는 드럼 브레이크가 레이에서 배제된 이유로는 태생적으로 다른 경차들보다 공차중량이 무거운 레이의 특성에 따라 제동력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했기 아닐까 하는 추정이 가능합니다.

 

드럼 브레이크는 구조적으로 방열 성능이 떨어져 열 누적에 의해 제동력을 상실하는 페이드 현상에 취약하기 때문에 외부 오염에 강하고 최대 제동력이 높은 드럼 브레이크의 장점을 확실하게 활용할 수 있는 대형 상용차가 아닌 일반 승용차에서는 점점 도태되는 방식입니다. 아무리 원가가 중요하다 한들 예방 안전 측면에서까지 원가 우선주의를 주장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후면의 디자인은 레이의 모든 세대 중 가장 단정한 디자인으로 마감되어 있습니다. 기본적인 틀은 동일하지만 테일램프와 범퍼를 교체하면서 곡선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선과 사각형 중심의 디자인으로 디테일을 조정했기 때문이죠. 전폭보다 전고가 더 높은 탓에 후면에서 봤을 때 껑충하게 높아 보이는 비례는 여전하지만 뒷바퀴를 감싸는 리어 펜더를 조금이나마 돌출시킴으로 시각적인 안정감을 가져가고자 노력한 흔적이 보입니다. 여기서 차폭이 6mm 더 넓어지면 경차 규격 초과로 경차 혜택을 받을 수 없습니다.

 

PE2에서 테일게이트의 디자인을 정리하면서 테일게이트 열림 스위치는 번호판 아래에 숨겨지도록 위치가 변경되었습니다. 종종 이 스위치를 못 찾는 분이 계시더군요.

 

 

 

 

리어 글라스는 정직하게 90도 아래의 수직으로 떨어집니다. 보통 이런 테일게이트 형태의 트렁크 리드를 적용한 차량들은 리어 글라스 위에 리어 스포일러를 부착하거나 리어 글라스 상단의 금형을 덕 테일 형태로 만들어 리어 스포일러의 효과를 내도록 만드는 것이 정석인데 레이의 경우 리어 스포일러가 생략되어 있습니다. 리어 스포일러의 효과를 볼 수 있을 정도의 고속 주행은 고려하지 않는다는 의미일까요.

 

지붕에는 라디오, GPS 등 이것저것을 수신하는 샤크핀 안테나가 부착되어 있으며 루프랙, 선루프 등의 부가 장비는 없습니다. 차량의 컨셉을 고려하면 루프 캐리어를 설치할 수 있도록 루프랙 정도는 옵션으로라도 제공하는 것이 어땠을까 싶군요.

 

개인적으로는 리어 쿼터 글라스와 리어 글라스 사이에 블랙 하이그로시 패널을 심어 둘 사이를 잇는 디테일을 상당히 좋아합니다. 이 차를 좀 더 아이코닉하게 만드는 디자인 포인트 중 하나랄까요.

 

 

 

 

테일 게이트는 PE2로 넘어오면서 블랙 하이그로시 파츠를 활용하여 전면부와 대칭을 이루는 디자인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신규 패밀리 룩을 적용하면서 약간 억지스러운 구석이 있었던 프런트 마스크와는 달리 테일 게이트는 많은 디테일을 심어 다소 산만한 느낌을 줬던 PE1 때보다 훨씬 깔끔하게 정리되었죠.

 

덤으로 기아 엠블럼이 변경되면서 레이 엠블럼도 다른 기아 차량들과 동일하게 좀 더 각진 폰트가 적용된 알루미늄 엠블럼으로 변경되었습니다. 

 

 

 

 

테일램프는 헤드램프와 마찬가지로 옵션에 따라 두 가지 구성을 가지게 되며 리뷰 차량에는 모든 램프가 전구로 구성된 하위 사양이 적용됩니다. 그리고 제동등과 미등이 LED로 구성되는 상위 사양을 옵션으로 선택할 수 있죠. 디자인 자체는 하위 사양도 저렴한 티가 나지 않도록 깔끔하게 잘 만들었는데... 있어야 할 게 안 보입니다. 네. 여기에는 후진등이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TAM PE2의 디자인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큰 불만 사항을 가지고 있는 리어 범퍼입니다. 테일램프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후진등은 리어 스키드 플레이트의 가장 아래에 딱 한 개가 붙어 있습니다. 최근 현대차그룹은 이렇게 지면에 가깝게 달랑 하나 붙어있는 후진등 디자인을 자주 사용하고 있는데 저는 이 디자인을 아주 싫어합니다. 뒤차 운전자의 시선으로 보면 후진등이 너무 낮게 위치해서 보기 어렵거든요.

 

개인적으로 범퍼에 등화류를 부착할 때는 등화가 켜지지 않았더라도 등화류가 설치되어 있음을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대의 코나, 캐스퍼 등이 그 예시죠. 반대로 범퍼에 등화류를 심었음에도 등화를 감추는 디자인은 개인적으로 아주 악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랜저 GN7의 후방 방향지시등은 이런 점에서 뒤차를 엿먹이기 아주 좋은 디자인입니다.

 

 

저 악질적인 후진등 외에는 대체로 평이한 디테일로 마무리되어 있습니다. 머플러는 지면을 향하는 수도꼭지 형태의 팁으로 스키드 플레이트 뒤에 숨겨져 있는데 트윈 머플러나 듀얼 머플러를 적용하는 고성능 차량이 아닌 이상은 머플러 팁을 숨기는 것이 최근의 디자인 추세인 것을 고려하면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디자인입니다.

 

그건 그렇고 범퍼 디자인을 바꾸면서 PE1까지는 4개였던 후방 초음파 주차 센서를 3개로 줄였군요. 장하다 장해...

 

 

 

 

레이의 문을 열기 전에 외관을 간단히 둘러봤습니다. 기본적인 틀은 10여 년 넘게 도로에서 본 익숙한 디자인인 탓인지 디자인에 대한 해설보다는 트리비아적인 이야기가 훨씬 더 길어졌군요.

 

레이는 전체적으로 단순함의 미학을 살리면서도 부분적으로 아기자기한 디테일을 심어 단정하면서도 귀여운 이미지를 살린 디자인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이 덕분에 레이는 자가용으로 타는 사람들이 유독 액세서리를 활용하여 외장을 꾸미는 사례가 많은 편입니다. 약간의 액센트만 더해도 인상이 크게 바뀌거든요.

 

물론 두 번의 페이스리프트를 거치긴 했지만 14년 전에 틀이 잡힌 디자인으로 지금까지 디자인 면에서 부족하지 않은 평가를 받는 것을 보면 여러모로 목적에 충실한 완성도 높은 디자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일본의 경차들이 대부분 이런 형태에 수렴하는 것이 결코 우연은 아니겠지요.

 

 

 

 

 

 

#3. Interior : 기아류 오의, 초필살기

 

사실상 여기서부터 리뷰의 본편이 아닐까 싶습니다. 레이가 14년 동안 장수할 수 있었던 비결을 이번 챕터에서 다룰 예정이니까요. 일단 운전석부터 들어가 보겠습니다.

 

 

 

리뷰 차량의 시트는 인조가죽으로 마감되었고 컬러는 블랙 단일 색상입니다. 프레스티지 트림부터 라이트 그레이 색상의 시트를 선택사양으로 고를 수 있지만 밝은색의 시트는 관리가 어렵기 때문에 렌터카로 굴리는 차라면 블랙 시트 외에는 선택지가 없었을 겁니다.

 

1열 시트는 구성 자체는 일반적인 승용차의 시트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사이드 볼스터와 쿠션 볼스터가 없다시피 할 정도로 낮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시트가 허리와 허벅지를 전혀 잡아주지 못하기 때문에 차량의 움직임이 조금이라도 과격해지면 여지없이 몸이 시트 밖으로 튕겨 나가려는 움직임이 나오게 됩니다. 즉, 시트만 봐도 잘 달리는 차는 아니라는 것을 대번에 알 수 있죠.

 

시트의 위치 조절 방식은 수동이며 요추 받침대는 제공되지 않습니다. 수동 조절 자체는 불만 사항이 아닌데 장거리 운행 시 허리의 피로도를 낮춰주는 아이템인 요추 받침대가 빠지는 것은 역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사실 이건 레이 뿐만 아니라 모든 한국산 경차가 겪는 차별 대우이지만요.

 

 

 

 

일반적인 승용차가 1열 시트 뒤에 포켓을 부착하는 것과 달리 레이의 1열 시트는 시트 뒷면을 통째로 플라스틱 보드로 마감했습니다. 그나마 운전석 시트의 보드 위에 작은 포켓이 달려있기는 한데 저기에 뭘 넣긴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리뷰 차량은 센터 콘솔 뒷면이 통짜 플라스틱으로 마감되어 있지만 상위 트림의 경우 센터 콘솔 뒤에 2열 열선 버튼과 2열 승객을 위한 USB A타입 포트가 설치됩니다. 경차에 2열 열선이라니, 제가 스파크를 타던 시절에는 상상도 하지 못할 편의장비군요.

 

덧붙여 사진에서는 2열의 매트가 안 보일 겁니다. 순정 사양으로 2열 매트를 제공하지만 리뷰 차량의 매트 오염 상태가 너무 심해서 2열 매트를 제거하고 사진 촬영을 진행했으니 참조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2열 시트는 1열과 마찬가지로 검은색 인조가죽으로 마감되어 있으며 대부분의 승용차가 그렇듯 벤치 시트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2열 시트에는 유아용 카시트를 설치할 수 있는 ISOFIX 마운트가 좌우 각 1세트씩 제공됩니다. 이 2열 시트의 활용 방법에 대해서는 잠시 후에 설명하도록 하죠.

 

 

 

 

   

 

 

 

 

 

레이의 운전석 레이아웃은 센터페시아 전체가 운전석을 향해 기울어진 운전자 중심의 인터페이스로 두 차례의 페이스리프트를 거쳤음에도 14년 전 레이가 처음 출시되었을 당시와 거의 동일한 구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등장 당시에는 최신 트렌드를 적절히 반영한 제법 세련된 구성이었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아무래도 오래된 티가 난다고 말할 수밖에 없죠.

 

 

 

레이는 출시 당시에는 2스포크 타입의 스티어링 휠을 사용했으나 PE1부터 2010년대에 등장한 대부분의 기아차와 마찬가지로 원형 혼캡을 중심으로 한 3스포크 스티어링 휠로 변경되었고 이 디자인이 PE2까지 유지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K3 GT와 스팅어를 타면서 익숙하다 못해 눈 감고 그릴 수 있을 정도로 눈과 손에 익을 대로 익은 디자인이기도 합니다. 현대차그룹의 차를 타본 사람들이라면 굳이 사용 설명서를 볼 필요가 없을 정도로 익숙한 리모콘 버튼 배치를 두고 있지요.

 

스티어링 휠의 마감은 시트와 마찬가지로 인조가죽입니다. 스티어링 휠의 지름은 경차답게 다른 승용차에 비해 작게 설정되었으며 림이 손에 감기는 굵기 또한 상당히 얇은 편입니다. 생짜 플라스틱의 싸구려틱한 마감을 자랑하는 혼캡은 스팅어와 크게 다르지 않군요.

 

 

 

 

PE2의 실내에서 가장 크게 바뀐 부분은 계기판입니다. 현대차그룹이 2020년대부터 염가형 계기판으로 활용하고 있는 슈퍼비전 클러스터를 레이에도 적용했습니다. 아날로그 계기가 모두 제외된 풀 디지털 구성이기에 얼핏 보면 계기판 전체가 LCD로 보일 수 있지만 계기판 가운데의 4.3인치 트립 컴퓨터 패널만 LCD로 구성되고 나머지는 세그먼트 LED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즉, 구성만 따지면 바늘이 움직이는 동침형 아날로그 게이지를 사용하는 슈퍼비전 클러스터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레이에 이 계기판이 적용되면서 장점과 단점이 생겼는데 장점으로는 경차 계기판으로는 이례적으로 속도계/엔진 회전계/연료계/엔진 수온계 4대 게이지를 누락 없이 볼 수 있다는 것, 단점으로는 엔진 회전계(타코미터)가 숫자로만 표현되면서 운전 중 엔진 회전수 체크가 매우 불편해졌다는 점이 있겠습니다. 그동안의 경차 계기판은 타코미터와 엔진 수온계 둘 중 하나가 항상 빠졌죠.

 

 

 

계기판 테두리의 그래픽 색상을 바꿀 수 있지만 선택한 드라이브 모드에 따라 색상이 자동으로 바뀌는 다른 차종들과는 달리 레이는 드라이브 모드를 변경하는 기능이 없기 때문에 차량 설정 메뉴에서 수동으로 원하는 색상을 선택하는 형태입니다.

 

이 테두리 그래픽은 엔진 회전수에 연동되어 밝기가 순차적으로 바뀌면서 나름대로 타코미터의 바늘이 올라가는 효과를 노린 것 같은데... 실제로 운전해보면 동침형 타코미터만큼의 직관성이 나오지 않는 데다 잘 보이지도 않아서 운전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스티어링 휠의 각도 조절은 틸트(상하 방향 조절)만 가능하고 텔레스코픽(앞뒤 방향 조절)은 지원하지 않습니다. 레이 뿐만 아니라 모든 국산 경차가 이런 조건인데 텔레스코픽을 사용할 수 없게 됨에 따라 시트 각도 조절에도 제한이 생겨 편한 운전 자세를 찾기 힘들어진다는 단점이 생깁니다. 왜 경차에는 텔레스코픽을 지원하지 않는 걸까요.

 

스티어링 칼럼 좌측에는 스티어링 휠 열선 버튼과 ESC(차체 자세 제어장치) 해제 버튼이 있습니다. 오른쪽 두 칸이 멍텅구리 버튼인데 이 멍텅구리 버튼은 PE1까지 존재했던 LPG 엔진 사양의 연료 조절과 관련된 버튼이 있던 자리입니다. PE2에서는 2025년형부터 옵션에 따라 이 자리에 EPB(전자식 주차 브레이크) 스위치가 들어갑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상위 사양에는 EPB가 적용되지만 하위 사양에는 페달 형식의 풋 파킹 브레이크가 적용됩니다. 사실 경차로서는 풋 파킹 브레이크만 해도 충분히 고급 사양으로 간주합니다. 브레이크 페달과 액셀 페달의 구성은 통상적인 서스펜디드 타입입니다.

 

 

 

 

센터페시아의 구성은 기본적으로 좌우 비대칭 구성인데 변속 레버가 센터페시아에 위치하면서 여러모로 독특한 동선이 만들어집니다. 승용차보다는 승합차에 가까운 구성이죠. 독일 3사를 중심으로 한 유럽산 자동차들이 유행시킨 가늘고 긴 좌우대칭으로 센터페시아를 구성하는 디자인 트렌드와는 꽤 동떨어져 있는데 한정된 공간 내에서 기능성을 최대한 살리기 위한 몸부림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내비게이션은 8인치 LCD 디스플레이 사양으로 현대차그룹의 5세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 적용되어 있습니다. 스티어링 휠의 리모콘과 마찬가지로 현대차그룹의 차를 몰아봤던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적응할 수 있죠. 디스플레이 위에는 비상등 버튼이 자리 잡고 있는데 다른 버튼들은 평이한 조작감을 가지고 있지만 이 비상등 버튼만 묘하게 뻑뻑합니다.

 

다만 내비게이션 버튼과 에어컨 루버 사이에 세로로 그어진 크래시패드 분할선은 꽤 거슬리는 부분이군요. 보통은 저런 분할선을 계기판 쪽으로 밀어 최대한 감추거나 분할선 없는 단일 파츠로 사출하는데... 아무리 금형 설계 원가와 조립 편의성이 중요하다지만 이런 부분은 좀 아니지 않나 싶습니다.

 

 

 

 

자동변속기의 변속레버는 레버가 센터 터널에 설치되는 통상적인 플로어 시프트가 아닌 센터페시아 시프트 구성이며 레버를 이동할 때 잠금 해제 버튼을 사용하지 않는 대신 계단 형태로 레버를 꺾어야 하는 스텝게이트 타입입니다. 스텝게이트는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꽤 다양한 브랜드의 차량에서 볼 수 있는 구성이었지만 지금은 유행이 지나 거의 찾아보기 힘든 형태가 되었죠. 경차의 자동변속기로서는 이례적으로 별도의 수동변속 모드를 마련해 두었습니다.

 

변속 레버의 좌측에는 시동 버튼, 우측에는 풀 오토 에어컨을 조작하기 위한 공조장치 버튼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공조장치 조작에 다이얼을 사용하지 않고 버튼만으로 모든 조작을 처리하는 점은 아쉽지만 작은 크기이긴 해도 공조장치의 작동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세그먼트 디스플레이를 따로 마련한 점은 꽤 마음에 드는군요. 공조장치에는 캐빈 필터를 활용하는 공기 청정 기능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센터페시아 시프트를 적용하여 운전석과 동승석 사이에 솟아오른 센터 터널을 제거할 수 있게 되면서 운전석과 동승석 간의 이동이 매우 자유로운 구조가 되었습니다. 이를 활용해서 좁은 공간에 주차하여 운전석 도어로 내리기 어려울 때도 여유롭게 동승석 도어로 하차할 수 있습니다. 

 

 

 

 

센터페시아 하단에는 작은 수납함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시트의 통풍 및 열선 기능을 조작하기 위한 버튼과 USB A타입 단자, 12V 전원 포트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경차에 통풍 시트가 달린 걸 보면 스파크를 7년 가까이 타는 동안 우주쓰레기 수준의 에어컨에 고통받던 시기가 떠올라 감개무량해집니다.

 

 

 

 

운전석 시트에는 암레스트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센터 콘솔을 암레스트 겸용으로 사용하는 대부분의 승용차와는 달리 경차는 이와 같이 운전석 암레스트를 따로 적용하는 것이 관례입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경차는 공간의 한계를 이유로 센터 콘솔을 설치할 수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레이의 경우 주차 브레이크를 풋 파킹 타입으로 적용하면서 다른 경차에서 핸드 파킹 레버가 차지하는 공간을 그대로 센터 콘솔로 확보했습니다.

 

센터 콘솔 앞에는 컵 홀더가 마련되어 있는데 손을 멀리 뻗지 않아도 음료를 잡을 수 있을 정도로 위치는 그럭저럭 사용하기 편하게 설정되어 있습니다.

 

 

 

 

조수석 측 크래시패드의 아래에는 대부분의 승용차가 그렇듯 글러브 박스가 마련되어 있는데 조명은 없지만 그럭저럭 넉넉한 공간을 확보했습니다. 크래시패드 상단에도 작은 수납함을 마련한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군요.

 

 

 

 

레이는 전고가 높은 만큼 실내의 높이도 다른 승용차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높습니다. 이 덕분에 문자 그대로 광활한 헤드룸을 자랑하는데 레이는 이 공간을 활용하여 루프 콘솔을 설치했습니다. 주로 1톤 트럭에서 볼 수 있는 구성이죠. 서류철을 꽂으면 얼추 들어맞는 크기인데 이 차가 회사 업무차로 활용되는 빈도가 높다는 것을 감안하면 아주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구성입니다.

 

 

 

 

오버헤드 콘솔은 대부분의 승용차가 그렇듯 실내등과 선글라스 케이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나 재미있는 점은 TAM 초기형에는 선글라스 케이스 자리에 컨버세이션 미러가 들어갔습니다. 카니발을 타보신 분들이라면 오버헤드 콘솔에 뒷좌석을 확인하기 위한 볼록거울이 들어가는 걸 아실 텐데 그게 레이에 들어갔다는 거죠. 레이의 초창기 마케팅 컨셉 중 하나가 패밀리카였기에 나올 수 있었던 구성인데 당연하지만 경차에는 딱히 필요하지 않은 장비이기에 PE1으로 넘어오면서 삭제되었습니다.

 

 

 

선바이저와 리어뷰 미러는 루프 콘솔 아래에 부착되어 있습니다. 리어뷰 미러는 하이패스 단말기가 내장된 사양인데 승용차로서는 꽤 이례적으로 윈드실드가 아닌 루프 콘솔 아래에 부착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후술할 A필러의 특이한 구조의 영향입니다.

 

화장거울 조명은 리뷰 차량에는 빠져 있는데 시그니처 트림을 선택해야 추가된다고 하는군요. 뭐 경차니까 그러려니 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차급을 고려하면 이례적으로 연장형 선바이저가 적용되어 있는데 정확히는 선바이저가 연장되지 않으면 측면을 아예 가릴 수 없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창문을 따라 수평으로 펼쳐지지 않아서인지 뭔가 어정쩡한 모양새군요.

 

 

 

 

이 차의 운전석에 앉게 되면 놀라게 되는 점은 시야가 굉장히 기묘하다는 것입니다. 시트를 가장 낮게 조절해도 운전석에서 옆 차선의 소형 SUV 정도는 내려다볼 수 있을 정도로 시트 포지션이 매우 높은데 이런 시트 포지션을 가지고 있음에도 이 차의 시야는 넓고도 좁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됩니다. 이게 무슨 해괴한 이야기인가 하니...

 

첫 번째 원인은 윈드실드부터 센터페시아까지의 길이가 무려 50cm에 달하는 괴이할 정도로 넓은 대시보드입니다. 대시보드가 이렇게 넓은 원인은 외관에서 볼 수 있었던 극단적으로 짧은 후드와 연관되어 있는데 윈드실드가 엔진룸 상단의 일부를 덮도록 밀어냈기 때문입니다. 즉, 저 대시보드의 절반가량은 다른 승용차였다면 대시보드가 아닌 엔진 후드와 카울 커버가 덮고 있어야 할 자리라는 거죠. 이렇게 앞 유리를 엔진룸 위로 밀어내고 지붕까지 한껏 높이면서 경차로서는 기대하기 힘든 실내 공간과 개방감을 얻어냈지요.

 

다만 이러한 운동장 대시보드의 영향으로 전방 시야가 대단히 기묘합니다. 분명히 높은 시트 덕분에 개방감을 주면서도 뭔가가 방해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죠.

 

 

덧붙여 대시보드가 넓다고 저 위에 온갖 인형과 피규어를 올려 달리는 장식장으로 만드는 사례가 종종 보이는데 저 대시보드 아래에는 에어백이 장전되어 있습니다. 즉, 에어백이 터지는 상황이 되면 대시보드 위에 올려진 장식물이 그대로 동승석 승객을 향해 발사될 수 있으니 대시보드 위에 물건을 올리는 행위는 권장되지 않습니다. 눈썰미가 좋으신 분들은 이 사진에서 에어백이 사출되는 절취선을 발견하셨을 겁니다.

 

 

 

 

기묘한 시야를 만드는 원인 두 번째는 바로 A필러의 구성입니다. 상당히 큰 면적의 쿼터 글라스를 적용하면서 A필러가 사실상 2개씩 설치된 효과가 나오는데 문제는 이 2단 A필러가 운전자의 시야를 상당히 크게 방해한다는 겁니다. 여기에 앞서 설명한 앞으로 밀려나온 윈드실드의 영향으로 윈드실드를 지탱하는 A필러 또한 앞으로 밀려 나오게 되면서 A필러가 운전자의 시야에 더욱 잘 띄게 되었습니다.

 

도심지에서 운전할 때 보행자, 이륜차, 킥보드 등등이 2단 A필러에 가리는 상황을 심심치 않게 마주칠 수 있는데 이 때문에 레이를 운전할 때는 골목길 운전에 특히 유의해야 합니다. 저도 쿼터 글라스 사이에 가린 이륜차를 뒤늦게 발견해서 여러 번 식겁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A필러에는 고음역대를 담당하는 트위터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4 스피커 시스템이지만 내비게이션을 옵션으로 선택하면 트위터가 추가되어 6 스피커 시스템으로 바뀝니다. 경차이기 때문인지 보스, 크렐, 렉시콘 등 현대차그룹과 협업하는 오디오 전문 브랜드의 시스템은 옵션으로도 선택할 수 없습니다.

 

 

 

 

기묘한 시야를 만드는 원인 그 세 번째, 이 사진은 키 165cm의 리뷰어가 적정 자세로 운전할 수 있도록 세팅한 시트입니다. 보시다시피 우측 B필러가 헤드레스트 앞까지 툭 튀어나와 있어 오른쪽 시야를 크게 방해함을 알 수 있죠. 이 때문에 사이드 미러만으로는 시야 확보가 충분하지 않아 고개를 돌려 숄더 체크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B필러에 의해 시야가 가리는 현상을 자주 경험할 수 있습니다. B필러가 이렇게 생겨먹은 이유는 잠시 뒤에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이유로 레이를 운전할 때에는 높은 시트 포지션과 넓은 그린하우스에 비해 사각지대가 상당히 많다는 점을 인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레이를 첫 차로 타는 초보운전자라면 '자동차란 원래 이렇구나!' 하고 그럭저럭 적응할 수 있겠지만 오히려 다른 자동차를 몰다가 레이를 타는 사람이라면 이 점을 주의해야 합니다.

 

 

 

 

 

1열 도어의 도어 트림의 구성은 평범하지만 암레스트를 회색으로 만들어 포인트를 주면서 심심하지 않게 꾸몄습니다. 소재의 저렴한 감촉을 감추지 못한 점은 아쉽지만 그게 가능했다면 그게 그대로 원가에 반영되었을 테니 경차라서 그러려니의 영역입니다.

 

 

 

 

2열 도어도 1열과 마찬가지의 도어 트림 구성을 두고 있습니다. 맵 포켓과 보틀 홀더까지 동일하게 갖추고 있지만 1열 도어트림과 달리 스피커는 제외되어 있습니다.

 

 

 

 

자,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레이 외에는 찾아볼 수 없는 레이의 존재 의의이자 레이의 필살기를 소개합니다.

레이의 우측 도어를 모두 개방하면 이런 형태가 됩니다. 보시다시피 우측 B필러가 아예 사라진 개방감의 극치를 자랑하는 형태가 만들어졌습니다.

 

기아는 레이를 기획할 때 일본의 경차 전문 브랜드인 다이하츠의 모델 중 하나인 '탄토'를 벤치마킹 모델로 삼았다고 설명했습니다. 탄토는 2세대 모델부터 동승석 측 2열 도어를 슬라이딩 도어로 구성하면서 B필러를 생략하는 설계를 적용했는데 레이가 이 설계를 참고했죠. 다만 스즈키 알토 3세대 모델을 라이센스 도입 형태로 제작했던 대우 티코와는 달리 레이는 탄토를 문자 그대로 참고하기만 했을 뿐 다이하츠와의 협업이나 로열티 계약은 하지 않았습니다. 기아가 2세대 모닝(TA)의 플랫폼을 기반으로 탄토를 참조한 패키징을 입힌 것이죠.

 

덧붙여 기아와 다이하츠는 상호 계약을 맺은 적이 없으나 과거 기아의 자회사였던 아시아자동차(현재 기아 광주공장)가 다이하츠와의 라이센스 도입 계약을 통해 다이하츠 하이젯 7세대 모델을 현지화하여 아시아 타우너로 판매한 전력이 있습니다. 레이가 차쟁이들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타우너의 정신적 후속작이라는 이야기를 듣는 이유 중 하나죠.

 

 

 

 

이와 같은 독특한 구조의 도어 덕분에 레이의 승하차 편의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입니다. 경차를 넘어 SUV나 MPV와 비교해도 이보다 더 뛰어난 승하차 편의성을 갖춘 차는 찾기 쉽지 않죠. B필러의 간섭을 받지 않으면서 허리를 숙이지 않아도 편하게 탑승할 수 있다는 점 덕분에 신체가 불편한 사람을 자주 태워야 하는 복지기관의 관용차는 극히 높은 확률로 레이가 선택됩니다.

 

1열 동승석 시트를 자세히 보면 안전벨트가 시트에 부착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보통 1열 시트의 안전벨트는 B필러에 장착되는 것이 정석인데 레이는 오른쪽 B필러가 아예 없기 때문이죠.

 

그런데 앞서 시 언급한 이야기 중 하나로 필러는 자동차의 객실을 구성하는 기둥으로 충돌 시 객실을 보호하는 역할을 맡는다는 내용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B필러의 경우 측면 충돌 시 승객의 안전을 지키는 핵심 구조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그런 B필러가 없다는 건 측면 충돌에서 매우 위험해진다는 이야기인데...

 

 

 

 

자동차 제조사가 그 정도로 무책임한 바보일 리는 없기에 기아 또한 B필러의 부재를 보완할 방법을 마련했습니다. 위의 이미지는 레이의 초기 카탈로그 중 안전 장비를 소개하는 섹션인데 마지막 이미지를 통해 우측 스윙 도어와 슬라이딩 도어에서 B필러에 해당하는 부위에 임팩트 빔을 심어 도어 자체가 B필러의 역할을 하도록 설계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 문짝에 기둥을 심은 것과 같은 효과를 노렸다는 것이죠.

 

사실 기아 측에서는 자체 충돌 시험을 통해 충분한 강성을 확보하였다고 홍보하고 있으나 이 구조가 모노코크 차체와 직접 연결된 B필러만큼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는 없습니다. 전 세계 어디에도 운전석이 아닌 동승석 측으로 측면 충돌을 시험하는 기관은 없고 레이 또한 한국의 자동차 안전성 평가인 KNCAP에서 운전석이 있는 좌측 방향에서의 측면 충돌 시험만을 시행했기 때문이죠. 이 딜레마는 앞서 언급했던 다이하츠 탄토 또한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덧붙여 이런 구조를 적용하면서 임팩트 빔이 내장된 도어의 창틀이 매우 굵어졌기에 위에서 언급했던 시야 문제가 생깁니다.

 

 

 

 

필러리스 설계가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도록 포인트를 더해주는 부분으로 동승석 도어 힌지가 있습니다. 60~70도 전후로 개방되는 통상적인 승용차와는 달리 동승석 도어는 90도까지 열릴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죠. 이 덕분에 레이는 우측 도어를 모두 열었을 때 다른 승용차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압도적인 개방감을 자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소소한 주의점이 있다면 동승석 승객은 문을 열 때 옆 차에 문콕을 내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슬라이딩 도어 측의 도어 트림 구성은 다른 도어들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한정된 공간 내에 슬라이딩 도어를 구현하기 위해 도어 트림을 최대한 얇게 만들어야 했고 이 때문에 도어 트림의 각종 수납함이 삭제되고 윈도우 스위치 또한 승용차에서는 보기 힘든 투박한 형태의 상하 조작 스위치가 들어갔습니다. 도어캐치가 동승석 시트에 가려지는 위치에 붙은 것은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군요.

 

2열 우측 시트의 경우 보시다시피 도어 트림의 암레스트를 이용하기 어렵기에 슬라이딩 도어 레일이 내장되는 리어 펜더 내측에 컵홀더와 수납함을 겸하는 암레스트가 만들어져 있습니다.

 

 

 

 

2열의 컵홀더 위치가 심상치 않은 점에서 짐작하신 분도 계시겠지만 레이의 2열 시트는 일반적인 경차보다 훨씬 뒤로 밀려 있습니다. 이 때문인지 2열 승객을 위한 어시스트 그립도 한참 뒤로 밀려 C필러 위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트 포지션 탓에 2열 승객은 2열 도어의 창문이 아닌 C필러에 마련된 쿼터 글라스가 실질적인 창문으로 활용됩니다.

 

그리고 앞서 설명한 슬라이드 도어의 특성 탓인지 리어 스피커가 헤드레스트 근처에 붙어 있습니다. 리어 스피커의 소리가 2열 승객의 귀를 직격으로 때리는 위치이기에 만약 2열에 승객을 자주 태워야 하는 환경이라면 오디오 설정에서 리어 스피커의 음량을 낮춰두는 편이 권장됩니다.

 

 

 

 

국산 경차로서는 유일하게 2열 실내등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스파크를 타던 시절에는 헤드라이너를 칼로 찢고 배선을 따서 실내등을 직접 설치했는데 레이는 그냥 넣어주는군요. 이거 하나 넣어주는 게 뭐가 어렵다고 레이를 제외한 경차들은 다들 이걸 빼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헤드라이너는 경차임을 감안하면 제법 두텁게 마감되어 있습니다. 비가 와도 지붕에서 양철 두드리는 소리가 거의 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경차 치고는 방음에 꽤 신경 썼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도 레이는 차급을 고려하면 꽤 조용한 편에 속합니다.

 

 

 

 

천장에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이 있다면... 2열 헤드라이너에 다른 승용차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장치가 붙어있습니다. 이게 무엇에 쓰는 물건인가 하니...

 

 

 

 

네. 이렇게 써먹는 물건입니다. 정체는 2열 가운데 좌석의 승객을 위한 3점식 안전벨트입니다. 국산 승용차에서는 보기 어려운 형태인데 2열 가운데 좌석의 안전벨트를 사용하지 않을 때는 헤드라이너에 수납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해서 5인승을 만들어야 했는지는 레이를 탈 때마다 매번 의문이 듭니다. 그냥 캐스퍼처럼 2열에 2명만 태우게 만들고 4인승으로 형식승인 통과하는 게 여러모로 맞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전폭 1.6m도 채 되지 않는 경차의 2열 벤치 시트에 3명이 편안하게 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덧붙여 사진에서 보시다시피 가운데 좌석은 2개의 안전벨트 버클을 사용하는데 의도된 것인지 설계 실수인지는 모르겠지만 2열 시트를 접으면 가운데 좌석용 안전벨트 버클이 시트 뒤로 빠집니다. 만약 2열에 3명을 태워야 하는 상황이라면 이 점에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2열 시트는 의외로 슬라이딩과 틸팅을 지원합니다. 등받이와 쿠션 모두 위치 조절의 폭이 꽤 넓은 편인데 이 점을 활용하여 2열 승객이 편안한 시트 포지션을 확보하거나 승객 공간을 조금 희생하면서 트렁크 공간을 좀 더 확보할 수 있습니다. 슬라이딩 범위가 무려 20cm에 달하죠.

 

2열 시트를 끝까지 뒤로 밀어낼 경우 중형차에 가까운 넓은 레그룸을 얻을 수 있는데 레이의 2열 승객용 실내 편의장비의 위치를 고려하면 사실상 2열 시트를 끝까지 뒤로 밀어내서 탑승하는 것을 전제로 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2열 시트는 6:4 비율의 폴딩을 지원합니다. 한 가지 눈여겨 볼 부분이 있다면 시트백을 접었을 때 단순히 시트백이 접히는 것에 그치지 않고 쿠션이 시트백의 동작에 연동되어 아래로 내려온다는 것입니다. 카니발의 4열에 적용된 싱킹 시트와 유사한 구성이지요. 이렇게 시트를 접으면 쿠션이 내려오도록 만든 이유는...

 

 

 

 

네. 레이의 기묘한 시트 기믹들은 모두 이걸 위해서입니다. 레이의 진정한 초필살기, 전 좌석 풀 플랫 시트입니다.

레이의 모든 시트는 위와 같이 접을 수 있도록 구성되었습니다. 1열 시트의 볼스터가 빈약하게 구성된 것이나 2열 시트를 접었을 때 쿠션이 내려앉는 구성은 모두 시트를 접었을 때 평탄한 면이 만들어지도록 구성된 기믹이죠.

 

1열 시트의 경우 PE1까지는 동승석 시트만 완전히 접을 수 있었으나 PE2에서는 운전석 시트까지 완전히 접을 수 있도록 시트 프레임이 변경되었습니다. 다만 다른 좌석과는 달리 운전석은 스티어링 휠과의 간섭으로 인해 헤드레스트를 탈거해야 접을 수 있습니다.

 

 

 

 

모든 시트를 접으면 이와 같이 트렁크 룸부터 1열까지 이어지는 넓은 공간이 만들어집니다. 여기에 에어 매트를 깔면 성인 두 명 정도는 여유롭게 누울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지죠.

 

레이가 판매량 역주행을 시작한 비결도 사실상 여기에 달려있다고 보는 분석이 많습니다.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그동안 전국 각지를 누비는 캠핑족부터 가벼운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이르기까지 타인과 공유하지 않고 나와 내 가족만을 위한 공간을 마련할 수 있는 '차박' 문화가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했고 레이는 차박을 할 수 있는 가장 저렴한 자동차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죠.

 

 

 

 

테일게이트는 정직한 90도로 개방됩니다. 트렁크의 문턱이 다른 경차들보다 낮게 잡혀있어 부피가 큰 짐을 싣고 내릴 때 조금 더 편리하게 작용하는 부분으로 이러한 구성은 2열 전체가 화물칸으로 대체되는 밴 사양에서 확실한 이득을 가져오게 됩니다.

 

 

 

 

차급이 차급인 만큼 레이의 테일게이트는 전동식 액추에이터가 아닌 가스 리프터로 동작하기에 테일게이트 내측에는 별도의 트렁크 열림 버튼이 없습니다. 트렁크 공간이 좁은 레이에게는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트렁크 비상탈출 레버는 시동키를 사용하지 않고 맨손으로 열 수 있도록 구성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세단은 이 레버에 축광식 야광 플라스틱을 적용하여 어두운 환경에서도 보이도록 구성했는데 유독 테일게이트를 단 차량들은 이런 점에서 인색하더군요. 저 레버 뚜껑을 야광 플라스틱으로 바꾼다고 해서 디자인을 크게 해치거나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유명한 경제학 용어로 '등가교환'이 있습니다. 용어 자체는 '동일한 가치를 가진 두 상품이 서로 교환되는 행위'를 의미하지만 만화 <강철의 연금술사>를 계기로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뜻으로 약간 변형되어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레이의 트렁크가 그 변형된 등가교환의 법칙을 가장 잘 나타내는 예시가 아닐까 싶습니다. 한정된 규격의 경차에서 넓은 객실을 확보하면 그만큼 트렁크 공간은 좁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이 때문에 레이의 트렁크 공간은 현세대의 국산 경차 중 가장 좁은 수준입니다. C필러까지 한껏 뒤로 밀어낸 2열 시트의 영향이죠.

 

 

 

 

이게 얼마나 좁은 공간이냐고 하면... 네. 보시다시피 평범한 백팩조차 여유롭게 수납하기 어려운 공간입니다. 이보다 더 큰 짐을 싣기 위해서는 2열 시트의 시트백을 앞으로 당기거나 2열 시트 자체를 앞으로 밀어야 하죠.

 

 

 

 

이와 같이 2열 시트를 끝까지 앞으로 밀어내면 트렁크 매트 기준으로 20cm의 공간을 더 확보할 수 있게 되는데 기아는 이 상태에서 VDA 방식*으로 319L의 화물을 적재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정작 가장 자주 활용하게 될 2열을 뒤로 끝까지 민 상태에서의 트렁크 용량은 공개하지 않았는데 위 사진의 상태에서 2열에 사람을 태운다면 2열 승객의 민원 폭탄을 맞기 때문에 이 상태로 운전할 차주는 사실상 없을 겁니다.

 

* VDA 방식 : VDA(Verbund der Automobilindustrie; 독일 자동차 산업협회)에서는 1L 부피의 상자를 최대로 수납할 수 있는 개수를 계산하여 트렁크의 부피를 측정하는데 주로 유럽 차량들이 이 방식으로 트렁크 용량을 계산하며 한국의 자동차 브랜드들도 주로 이 방식을 채용합니다.

 

 

 

 

앞서 언급한 319L의 트렁크 용량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이 2열의 레그룸을 극단적으로 좁혀야 합니다. 이 상태에서는 성인은 편하게 탑승하기 어렵고 어린이만 탑승할 수 있을 수준이 됩니다. 즉, 레이의 2열을 활용하는 사람이라면 객실과 트렁크 간의 밸런스 게임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이런 선택지가 주어지기에 좁디좁은 트렁크 공간을 가졌음에도 레이의 트렁크 활용은 다른 경차에 비해 여유로운 편입니다.

 

 

 

 

트렁크 룸의 우측에는 트렁크 램프가 자리 잡고 있는데 초기형 TAM에서는 이 램프를 휴대용 랜턴처럼 사용할 수 있는 분리형 LED 램프가 적용되었습니다. 꽤 재미있는 아이템이었는데 아쉽게도 PE1부터 삭제되었죠.

 

유심히 보면 동그란 마개 비슷한 것이 사진의 위아래로 두 개 보일 텐데 이는 트렁크 네트를 설치하기 위한 갈고리입니다. 그런데 트렁크 네트, 그러니까 그물은 시그니처 트림부터 제공된다고 하는군요. 이거 참...

 

...그런데 스팅어는 풀 옵션을 선택해도 트렁크 네트가 별매인 것을 감안하면 그래도 레이는 풀 옵션을 넣으면 트렁크 네트를 무료로 주는군요. 와!

 

 

 

 

트렁크 아래의 트렁크 플로어를 들어 올리면 발포 스티로폼으로 만들어진 언더 트레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기본 제공되는 비상용 삼각대가 수납되는데 소화기 설치가 의무화되는 2025년형부터는 이 자리에 차량용 소화기도 함께 들어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리고 언더 트레이를 들어내면 이런 형태의 바닥이 나오는데... 많은 분들이 여기까지가 레이의 트렁크라고 생각하시더군요. 쏘카 렌트 후기를 보면 쏘카에서 도난을 우려하여 타이어 리페어 키트를 뺀 게 아니냐는 이야기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자, 머리를 조금만 더 굴려봅시다. 타이어 리페어 키트는 그렇다 쳐도 견인고리가 없으면 피견인차가 트럭의 화물칸에 통째로 올라가는 형식의 플랫베드 구난차를 호출할 상황이 되었을 때 애로사항이 꽃피게 됩니다. 그렇다면 견인고리만큼은 제공해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플로어를 한 장 더 들어 올리면 이와 같이 숨겨진 공간이 나옵니다. 즉, 레이의 트렁크 언더 트레이는 2단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2단 트레이에는 타이어 리페어 킷, 드라이버, 견인고리가 비치되어 간단한 정비 또는 비상조치에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습니다. 덧붙여 스페어 타이어가 적용되지 않는 내수시장 전용 모델임에도 스페어 타이어 수납공간과 같은 형태가 된 이유는 스페어 타이어가 필요한 해외 시장에 수출하는 피칸토(모닝의 수출명)와 같은 플랫폼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리뷰 차량에는 없지만 옵션에 따라 센터 콘솔과 1열 동승석 아래에 서랍 형태의 수납함이 추가로 설치됩니다.

 

 

 

 

마찬가지로 리뷰 차량에는 없지만 옵션에 따라 2열 객실의 좌측 바닥에는 옵션에 따라 수납함이 설치됩니다. 이 수납함은 매트를 깔면 완전히 가려지기에 많은 레이 차주가 비밀스러운 물건의 은신처로 활용한다는 비밀 아닌 비밀이 있습니다.

 

 

 

 

레이의 실내 공간은 많은 사람들이 레이를 선택하는 이유를 증명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경차의 한계를 넘어 공간 활용의 극한을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죠. 이 때문에 레이를 처음 타는 사람들은 대부분 경차답지 않은 넉넉한 실내 공간과 다재다능한 시트 배리에이션에 놀라게 됩니다. 레이를 기획하고 설계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고민했는지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지요. 다만 실내 공간을 짜내고 필러리스 슬라이딩 도어를 만드는 과정에서 운전자의 시야가 다소 희생된 부분은 아쉬운 점이군요.

 

 

 

 

 

 

#4. Perfomance : 정신과 시간의 방

 

다른 승용차, 특히 4기통 경차를 탔던 사람이 레이의 엔진룸을 열어보면 의외로 휑하다는 느낌을 받을 겁니다. 가뜩이나 작은 3기통 엔진에 에어클리너 케이스를 엔진 헤드커버 위에 올리면서 엔진룸이 작디작은 엔진과 시동 배터리만 보이는 황량한 구성을 자랑합니다. 

 

레이는 14년간 생산을 이어오면서 다양한 엔진을 적용해 왔으나 현재의 PE2에서는 딱 한 가지 엔진만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아, 전기 먹는 레이 EV는 논외로 두고요. 레이의 역대 엔진은 모두 3기통 1,000cc 배기량의 카파 엔진이지만 세부 분류를 정리하면 아래의 표와 같습니다.

 

엔진형식 최고출력 최대토크 흡기방식 연료분사 연료 적용모델 비고
G3LA 78ps
/6,400rpm
9.6kgf.m
/3,500rpm
자연흡기 MPI 휘발유 TAM, PE1 2019년형까지 적용
G3LA 76ps
/6,200rpm
9.7kgf.m
/3,750rpm
자연흡기 MPI 휘발유 PE1, PE2 2020년형부터 적용
G3LB 106ps
/6,000rpm
14.0kgf.m
/1,600~3,500rpm
싱글터보 MPI 휘발유 TAM  
B3LA 78ps
/6,400rpm
9.6kgf.m
/3,500rpm
자연흡기 MPI+LPI 휘발유+LPG TAM 바이퓨얼
L3LA 74ps
/6,200rpm
9.6kgf.m
/3,500rpm
자연흡기 LPI LPG PE1  

 

위의 표에 따르면 현재의 레이 PE2에 탑재되는 엔진은 G3LA 엔진입니다. 그중에서도 PE1의 2020년형부터 적용되는 엔진인데 이 엔진은 '카파 에코프라임'이라는 서브네임이 붙습니다. 출력을 소폭 낮추는 대신 토크를 소폭 올려 저속구간에서의 응답성을 높이고 엔진 헤드, 냉각설계, 배기가스 재순환장치 등에 개량이 더해진 버전입니다.

 

그동안 레이와 엔진을 공유하던 모닝은 3세대(JA PE)로 넘어가면서 연료분사 방식이 MPI에서 DPFI로 변경된 G3LD 엔진이 적용되는데 레이는 PE2에서도 여전히 G3LA 엔진을 사용합니다.

 

위의 표를 보시면서 의문을 가지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레이에도 터보가 있었어?"

네. 놀랍게도 레이도 터보 모델이 있었습니다. 가끔 구형 레이 중에서 레이답지 않게 빠릿빠릿한 녀석이 보일 텐데 그 녀석의 트렁크 해치를 보면 오른쪽에 'TCI'라는 엠블럼이 붙어있을 겁니다. 다만 판매량이 신통치 않았고 점점 강화되는 환경규제에 대응할 수 없어 PE1에서 단종 처리되었죠.

 

레이 터보의 단종 이후에도 레이의 심장병 문제를 해결해 줬던 터보 엔진에 대한 요청이 꾸준히 있었지만 기아는 PE2에서 터보 엔진 대신 전기차 버전을 출시하면서 출력 부족에 허덕이지 않는 레이를 찾는 소비자의 수요를 맞추고자 했습니다.

 

 

 

 

위에서 몇 번 이야기한 내용이지만 윈드실드가 엔진룸의 일부를 덮는 디자인을 가진 탓에 엔진 후드의 길이가 매우 짧아졌고 이 때문에 황량한 엔진룸 구성과는 별개로 개구부가 좁아져 정비성은 썩 좋지 않습니다. 뭘 좀 뜯어보려고 하면 어김없이 카울 커버의 간섭을 받게 되죠.

 

아무튼 더 이상 돌아오지 않는 G3LB 터보 엔진은 잊고 G3LA 엔진을 탑재한 레이에 관해 이야기해 보자면...

딱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현재 한국에서 출시되는 승용차 중 가장 느립니다.

 

기아에서 밝힌 레이의 공식 제로백, 그러니까 정지 상태에서 100km/h까지 가속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18.2초입니다. 8.2초가 아니라 18.2초입니다. 여러분께서 잘못 보신 게 아닙니다.

이게 얼마나 느린 수준인지 도로에서 흔히 보이는 차들과 비교하자면 모닝(JA) 15.5초, 아반떼(CN7) 10.5초, 쏘렌토 하이브리드(MQ4) 8.0초, 그랜저 하이브리드(GN7) 7.7초, 그리고 포터 슈퍼캡(HR) 15.2초 수준입니다. 네. 포터가 훨씬 더 빠릅니다.

※ 레이의 제조사 공식 제로백을 제외한 각 차량의 제로백은 자동차 전문매체에서 측정한 리뷰 자료들을 참조하였습니다.

 

풀 액셀을 밟으면 자연흡기 엔진답게 엔진 회전수가 순차적으로 빠르게 올라가면서 타코미터가 레드존을 찍는데도 레이는 아주 느긋하게 움직입니다. 정신 수양이 필요하신 분은 차를 레이로 바꾸시면 훌륭한 수행 도우미가 될 것입니다.

 

 

한국산 경차 중에서 유일하게 깡통 모델부터 공차중량 1톤을 넘는 육중한 체중에 비해 낮은 출력의 엔진이 얹힌 시점에서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문제인데 이 점은 레이의 엔진 제원을 참조하여 운전하는 습관을 들이면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습니다. 최대토크가 발휘되는 구간을 최대한 활용하여야 한다는 것이죠. 자연흡기 엔진답게 액셀 페달을 밟은 직후의 발진 응답성은 그럭저럭 준수한 편이기에 빠르게 토크를 확보하면 상대적으로 스트레스를 덜 받으면서 운전할 수 있습니다.

 

위의 엔진 제원을 참조하면 PE2의 엔진은 3,750rpm에서 최대토크를 발휘하는데 이 시점에서 차량을 밀어붙이는 추진력이 최대가 된다고 보면 무방합니다. 즉, 액셀 페달을 적당히 밟아서 타코미터가 3천rpm 중반대를 유지면 그럭저럭 힘을 받고 치고 나가는 레이를 볼 수 있습니다. 고속도로 주행 기준으로 100km/h로 정속 주행하면 계기판에 3,300rpm이 찍힙니다.

 

한국에서 운전을 배운 사람들의 오랜 관습으로 타코미터가 2,000rpm을 넘어가면 엔진이 폭발하는 줄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레이를 이렇게 운전했다가는 운전자의 혈압이 폭발하게 됩니다. 자신 있게 밟으십시오. 제가 6,300rpm까지 여러 번 밟아봤는데 엔진 안 터집니다.

 

 

 

 

레이에 탑재된 변속기는 A4CF0라는 형식 명칭을 가진 4단 자동변속기입니다. 2009년에 1세대 모닝(SA PE)에 처음 적용된 이래로 지금까지 현대차그룹의 경차 전용 자동변속기로 굴려지고 있는 물건이죠.

 

A4CF0가 모닝에 탑재되기 직전까지는 닛산 계열사인 자트코에서 수입한 JF405E 변속기(1998년 출시)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노후한 설계의 변속기 특유의 효율성 문제와 내구성 문제에 골머리를 앓던 현대차그룹이 JF405E를 대체하기 위해 만든 변속기가 A4CF0입니다. 덧붙여 저 JF405E는 쉐보레 스파크가 무려 2014년까지 사용했는데 경차용 변속기를 직접 개발하는 것이 얼마나 수지타산이 안 맞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죠.

 

 

아무튼 A4CF0는 처음 출시된 이래로 지금까지 소소한 개량을 거쳐오긴 했지만 근본은 아무래도 2000년대 물건입니다. 이 때문에 변속기의 다단화가 이루어지는 현시점에서 4단 변속기는 여러모로 효율성 면에서 한계에 부딪히게 되죠. 변속기의 특성 자체는 무난한 4단 변속기입니다. 특별히 변속충격이 올라오는 구간도 없고 JF405E처럼 겨울철에 변속기가 예열되지 않으면 변속을 거부한다거나 하는 일도 없습니다.

 

변속 로직은 기어비가 늘어지는 구간 없이 기어를 차근차근 올리는 타입인데 경차 4단 자동변속기가 으레 그렇듯이 2단에서 3단으로 넘어가는 구간에서 애매한 토크 부족에 걸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때문에 속도를 붙일 생각이라면 2단에서 킥다운*을 쳐서 적당히 엔진 회전수를 높이고 3단으로 빠르게 넘어가는 편이 여러모로 편안한 운전에 도움이 됩니다.

 

수동변속 모드는 4단밖에 안 되는 기어라도 최대한 운전자의 입맛에 맞게 활용할 수 있게 해줍니다. 엔진 브레이크 용도로 활용할 수 있죠. 이런 자동변속기 기반 수동모드가 대부분 그렇듯이 적정한 엔진 회전수가 맞춰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변속레버를 꺾어도 변속 로직이 변속을 거부하기 때문에 수동변속기처럼 변속을 실수해서 시동을 꺼뜨리거나 오버런으로 엔진을 태워먹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 킥다운(Kickdown) : 자동변속기 차량의 경우 액셀 페달을 강하게 밟으면 변속기의 제어유닛이 일시적으로 기어 단수를 낮추게 되는데 이를 통해 순간적인 추진력을 얻는 운전 기법입니다. 주로 추월 가속, 오르막 가속 등 순간적으로 강한 가속력과 토크가 필요한 시점에 활용합니다.

 

 

 

 

레이는 칼럼 타입 전자식 파워 스티어링, 통칭 C-MDPS가 탑재됩니다. 현대차그룹의 초창기 MDPS는 이게 자동차인지 장난감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끔찍한 조향 감각을 자랑했는데 연차가 쌓일수록 개선되면서 그래도 이제는 자동차 부품이 맞긴 맞는구나 싶은 생각을 들게 합니다. 종종 현대 N 시리즈, 기아 스팅어 등 스포츠 성향의 차종에 들어가는 R-MDPS는 "니들도 하면 할 수 있잖아!" 소리가 절로 나오게 되지만 애석하게도 레이의 MDPS는 그런 케이스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레이는 스티어링 휠의 답력이 매우 가볍게 세팅되어 있어 가벼운 힘으로도 스티어링 휠을 쉽게 돌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스티어링 휠을 돌렸을 때 바퀴가 따라 움직이는 응답성은 약간 둔하고 유격이 있는 편이라 쉐보레 스파크처럼 스티어링 휠을 돌리는 대로 코너를 칼같이 돌아나가는 핸들링은 아닙니다. 차쟁이들의 표현으로 말하자면 '꺾는 맛'과 '손에 감기는 맛'은 없습니다.

 

 

레이는 높은 전고를 생각하면 태생적으로 코너링 성능이 뛰어날 수 없는 차입니다. 실제로도 그렇고요. 하지만 레이를 가지고 스포츠 주행을 할 사람은 없을 것이기에 일상적인 주행과 고속도로 순항을 기준으로 보자면 의외로 나쁘지 않은 수준입니다. 좌우 방향으로 흔들리는 롤링은 어느 정도 있는 편이지만 의외로 앞뒤 방향으로 흔들리는 피칭은 서스펜션에서 그럭저럭 잡아주면서 기대 이상으로 코너에서 움직임을 지탱해 줍니다. 그리고 차가 조금이라도 한계를 넘어선다 싶으면 ESC*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운전자를 뜯어말립니다. 즉, 레이는 다마스처럼 코너 좀 꺾는다고 쉽게 뒤집어지지 않습니다.

 

사실 이 부분은 트리비아가 좀 있는데 2012년에 교통안전공단이 주최한 실험을 통해 전도 위험성이 높은 차종으로 찍히게 되자 2013년형부터 ROM(Roll Over Mitigation)이라 불리는 전도 예방 제어장치가 레이 전 모델에 기본 사양으로 적용되었습니다. 거기에 2015년부터는 한국에서 시판되는 전 차종에 ESC 탑재가 의무화되어 레이 또한 ESC를 기본 사양으로 탑재하면서 전복 사고의 위험성이 크게 낮아졌습니다.

 

서스펜션이 위아래로 움직이는 범위인 스트로크가 짧아서 얻은 이익도 있겠지만 레이의 차주들이 PE1을 기점으로 승차감이 크게 개선되었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이 시기에 서스펜션의 대대적인 개선이 이루어졌고 이 점이 코너링과 주행 안정성에도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 ESC(Electronic Stability Control) : 차체 자세 제어장치를 의미하며 제조사에 따라 ESP, VDC, PSM 등으로 명칭을 달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동차가 특정 범위 이상으로 균형이 무너져 운전자가 정상적인 궤도로 운전을 하기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자동차가 스스로 엔진 출력을 낮추고 각각의 바퀴별로 브레이크를 거는 양을 조절하여 운전자가 조작할 수 있는 범위 내로 자세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수행하는 전자장비입니다. 

 

 

 

 

기본적인 주행 안정성은 높은 전고를 감안하면 그럭저럭 수긍할 만한 수준입니다. 사실 레이라는 자동차의 특성상 주행 안정성을 따질 만큼 고속으로 주행할 환경이 그리 많지 않다는 영향이 가장 크지만 10년 넘게 쌓인 데이터로 야금야금 개선한 서스펜션과 경차 중에서는 독보적으로 긴 휠베이스가 의외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속도로에 올라도 풍절음과 답답한 출력이 문제가 될 뿐 직진 안정성이나 고속 안정성이 문제가 되어 운전이 어렵다는 생각은 크게 들지 않습니다. 적어도 규정 속도 내에서는 말이죠.

 

서스펜션의 특성은 기본적으로 차체의 빠른 응답성보다는 승차감을 우선으로 지향합니다. 애초에 달릴 일이 없는 차이니 당연한 선택이겠죠. 하지만 레이 자체가 덩치에 비해 꽤 무거운 차인 데다 서스펜션의 스트로크가 짧다는 특성이 있어 물침대처럼 물렁물렁하게 풀어두지는 않았습니다.

 

위에서도 잠시 언급했던 대로 롤링은 꽤 있는 편인데 피칭은 의문스럽게 잘 잡아주는 특성이 승차감에서도 그대로 반영되는데 요철, 과속방지턱 등을 밟고 지나가는 환경에서도 의외로 진동을 길게 남기지 않고 짧은 바운스로 깔끔하게 충격을 처리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심지어 토션 빔이 적용된 뒷바퀴도 의외로 나쁘지 않은 승차감을 만들어주고 있고요.

 

상위 체급의 차를 타다가 처음 경차를 타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이전에 다른 경차나 소형차를 탔다가 레이를 타는 사람이라면 승차감에 대한 불만은 딱히 나오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레이의 제동 성능은 평이한 수준입니다. 경차 최초 전 모델 4륜 디스크 브레이크의 위엄을 맛보아라! 라고 하기에는 레이의 몸무게가 너무 무겁죠. 현대차그룹의 일반 소비자 지향 차종들이 늘 그렇듯이 브레이크의 제동력이 초반에 몰리는 타입이라 브레이크 페달을 조금만 밟아도 쉽게 제동력을 끌어낼 수 있지만 이는 곧 브레이크 페달을 통해 제동력을 세밀하게 조절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페달의 조작량에 따라 브레이크의 제동력이 일정하게 조절되는 타 차종을 타던 사람이라면 이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도 장시간 제동을 반복하더라도 브레이크 시스템이 과열로 성능이 떨어진다거나 하는 현상은 포착되지 않습니다. 적어도 일반적인 주행 환경이라면 제동력 부족으로 고생할 일은 없을 듯하군요.

 

 

 

 

레이의 주행은 기본적으로 느림의 미학을 지향합니다. 만성적인 출력 부족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죠. 이 때문에 달려줘야 할 때 달리지 못하는 스트레스는 피할 수 없습니다. 하다못해 일상적인 차선 변경조차도 때에 따라서는 힘이 들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부족한 출력의 엔진을 제외한 구성 요소는 기대 이상으로 제 역할을 해내고 있습니다. 제가 레이에 대한 기대치를 상당히 낮게 잡은 탓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10년 이상을 단일 모델로 출시하면서 알게 모르게 많은 개선이 이루어진 흔적이 보이고 일상 환경에서는 부족함이 없는 만듦새를 보여줬습니다. 다만 쉐보레 스파크와 같이 경쾌한 움직임의 미니카를 운전하는 손맛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출력 부족 하나만 잡아도 레이의 전반적인 만족도가 올라갈 것으로 기대되기에 캐스퍼에 탑재된 G3LC 터보 GDI 엔진이 PE2에 탑재되지 않은 것이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기아는 그 대신 PE2 기반의 전기자동차 버전인 레이 EV를 출시했고 실제로 레이의 고질적인 심장병 문제를 해결한 레이 EV는 전문가와 소비자 양면에서 호평받고 있지만 저는 전기차를 싫어합니다. 터보 좋아! 전기 싫어!

 

 

 

 

 

 

#5. Et cetera : 작은 고추가 맵... 이게 작아?

 

레이는 예전에 출시되었던 LPG 사양을 제외하면 기본적으로 옥탄가 RON 91+의 휘발유를 연료로 사용합니다. 쉽게 말해서 일반 휘발유를 먹습니다. 연료 주입구 캡에 유종 알림 스티커가 붙어있는데 이 스티커는 기아가 아닌 쏘카에서 붙인 스티커입니다. 굳이 이렇게 스티커를 붙이는 이유는 당연히 주유구에 휘발유 대신 경유를 넣는 혼유 사고를 예방하기 위함인데...

 

이걸 헷갈리는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경차는 '경' 자가 들어가니까 경유를 넣어야 하는 거 아냐?"라는 말하는 사람을 실제로 만난 적이 있기에 자동차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안전하게 자동차를 타게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레이의 연비는 사실 경차 중에서는 가장 나쁜 수준입니다. 그럴만한 것이 연비가 나쁠 수밖에 없는 조건이 죄다 모여있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으로 경차 중에서는 가장 무거운 몸무게를 가지고 있고 그에 반해 엔진 출력은 레이를 충분히 끌고 나가기에 부족합니다. 즉, 항상 높은 엔진 회전수를 요구하고 그만큼 기름을 더 먹는다는 것이죠. 여기에 바람과 정면으로 맞짱뜨는 네모네모한 디자인 덕분에 공기저항 또한 다른 승용차에 비해 훨씬 높은 수준으로 받게 되고 이는 그대로 연비 하락으로 이어집니다. 이런 조건인 탓에 레이의 연비는 크게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레이의 제원상 연비는 14인치 타이어 기준으로 복합 12.9km/L, 도심 12.2km/L, 고속 13.8km/L로 명시되어 있습니다. 리뷰 차량의 고속도로 순항 기준으로는 14km/L 수준이 나왔는데 시가지 주행이 중심인 회사차는 평균 연비가 8km/L대에 머물러 있습니다. 도심 연비 측정 기준은 볼 때마다 한국의 실제 도심 환경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레이의 연료탱크 용량은 38L입니다. 경차의 연료탱크 용량이 통상적으로 35L 전후인 것을 감안하면 레이가 오히려 넉넉한 축에 속하지만 레이의 연비가 썩 좋은 편이 아니다 보니 체감상 얻는 이득은 크지 않습니다. 주유소를 자주 드나들어야 하는 경차의 운명은 벗어날 수 없습니다.

 

 

 

 

레이에 탑재된 ADAS(Advanced Driver Assistance System;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는 기본적으로 윈드실드에 설치된 카메라를 기반으로 합니다. 이를 기반으로 FCA(전방 충돌 방지 보조)와 LKA(차선 이탈 방지 보조)를 기본 사양으로 제공하죠. 옵션으로 후방 레이더를 추가하면 BCW(후측방 사각지대 경고)를 비롯하여 주행 중 후방의 위험 요소를 탐지하는 기능들이 추가되죠. 아쉽게도 전방 레이더는 옵션으로 제공하지 않아 전방 레이더를 기반으로 하는 SCC(스마트 크루즈 컨트롤), HDA(고속도로 주행 보조) 등은 지원하지 않습니다. 레이더를 사용하지 않는 기본적인 크루즈 컨트롤은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의문인 점은 LKA를 지원하면서 LDW(차선 이탈 경고)는 지원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저는 자동차가 강제로 조향에 개입하는 것을 싫어하는지라 보조가 아닌 경고 기능만을 사용하고 싶은데 이게 안 되더군요. 결국 제가 레이를 타는 중에는 LKA를 끄게 됩니다. 계기판에 노란색으로 LKA 꺼짐 경고등이 켜져 있음을 볼 수 있죠.

 

 

종종 ADAS, 특히 SCC와 HDA를 '반자율주행'이라는 이름으로 자율주행 비스무리한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 자율주행은 기본적으로 운전자의 개입이 없어도 자동차가 스스로 주행하고 자율주행 중 교통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자동차 제조사가 책임을 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현재 이 조건을 충족하고 시범운영 단계를 넘어 양산에 성공한 자동차는 없습니다. 현시점에서 가장 뛰어난 성능의 ADAS를 개발했다고 평가받는 테슬라조차도 아직까지 SAE 지표 기준으로 공식적인 자율주행 단계에 이르지 못했죠. ADAS는 어디까지나 운전자를 보조하는 기능이지 자율주행이 아니라는 점을 반드시 명심해야 합니다.

 

 

 

위의 이미지는 기아 GSW에 게시된 2025년형 레이의 차체 구조도입니다. 이 차체 구조도를 볼 줄 아는 차덕후들이라면 대번에 머리에 '이게 맞아?'라는 생각이 드셨을 겁니다. 빨간색을 눈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죠.

 

레이는 분명히 출시될 당시에는 동 세대 경차들과 유사한 수준의 안전성을 객관적으로 입증받았습니다. 2012년 KNCAP 평가에서 최고 등급인 종합 평가점수 별 5개를 받았죠. 하지만 그 이후로는 안전성 평가를 받은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KNCAP을 비롯한 전 세계의 안전성 시험 기관들은 매년 평가 기준을 상향시키고 평가 종목도 신설하면서 안전성 평가를 고득점으로 통과하는 것은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어려워졌고 KNCAP도 개나 소나 별 5개를 받는 것이 옛말이 되었죠.

 

문제는 레이가 점점 강화되는 안전 기준에 대응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그 사이 레이와 플랫폼을 공유하던 모닝은 JA로 세대를 교체하면서 한층 더 보강된 플랫폼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KNCAP에서 기대 이하의 저조한 성적을 받게 되자 JA PE2에서는 B필러에 울트라강으로 만든 구조물을 추가하고 서브 프레임을 캐스퍼와 동일한 사양으로 교체하여 충돌 안전성을 더 높이는 버전업을 실시했습니다. 그리고 현대차그룹의 경차 중 가장 나중에 출시된 캐스퍼는 아예 울트라강이 차지하는 비율을 대폭 높였죠.

 

하지만 레이는 PE2로 넘어와서도 울트라강을 사용하지 않고 구조용 접착제의 사용량 역시 2010년대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즉, 차대차 사고가 발생할 경우 강화된 안전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개발된 최신형 차량과 충돌했을 때 레이는 불리한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레이의 판매량을 고려하면 적어도 서브 프레임 정도는 신규로 개발해서 조금이라도 충돌 안전성을 보강해 주는 편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이는 현시점에서 경차 시장 1위를 굳건하게 유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 번째로는 위의 실내 파트에서 언급했던 차박 열풍이 있습니다. 이 점 덕분에 경차이지만 패밀리카로 사용하는 빈도가 크게 늘었고 서브카를 굴릴 여유가 되는 가정에서 레이를 서브카로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졌죠.

 

두 번째 이유는 한국의 경상용차 시장을 지탱하던 한국GM의 다마스와 라보가 후속 모델 없이 단종되면서 그 수요의 상당 부분을 레이가 받아왔다는 것입니다. 캡오버 스타일이 대세였던 일본의 경상용차들이 안전성 문제로 엔진은 여전히 1열 시트 아래에 있지만 전륜을 운전석 앞으로 넘겨 후드를 튀어나오게 만든 FMR 구동계의 왜건형 디자인으로 선회했는데 한국에서 이 패키징과 가장 유사한 경차가 레이입니다. FMR이 아닌 FF라는 차이점이 있지만요.

 

말인즉슨, 레이는 상용차로 굴리기에도 알맞은 차체 구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덕분에 다마스의 공백을 쉽게 접수할 수 있었고 다마스보다 몇백만원 정도 더 비싼 가격으로 다마스와는 비교 자체를 거부하는 수준의 안전성을 확보한 것도 수많은 자영업자와 기업들이 레이를 선택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죠. 여기에 호응하여 기아는 기존의 밴 모델에서 아예 1열 동승석까지 적재공간으로 만들어 화물 운송에 특화된 1인승 밴을 출시하기에 이릅니다.

 

 

마지막은 추정의 영역이긴 한데 아이러니하게도 캐스퍼의 출시가 레이에게 날개를 달아줬다고 생각합니다. 레이가 이전까지 경차 시장 꼴찌를 도맡아왔던 이유가 경차 중에서는 독보적으로 비싼 가격 탓이었는데 캐스퍼의 출시와 함께 경차 풀옵션 2천만원 시대가 개막되었습니다. 이제는 레이가 더 이상 비싼 경차가 아닌 시대가 되면서 레이의 가격에 대한 시장의 거부감도 함께 낮아졌습니다.

 

여기에 캐스퍼가 SUV를 표방하면서 내놓은 디자인과 기능성이 호응을 얻으면서 RV를 지향하는 레이 또한 덩달아 둘째가라면 서러운 기능성이 주목받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경차 시장의 트렌드가 저렴함이 덕목인 해치백 타입 경승용차에서 작지만 다재다능한 경형 MPV로 넘어오게 되면서 경차 시장의 꼴찌였던 레이가 단번에 시장의 선두로 올라설 수 있었죠. 캐스퍼는 죽 쒀서 개 준 꼴이 되었고요.

 

 

 

 

경차라면 당연히 챙겨야 할 것이 있죠. 바로 경차 혜택입니다. 사실 사진의 경차 전용 주차구역은 의외로 장애인 주차구역처럼 대상 외 차량 주차 시 과태료 처분이 주어지는 주차구역이 아니라 임산부 주차구역과 같은 우대 구역으로 취급되기에 경차가 아닌 일반 차량이 주차해도 경차 차주들의 눈총만 받을 뿐 제재할 근거는 없어 혜택이라 보기에는 애매하지만요.

 

경차는 기본적으로 각종 세금 혜택과 더불어 공영주차장 이용료와 고속도로 이용료 할인 혜택이 주어지는데 공영주차장과 고속도로의 이용이 많은 사람이라면 이게 상당히 크게 작용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고속주행에는 딱히 재능이 없는 차가 고속도로에서 이득을 보는 셈이죠.

 

그나저나 경차들만 모여있는 주차장인데도 바디 컬러가 죄다 무채색이라 그런지 상당히 재미없군요. 경차라면 좀 더 개성있는 색상도 어울리지 않을까 싶은데 말입니다. 

 

 

 

 

신호가 채 바뀌기도 전에 뒤에서 경적을 울리거나 차선 변경을 위해 방향지시등을 켜기가 무섭게 배구 선수도 울고 갈 칼같은 블로킹으로 빈 공간을 막는 경차를 무시하는 한국의 도로 문화는 애석하게도 제가 스파크를 처음 탔던 2013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도 회사 업무차를 탈 때마다 종종 이런 상황을 겪고는 하는데 그 때마다 저는 '주제도 모르는 굼벵이들이 까불고 있네...'라고 스스로를 마인드 컨트롤 하고는 합니다. 뭐 왜요, 한국에서 스팅어 3.3T보다 더 빠른 차가 얼마나 더 있다고요.

 

레이는 다양한 활용도만큼이나 다양한 사람들이 타는 차입니다. 레이는 운전석 문을 열고 면허증에 잉크도 마르지 않은 초보운전자가 내려도, 수십 년 경력의 택배기사가 내려도, 백전노장의 카레이서가 내려도 이상하지 않은 차이지요. 그러니까 운전자 여러분께서는 레이가 눈앞에서 기어간다고 해서 초보가 탔다고 속단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경차를 탄다고 운전자의 운전 실력까지 가벼운 건 아니거든요.

 

 

 

 

 

 

#6. Gallery : 사실 몇 장 못 찍었습니다

 

 

 

 

 

 

 

 

 

 

 

 

 

#7. Conclusion : 장수만세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레이는 분명 잘 달리는 차는 아닙니다. 하지만 자동차의 본분이 달리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가장 느린 승용차인 레이가 시장에서 14년에 걸쳐 인기리에 팔리고 있는 이유는 저조한 주행 성능을 그 이상으로 상쇄할 매력이 있다는 의미죠.

 

이쯤에서 레이의 장단점을 간단하게 세 줄 요약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 장점

- 경차 규격의 한계에 도전하는 실내공간을 기반으로 한 뛰어난 기능성

- 경차임에도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는 풍부한 편의장비와 ADAS

- 일상적인 주행 조건을 충분히 소화하는 서스펜션

 

▶ 단점

- 태생적인 출력 부족에 의한 제로백 18.2초에 빛나는 가속 성능

- 다른 승용차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독창적인 시야 사각지대

- 14년 전에 머물러 있는 안전설계

 

 

 

 

일반적으로 승용차는 5~6년을 주기로 플랫폼 단계부터 새롭게 설계하는 풀 체인지가 이루어지고 풀 체인지 이후 2~3년 이내에 페이스리프트가 이루어져 신차 효과를 한 번 더 누리게 됩니다. 하지만 레이의 경우 2011년에 출시된 이래로 2017년 1차 페이스리프트, 2022년 2차 페이스리프트를 거쳐 현재까지 판매되고 있지요. 올해로 무려 14년째 풀 체인지 없이 단일 모델로 출시되고 있는데 이 정도로 단일 모델이 장수하는 경우는 버스, 트럭 등의 상용차를 제외하면 매우 드문 사례입니다.

 

자동차 제조사도 이윤을 남기기 위한 사업체인데 수많은 연구진과 수천억 원에 달하는 막대한 개발 비용을 들여 자동차를 풀 체인지하는 이유는 결국 좋은 상품을 만들어 소비자에게 선택받기 위함입니다. 즉, 레이가 14년 동안 풀 체인지를 하지 않는 이유는 14년 전에 갖춰둔 기반이 여전히 소비자에게 매력을 줄 수 있다고 계산했음을 의미하죠.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레이는 지금도 한국의 승용차 시장을 통틀어 경쟁 모델을 찾기 힘든 포지션에 있습니다. 비록 캐스퍼가 경형 SUV라는 타이틀을 달고 레이가 가지고 있던 경형 MPV 시장에 도전했지만 되려 레이가 최신 플랫폼과 신형 엔진을 갖춘 캐스퍼를 앞서는 상황이 나왔죠. 여러모로 노익장의 힘, 장수만세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기아가 레이를 14년 동안 그저 방치만 해둔 것은 아닙니다. 꾸준히 소비자의 요구사항을 반영한 신규 편의장비를 추가하고 ADAS를 대거 추가하면서 사고 예방 안전성을 높이고자 했습니다. 다른 경차들이 EPB(전자식 주차 브레이크)를 달고 나오자 레이도 2025년형부터 EPB가 옵션으로 추가되었죠. 

 

다만 두 번의 페이스리프트를 거치면서 가격이 크게 올랐습니다. 페이스리프트를 거칠 때마다 기존에 존재하던 편의장비 일부가 삭제되는 등 알게 모르게 원가절감을 거쳐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풀 옵션 2,000만원을 넘겨버렸습니다. 심지어 얘는 터보 엔진 사양도 없는데도 말이죠. 이 때문에 PE2 출시 직후에는 상대적으로 캐스퍼가 실질적으로 더 저렴한 기현상마저 벌어졌지만 캐스퍼 또한 2024년에 페이스리프트를 거치면서 가격을 왕창 올렸기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습니다. 월급은 물가상승률 미만으로 오르는데 경차 가격은 왕창 오르는군요.

 

물론 객관적으로 봤을 때 10여 년 전 경차와 지금의 경차는 큰 차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당장 10여 년 전에는 지금과 같은 편의장비와 ADAS를 갖춘 경차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경차에 통풍 시트는 사치의 영역이었죠. 거기에 레이는 어지간한 중형 MPV 못지않은 기능성까지 보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경쟁차들이 최신 플랫폼과 강화된 안전설계를 충족하면서 레이와 비슷한 가격을 받는다는 것을 고려하면 역시 레이는 절대 저렴하지는 않은 차입니다.

 

 

 

어느 자동차든 마찬가지겠지만 레이를 선택하는 소비자라면 레이의 특성에 대해 알고 접근하면 더욱더 높은 만족도를 느낄 것입니다. 레이는 분명히 잘 팔리는 이유가 있고 그 잘 팔리는 이유가 다른 자동차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보적인 매력 포인트에 따른 것이거든요. 물론 등가교환의 법칙에 따라 여기에 뒤따르는 단점도 만만치 않은 차입니다.

 

만약에 저에게 신차로 경차를 사라고 하면 어떤 차를 선택할 것이냐면... 캐스퍼에 터보 엔진과 ADAS만 옵션으로 얹어서 사겠습니다. 지금까지 레이 칭찬 실컷 해놓고 왜 레이를 안 사냐고요? 레이 터보를 주십쇼! 전기 말고!

Posted by Litz Blaz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