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이제 와서 모터쇼 후기라고?
2021년부터 '서울모터쇼'가 '서울모빌리티쇼'로 이름을 바꾼 이후 2023년에 두 번째 행사를 열었습니다. 갔다온 건 4월 5일인데 어째서 이제서야 적느냐 하면...
사실 평소의 저는 행사를 관람할 때 사진 실컷 찍고 후보정, 선별까지 다 끝내놓고도 포스트 작성은 포기하고 드랍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번에도 그 패턴에 들어갈 뻔 했는데 어떤 일이 계기가 되어 다시 키보드를 잡았습니다.
이미 두 달이 지난 시점이라 신차로서의 떡밥이 식기도 했고 큐레이터에게 들었던 해설 또한 기억 속에서 희미해질 시점이라 모터쇼의 맛을 제대로 살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왕 쓰기로 한 거 올해의 썰풀이도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2023년 4월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이번 포스트에서도 작년과 마찬가지로 전기자동차 관련 약어를 다수 사용할 예정입니다. 범례는 아래를 참조해주시길 바랍니다.
[참조 링크] 2022 부산국제모터쇼 : 이제 국제 딱지는 좀 뗍시다...
* ICE(Internal Combustion Engine) : 내연기관을 의미합니다. 즉, 우리가 알고 있는 기름 먹고 달리는 자동차입니다.
* BEV(Battery Electric Vehicle) : 별도의 연료 주입 없이 배터리로만 전력을 얻는 전기자동차를 의미합니다. 통상적으로 별다른 수식어 없이 'EV'라는 약칭을 사용하는 차량은 십중팔구 BEV를 의미합니다.
* HEV(Hybrid Electric Vehicle) : 내연기관과 모터 동력을 함께 사용하는 자동차를 의미합니다. 한국 시장에서는 HEV라는 약어보다는 '하이브리드'라 칭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 MHEV(Mild Hybrid Electric Vehicle) : 통칭 '마일드 하이브리드'로 불리며 통상적인 HEV보다 낮은 출력의 모터를 사용하는 HEV입니다. 모터는 내연기관의 출력을 보조하는 역할만 수행하며 다른 HEV와는 달리 모터 단독으로 차량을 구동시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 PHEV(Plug-in Hybrid Electric Vehicle) :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로 불리는 방식으로 BEV처럼 충전기를 통해 배터리를 충전할 수 있는 HEV입니다. HEV 중에서는 모터의 출력이 가장 높아 그만큼 모터 동력의 비중이 높은 방식으로 경우에 따라 내연기관은 구동에 전혀 관여하지 않고 발전기 가동에만 사용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 FCEV(Fuel Cell Electric Vehicle) : 수소연료전지를 통해 전력을 얻는 전기자동차입니다. 연료전지를 통해 모터를 구동하기 위한 전력을 직접 생산하기 때문에 배터리의 사이즈는 BEV 대비 소형화된 대신 연료전지를 가동하기 위한 수소 연료탱크를 사용합니다.
#1. 모터쇼 관람 보고서
▶ KG모빌리티
제가 모터쇼 후기를 작성할 때는 현대자동차를 가장 처음 소개하는 불문율 아닌 불문율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열리는 모터쇼는 별 수 없이 한국 시장에서 최고의 점유율을 가진 현대차가 주인공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번 모터쇼에서만큼은 이 회사가 주인공이었다는 데에 부정하실 분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 봅니다.
쌍용자동차는 한때 사륜구동의 명가로 이름을 날렸지만 1998년에 쌍용그룹의 손을 떠난 이후 20년이 넘는 세월동안 수 차례 주인이 바뀌면서 결코 순탄하다고 말할 수 없는 행보를 밟았기에 더이상 과거의 영광을 되찾지 못할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던 중 KG그룹이 벼랑 끝의 쌍용자동차를 인수했고 KG그룹은 쌍용자동차의 역사를 잇되 이름은 갈아엎기로 결정합니다. 바로 KG모빌리티죠.
KG모빌리티의 사명으로 출시되는 첫 차는 토레스의 BEV 사양인 토레스 EVX입니다. 이번 모터쇼에서 세계 최초로 공개되는 월드 프리미어 모델 중 하나죠.
토레스가 쌍용의 전성기에서 따온 터프한 디자인을 무기로 위기의 쌍용을 구해냈다고 평가받았던 모델이기에 토레스가 BEV화 되더라도 디자인의 변화는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의외로 프런트 마스크가 큰 폭으로 변경되었습니다. 라디에이터를 생략할 수 있는 BEV의 특성을 살리면서 패밀리룩을 만들려고 한 시도로 보이는데...
어째 생각나는 게 있죠? 현대의 심리스 호라이즌 램프와 지프의 세븐슬롯 그릴을 섞어놓은 듯한 것이 오리지널리티는 썩 좋아보이지 않습니다만 어디서 많이 보던 익숙한 요소들로 구성했기에 디자인의 안정감은 그럭저럭 괜찮아 보입니다. 다만 ICE 모델의 디자인이 워낙 캐릭터가 강했기에 EVX 쪽은 조금 심심해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쌍용의 첫 BEV인 코란도 이모션은 LG에너지솔루션(이하 'LG엔솔')의 배터리를 적용했지만 LG엔솔은 차량의 정상적인 판매를 어렵게 만들 수준으로 심각한 납품 지연을 선사했고 쌍용은 이 때문에 골머리를 앓아야 했습니다. 이 때의 경험 탓인지 토레스 EVX는 LG엔솔 대신 중국의 비야디로부터 리튬인산철 배터리를 공급받는 것으로 결정했습니다. 코란도 이모션의 배터리 공급원도 덤으로 바뀔 예정이고요.
그리고 토레스의 배리에이션 모델인 토레스 TX도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되었습니다. 다만 월드 프리미어라고 힘주고 메인 턴테이블에 올라온 것치고는 평범한 드레스업 트림입니다. 어째 토레스 LPG 하이브리드바이퓨얼 때도 그렇고 얘네들 회사 이름이 바뀌어도 말장난하는 버릇은 여전하군요. 토레스 TX는 조금 더 오프로드에 어울릴 법한 액세서리들로 꾸며진 디자인 패키지입니다.
큐레이터에게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질문했는데 기본적으로 파워트레인은 기본 모델과 동일, 승차감을 개선했다고 하지만 정작 서스펜션의 구조적인 변경은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승차감을 개선했는지, 아니면 부스 담당자가 큐레이터에게 상품의 특성에 대한 기본적인 교육조차 하지 않았는지는 알 길이 없군요.
앞서 소개한 토레스 EVX의 프런트 마스크를 빼다박은 픽업트럭 컨셉트인 O100도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되었습니다. 차량의 곳곳에 새겨진 엠블럼을 보면 양산차로 출시되었을 때의 이름은 '토레스 EVT'가 유력한데 이름대로 기본적인 포맷은 토레스 EVX와 공유하고 플랫폼 또한 토레스의 모노코크 플랫폼을 수정하여 적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프레임 바디를 적용하는 기존의 쌍용 픽업트럭들과는 여러 모로 다른 성격이 될 확률이 높은데 현재 KG의 밥줄인 렉스턴 스포츠와 투 트랙 전략으로 갈 지, 아니면 렉스턴 스포츠를 대체하는 후속모델이 될 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듯 합니다. 일단 KG가 탈 디젤엔진 선언을 한 상황이라 렉스턴 스포츠의 e-XDI 엔진이 올라갈 확률은 낮고 토레스 EVX의 배리에이션으로 소개된 만큼 이 차도 내연기관을 고려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디자인의 전체적인 구성요소는 아웃도어 레저스포츠를 다분히 염두에 둔 모습입니다. 카울커버 위에 유틸리티바를 달아 액션캠을 부착할 수 있도록 구성한 부분이 꽤 재미있군요.
컨셉트카로 등장한 만큼 토레스 EVX와는 달리 실내는 공개되지 않았는데 의외로 베드(적재함)는 베드라이너를 들어올릴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베드라이너를 들어올리면 베드 내에 마련된 수납공간과 함께 우측 아래에 V2L* 커넥터를 발견할 수 있는데 저는 이걸 보면서 V2L이 PTO의 전기자동차식 해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V2L(Vehicle to Load) : 전기자동차의 배터리 전력을 외부로 인출할 수 있는 시스템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서 전기자동차를 바퀴 달린 보조배터리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기술이죠.
PTO(Power Take Off; 동력인출장치)라고 하면 생소하실 분들이 꽤 있을건데 주로 트럭에 적용되는 장치입니다. PTO는 엔진으로 외부의 기계를 구동시킬 수 있게 만들어주는 장치를 뜻하는데 농촌 등지에서 1톤 트럭으로 양수기를 돌리거나 특장차량의 특장 설비에 동력을 공급하는 식으로 사용되죠. V2L이 SUV나 세단에 적용될 때는 그저 차박용 가전제품의 구동 정도만 생각했는데 이게 트럭에 붙어있으니 용도가 다르게 보이는군요.
다만 무거운 화물을 싣는 트럭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베드라이너의 내구성이 심히 의심되는 구조이기에 실제로 양산단계에 접어들면 베드라이너가 개방 불가능한 고정식으로 바뀌고 V2L 커넥터의 위치가 변경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F100이라는 이름의 컨셉트카도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되었습니다. 앞서 소개한 O100과는 달리 전기자동차 전용 신규 플랫폼을 적용할 것으로 알려진 것 외에는 많은 점이 베일에 싸여져 이번 모터쇼에서 알 수 있는 내용은 사실상 디자인 뿐이었습니다.
체구를 보면 여러 모로 렉스턴과 유사한 준대형 SUV의 포지션으로 보이며 전체적인 디자인은 토레스를 시작으로 KG가 추구하고자 하는 디자인 기조를 충실히 반영하고 있습니다. 도심형 SUV를 지향하는 경쟁차들과는 달리 작정하고 오프로더로 가겠다는 거죠.
토레스가 스페어 타이어를 모티브로 한 가니쉬를 트렁크 해치에 넣었다면 F100은 제리캔, 그러니까 '지프차 기름통'에서 따온 듯한 디자인을 트렁크 해치에 넣었습니다. 토레스와의 차이점이라면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V2L 어댑터를 수납하는 도어로서 적용했다는 것인데 비상용 연료를 수납하는 용도의 제리캔에서 모티브를 따왔으면서 정작 에너지원을 외부로 방출하는 장치로 작동한다는 것이 꽤 재미있는 포인트군요.
아울러 이번 모터쇼에서 사명 변경과 함께 새로운 사업 비전을 선포한 만큼 기존의 쌍용 엠블럼이 어떻게 바뀔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쏟아졌는데 KG는 KG모빌리티의 새로운 워드마크만 선보이고 엠블럼은 기존의 쌍용 엠블럼 중 수출용으로 주로 적용되던 날개 형태의 '윙 엠블럼'을 사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KG그룹의 CI가 자동차에 적용되는 모습이 쉽게 연상되지 않긴 했다만...
아무래도 KG의 입장에서는 회사의 이름을 바꿀 정도로 이미지 리빌딩에 힘쓰고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기존의 인지도를 완전히 버릴 수도 없다는 고육지책으로 풀이됩니다. 쌍용이 의외로 해외의 몇몇 시장에서 가성비 좋은 SUV를 만드는 회사로 소소하게 인지도가 있었기 때문이죠. 덧붙여 쌍용의 구세주인 J100 프로젝트에 '토레스'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쌍용차 칠레 딜러가 제안한 이름이라고 하죠.
KG의 전신인 쌍용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차를 꼽으라면 1990년대 중반을 장식한 무쏘와 2세대 코란도(KJ)를 떠올릴 분들이 많을 겁니다. 예나 지금이나 고급차의 상징 중 하나인 벤츠로부터 기술제휴를 얻어내면서 고급 SUV 전문 메이커로서 이름을 날렸고 쌍용차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 때의 추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죠.
동 시기에 등장한 무쏘도 뛰어난 디자인이었지만 2세대 코란도, 통칭 '뉴 코란도'는 3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시점에서 봐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혁신적인 디자인을 자랑하면서 당시 대학생들의 드림카로 손꼽혔습니다.
쌍용의 팬들은 티볼리의 반짝 성공에 정신이 팔려 티볼리 대중소를 찍어내는 쌍용을 보고 "제발 뉴 코란도 디자인 그대로 신차를 내달라!"고 아우성을 쳤는데 어느 날 갑자기 'KR10'이라는 프로젝트명과 함께 스케치가 공개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스케치를 본 사람들은 쌍용빠 쌍용까 가리지 않고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외쳤죠. "이게 진짜 코란도다!"
무성한 소문과 함께 차덕후들의 관심을 끌어모은 그 KR10이 이번 모터쇼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되었습니다.
전시된 모델의 절반은 디자인 조형작업의 절차 중 하나인 클레이 모델서로 공개되었습니다. 즉, 기술적인 검토와는 별도로 디자인의 검토만을 위해 만들어진 목업 모델이죠.
KR10의 스케치가 처음 공개되었을 당시 쌍용의 이강 디자인센터장은 인터뷰에서 '이 차의 이름은 무조건 코란도여야 한다'고 강조했고 이를 반증하듯 전면 범퍼와 트렁크 해치에는 코란도라는 이름표를 달고 나왔습니다.
KR10의 디자인 모티브는 굳이 말할 것도 없이 뉴 코란도입니다. 아무리 자동차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그 시절의 코란도를 봤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연상할 수 있는 디자인이죠.
KG가 토레스 EVX를 시작으로 줄줄이 전기자동차 라인업을 채울 계획의 일환으로 KR10도 BEV 사양이 먼저 출시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다만 ICE를 배제할 것이 유력한 O100, F100과는 달리 KR10은 BEV 출시 이후 가솔린 ICE 사양의 출시도 검토되고 있다고 하죠.
일단 ICE와 BEV를 함께 고려한다는 것을 보면 4세대 코란도(C300)의 모노코크 플랫폼을 활용할 가능성이 높긴 한데... 정통 오프로더 이미지를 갖추는 만큼 모노코크 구조가 아닌 프레임 바디 구조를 기대하기에는 랜드로버 디펜더조차 2세대부터 모노코크로 나오는 판이니 무리겠죠?
위에서 소개한 F100에 적용되는 BEV 전용 신규 플랫폼도 함께 공개되었습니다. 플랫폼에 별도의 이름을 붙이는 타사들과는 달리 아직까지는 별도의 정규 명칭 없이 '신규 EV 플랫폼'이라고만 칭해지고 있습니다.
BEV 전용 플랫폼들이 으레 그렇듯이 넓고 낮은 배터리 패키지를 중심으로 한 스케이트 보드 형태로 섀시를 구성하는 부품들이 대폭 간소화된 모듈화 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국 이 플랫폼의 핵심은 모터와 배터리인데 KG는 비야디와 함께 플랫폼을 개발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앞서 설명한 토레스 EVX의 배터리 공급사죠.
쌍용이 중국의 상하이자동차에게 인수되었다가 영혼까지 먹튀당하고 폐업 직전까지 갔던 역사를 기억하면 KG의 미래를 또다시 중국 회사에게 건다는 상황 자체가 아이러니하긴 하지만 전기자동차 업계에서는 후발주자인 KG에게는 별다른 선택지가 없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중국 정부가 국책사업으로 밀어붙인 덕에 비야디가 전기자동차 분야에서만큼은 나름대로 업계 선두에 위치한 회사 중 하나라는 것도 KG가 비야디를 파트너로 선정한 이유 중 하나라고 봅니다.
KG모빌리티의 출범과 함께 'KG S&C'라는 이름의 자회사도 함께 공개되었습니다. 캠핑카 등의 특장차 제작과 애프터마켓용 커스터마이징 부품을 전담하는 특장 전문업체죠. 쌍방울그룹이 그룹 산하의 특장차 전문업체인 광림을 앞세워 쌍용 인수전에 참여하면서 KG그룹의 경쟁자가 되었던 전적이 있는데 어째 이를 티배깅하는 듯한 행보처럼 보이기도 하네요.
▶ 현대자동차
부스의 전체적인 구성과 분위기는 작년의 부산국제모터쇼 때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합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부스는 그대로 두고 전시차만 바꿨다고 해도 믿을 정도이지요.
수십년간 한국의 국민 승용차이자 세단의 기준으로 불렸지만 8세대 DN8을 기점으로 몰락했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쏘나타의 위상이 추락하면서 자존심을 한껏 구긴 현대는 대대적인 페이스리프트를 통해 분위기를 반전시키기로 결정했습니다. DN8 쏘나타의 페이스리프트, 통칭 쏘나타 디 엣지를 이번 모터쇼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했습니다.
디자인의 평가가 좋았을 때는 코스매틱 체인지 수준의 터치만을, 평가가 망했을 때는 신차 수준의 풀 스킨 체인지를 시도하는 현대차답게 혹평과 함께 메기타라는 놀림을 받게 만든 DN8의 기존 이미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디자인을 갈아엎었습니다. 과연 쏘나타 디 엣지는 형제모델 K5에게 빼앗긴 중형 세단 시장의 선두 자리를 되찾을 수 있을까요?
전체적인 디자인 기조는 스타리아를 기점으로 현대의 패밀리룩 요소가 된 심리스 호라이즌 램프+분리형 헤드램프를 중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유려한 곡선을 중심으로 조형했던 DN8과는 달리 날카로운 각과 직선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면서 공격적이면서도 무기질적인 이미지가 대폭 강조되었는데 이 때문에 심리스 호라이즌 램프의 별명인 '로보캅 룩'이 더더욱 확고하게 굳어지게 되었습니다. 어쨌든 메기보다는 훨씬 양반이군요.
6세대 YF 때부터 시작되어 쏘나타의 디자인 포인트 중 하나로 자리잡았던 윈도우 몰딩에서 후드를 가로질러 헤드램프까지 이어지는 크롬라인은 쏘나타 디 엣지에서는 삭제되었습니다. 사실 저 디자인에서 헤드램프까지 크롬몰딩을 연결하면 메기 시즌 2가 될 것이 뻔하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긴 합니다.
로보캅 룩 중 가장 완성도가 높다고 생각될 정도로 견고한 조형을 선보인 전면과는 달리 측면과 후면은 금형을 처음부터 만들 수 없는 페이스리프트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측면은 펜더 금형까지 수정하면서 새로운 디자인을 최대한 받쳐주고자 했지만 윈도우 라인과 사이드 캐릭터 라인만큼은 어쩔 수 없이 남아 직선 중심의 프런트 마스크와 이질감을 만들었고 후면은 기존 DN8의 금형을 최대한 살리면서 현대의 새로운 패밀리룩 요소를 집어넣으려고 하다보니 여러 모로 어정쩡한 모양새가 되었습니다.
트렁크 리드의 조형을 뜯어고칠 수 없었다면 억지로 호라이즌 램프를 사용하는 것보다는 기존의 ㄷ자형 테일램프를 살리는 것이 차라리 나았을 뻔 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저 뿐일까요. 패밀리 세단에 저 테일램프 디테일은 욕심을 과하게 부린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DN8에 이어 쏘나타 N 라인의 페이스리프트도 함께 공개되었습니다. 페이스리프트로 넘어오면서 생긴 가장 큰 차이는 파워트레인의 구성 변화인데 2.5T 엔진으로만 운영되었던 기존의 N 라인과는 달리 하위 엔진인 2.0 NA 엔진과 1.6T 엔진도 선택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습니다. 즉, N 라인이 준고성능 퍼포먼스 트림이 아니라 드레스업 트림으로 격하된 것이죠. 그나마 양심은 있는 것인지 2.5T 엔진은 N 라인 전용사양으로 남았습니다.
이러한 기조는 먼저 출시된 아반떼 N 라인의 페이스리프트에서 1.6T 엔진이 삭제된 것, 그리고 SUV 라인업의 N 라인들이 파워트레인 변경 없이 디자인 요소만 추가된다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적당히 매운 맛을 추구하던 기존의 N 라인과는 달리 타사의 '라인'처럼 퍼포먼스 라인업의 향만 추가하겠다는 거죠.
이번 페이스리프트에는 신규 파워트레인의 추가는 없습니다. 사실 현대차그룹이 2021년 말에 엔진연구센터를 폐쇄했을 때부터 예견된 일이긴 하지만요.
아무튼 페이스리프트로 넘어오면서 전체적인 디자인이 한층 더 날카로워져 N 라인이 추구하는 이미지에는 좀 더 어울리는 디자인이 되었습니다. 다만 일반 모델과 N 라인 간의 상당한 차별화가 이루어졌던 기존의 DN8과는 달리 N 라인만의 디자인이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입니다.
덧붙여 일반 사양, N 라인과는 달리 HEV 사양은 내측에 별도로 마련된 히든 부스에 전시했다고 하는데 쏘나타에 HEV 사양을 처음 내놓는 것도 아니면서 굳이 히든 부스를 구성한 이유는 알 수 없군요. 아무튼 저는 못 찾아서 사진을 못 찍었습니다.
올해 1월에 2세대 SX2로 풀체인지를 거친 코나의 BEV 사양인 코나 일렉트릭이 이번 모터쇼를 통해 월드 프리미어로 등장했습니다. 전체적인 디자인은 그대로 공유하면서 투톤으로 처리되었던 펜더에 모노톤 바디컬러 페인트를 입히고 현대차가 심리스 호라이즌 램프와 함께 패밀리룩 요소로 밀고 있는 파라메트릭 픽셀 패턴을 더한 정도가 디자인 상의 차이점이군요.
SUV판 핫해치라 불릴 정도로 기민한 운동성능으로 호평받았던 1세대 OS와는 달리 2세대 SX2는 심리스 호라이즌 패밀리룩을 밀기 시작한 최근 현대차의 기조에 따라 컴포트 중심의 승차감에 치중하면서 되려 퇴보한 운동성능을 보여 기존의 코나 팬들에게 큰 반발감을 불러왔습니다. BEV 사양에서도 이런 성향이 이어질 지, 아니면 BEV는 OS의 명성을 되찾...
아니, 1세대 코나 일렉트릭이 유독 잦은 화재 사고에 시달려 현대차의 이미지 실추에 혁혁한 공을 세운 것을 생각하면 BEV만큼은 OS의 명성을 되찾으면 안 되겠군요. LG엔솔에서 배터리를 전량 공급받았던 1세대와는 달리 2세대부터는 LG엔솔과 중국 CATL의 배터리를 병용하여 적용합니다.
데뷔와 함께 경차 시장의 중추가 된 캐스퍼는 이번 모터쇼에서는 캐스퍼 인 아트라는 테마를 걸고 등장했습니다. 캐스퍼 그리기 대회 수상작, 프로게임단 젠지 e스포츠와의 콜라보레이션 등으로 꾸며진 모델들이 전시되었는데... 사실 모터쇼 하면 쉽게 연상할 수 있는 캠페인 성격의 쇼카죠.
스페셜 에디션으로서 시중에 시판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특별히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람다람 콜라보레이션은 한정판으로 내놓으면 꽤 인기가 있을 것 같은데 말이죠.
지난 2022년 부산국제모터쇼의 주인공이었던 아이오닉 6는 이번 모터쇼에서는 현대차가 인수한 보스턴 다이나믹스의 기술을 활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충전 로봇과 함께 등장하면서 전시차보다는 조형물 성격이 되었습니다. 2019년 서울모터쇼에서 넥쏘를 이동식 공기청정기로 사용했던 구성이 생각나는군요.
현대차의 전기차 충전소인 E-pit는 DC 450V를 사용하는 통상적인 DC콤보 타입 급속충전기와는 달리 DC 800V 전압의 전기를 취급하면서 차량 내부의 배선은 여러 방면에서 효율화 및 경량화가 이루어졌지만 여전히 충전 케이블의 무게는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고 일반 운전자도 취급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지만 취급 미숙에 의한 감전사고의 우려도 배제할 수 없기에 이런 형태의 충전 로봇의 등장은 어느정도 예견된 일이긴 했습니다.
보스턴 다이나믹스 소속의 로봇들이 일상에 어우러지는 구성의 전시도 작년과 판박이입니다. 그나저나 올해에도 로봇 개 스팟이 움직이는 모습은 못 봤군요.
작년에 유튜브 영상으로 공개되면서 전 세계의 이목을 한 몸에 받았던 N 비전 74도 이번 모터쇼에서는 실물로 등장했습니다. 사실 실제 주행 가능한 테스트카는 지금도 남양연구소를 비롯한 시험장에서 테스트 중이고 모터쇼에 전시된 모델은 외형만 구현한 레플리카입니다. 레플리카는 총 두 대가 제작되어 한 대는 충남 태안의 HMG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 센터에 전시되어 있고 나머지 한 대가 세계 각지의 전시행사를 돌고 있지요.
작년에 드라이빙 센터에서 처음 봤을 때도 그랬지만 다시 봐도 여러 모로 대단한 디자인이군요. 익히 알려진 대로 1974년에 공개되어 양산 직전에 프로젝트가 폐기된 포니 쿠페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디자인으로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디자인한 원본 디자인을 재해석하면서 과거에서 보는 현재, 그리고 현재에서 보는 과거가 조화된 레트로 퓨처리즘의 정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덧붙여 이름의 74는 포니 쿠페가 등장한 1974년에서 따온 이름으로 현대는 2023년의 현대차그룹 신년회에서 74를 'Seventy Four'가 아닌 '칠사(chilsa)'로 읽는다고 언급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이 보도를 내놓은 언론사가 단 한 곳 뿐이라 진위 여부는 파악하기 어렵지만 사실이라면 토요타 86이 ハチロク(하치로쿠; 일본어로 '팔육'을 의미)로 불리는 것과 같은 맥락인데 이제는 한국어로 브랜드를 내놓을 수 있을 정도로 세계 시장에서의 입지가 올랐다는 현대의 자신감으로 해석됩니다.
N 비전 74는 배터리와 수소연료전지를 함께 얹은 시스템 출력 680마력의 수소+전기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을 사용합니다. BEV와 FCEV의 성격을 함께 가진 셈이죠. 이 중 연료전지 스택은 넥쏘와 동일한 모듈을 사용하는데 현재 사용 중인 연료전지 스택의 차세대 모듈이 당초 예정인 2023년에서 연기되어 2026~27년 쯤에나 출시될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 차의 기술적인 완성 또한 좀 더 장기적으로 지켜봐야 할 상황이 되었습니다.
N 비전 74의 양산 가능성을 놓고 많은 말들이 오가고 있지만 현대차그룹은 이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자세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가능성은 열어두고 있다 정도의 뉘앙스만 흘리고 있지요. 만약 양산되더라도 타 브랜드의 슈퍼카와 마찬가지로 일반인은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고가에 출시될 것으로 예상되기에 판매량은 기대할 수 없는 모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브랜드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헤일로 카로서의 역할은 그동안 현대가 내놓았던 어떤 차보다도 이 녀석이 적임자라고 생각되기에 개인적으로는 양산에 성공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비록 로또 1등에 당첨되지 않는 이상 구입하지는 못할 지라도요.
전체적으로 포니 쿠페의 오마주를 따르고 있고 1970~80년대 랠리카의 디테일 요소를 곳곳에 반영하여 디자인되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리어 엠블럼 자리에 포니로 대표되는 과거의 현대차가 적용했던 워드마크를 그대로 적용한 부분을 화룡정점으로 꼽고 싶습니다. 정말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포니 쿠페의 직계 후손임을 강조하는 부분이라고 생각되거든요.
작년에 N 비전 74와 함께 공개되었던 RN22e는 매년 버전업을 하던 RM-RN 시리즈의 관례를 깨고 작년과 같은 22 버전으로 등장했습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없네요. 적어도 외관 상으로는 말이죠.
물론 레플리카 모델이 아닌 실차는 연구소를 구르면서 데이터를 쌓으면서 처음 등장했을 당시와는 꽤 다른 차가 되어있을 겁니다. 그리고 RN22e와 기아 EV6 GT에서 얻어낸 실전 데이터들은 조만간 출시될 아이오닉 5 N에 반영될 예정이죠.
담당 큐레이터에게 아이오닉 N과 관련된 몇몇 질문을 던져봤는데 꽤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일단 큐레이터의 말로는 아이오닉 5 N의 600마력 설은 소문일 뿐이고 EV6 GT와 같은 출력을 가져가는 대신 코너링 세팅을 비롯한 운동특성에서 EV6 GT와 차별화를 꾀하는 것으로 세팅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현대의 전동화 N은 고성능 내연기관의 감성을 전기자동차 시대에도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하는데 사실 이건 현대 뿐만 아니라 고성능 자동차를 만들어본 경험이 있는 브랜드들 대부분이 가지고 있는 고민이기에 이걸 어떻게 풀어낼 지 기대가 되는군요. 적어도 현대는 N이라는 엠블럼을 달고 있는 차에 대해서는 진심이었거든요.
이번 모터쇼의 유일한 상용차 전시모델인 파비스는 더 뉴 파비스라는 이름으로 뜬금없이 월드 프리미어 딱지를 달고 나왔는데 실상은 약간의 상품성 개선이 더해진 연식변경 모델입니다. 아니, 적어도 월드 프리미어라고 홍보할 거면 페이스리프트 정도는 하고 나오라고...
파비스는 측면의 스크린을 통해 다양한 특장차로 개조되어 일상 속에서 항상 접하는 자동차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해야 할 일을 합니다'라는 슬로건을 건 현대 상용차 부문의 홍보 방향이기도 하죠.
그러고보니 파비스의 전작인 메가트럭은 24년간 단일 모델로 출시되었다가 단종되었는데 파비스는 얼마나 장수만세를 외칠지 모르겠군요. 이제는 볼보 FL, 스카니아 P 시리즈, 벤츠 아테고 등 해외 시장에서 한 가닥 하는 중형 트럭들이 줄지어 한국 시장에 투입되고 있는 중이라서 말이죠.
▶ 기아
2017년 서울모터쇼에서 기아는 스팅어의 소개에 부스 전체의 스포트라이트를 쏟아부은 경력이 있습니다. 네. 이번에도 신차 하나를 소개하는 데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습니다. 그만큼 기아에서 거는 기대가 큰 차라는 의미겠죠.
작년에 컨셉트 EV9을 통해 미리보기로 선보였던 미드사이즈 전기 SUV인 EV9의 정식 양산 모델이 월드 프리미어로 등장했습니다. 기아 EV 시리즈의 최상위 모델이자 기아의 새로운 플래그십으로 자리잡게 될 모델이죠.
기아에서는 기아라는 브랜드 자체는 프리미엄을 지향하지 않지만 EV9은 프리미엄 모델로 간주한다고 밝혔습니다. 에센시스 브랜드로 분리가 검토되었다가 무산되었던 기아의 프리미엄 삼총사인 스팅어, K9, 모하비와 같은 전략으로 운영하겠다는 의미죠.
컨셉트카 시절의 디자인을 거의 대부분 구현했지만 컨셉트카의 얇은 헤드램프로는 실제 주행에 필요한 조도 확보가 어려웠던 모양인지 헤드램프만 약간 더 두꺼워진 모양새입니다. 다만 이 약간의 터치가 인상을 의외로 많이 바꾼 탓에 컨셉트카 시절에는 딱히 나오지 않았던 살찐 레이, 쏘울 대짜 등 기존의 박스카 라인업을 뻥튀기시킨 인상이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진에서 보시다시피 플로어에 전시된 EV9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멀쩡한 사진을 찍을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촬영을 말아먹나 싶다가...
부스 한 켠에 EV9 GT 라인 한 대를 별도 전시로 빼놨더군요. 커튼형 분수로 둘러져 있어 사람이 접근할 수 없었기에 촬영 자체는 어려웠지만 어쨌든 온전한 사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나름대로 사진쟁이들에게 배려를 해줬다고 해야 할지...
EV9 GT 라인은 EV6 때와 마찬가지로 4WD 트림을 기반으로 한 상위 트림으로 외형 상으로는 범퍼와 라이팅 그릴을 통해 일반 모델과의 차별화를 시도했습니다. 사진에서는 잘 안 보이지만 프런트 범퍼에 1개의 레이더(RADAR; 전파식 탐지 및 거리측정장치)와 2개의 라이다(LiDAR; 광학식 탐지 및 거리측정장치)가 부착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 SAE(미국 자동차학회) 기준 '레벨 3(Conditional Automation; 조건부 자동화)'에 해당하는 수준의 자율주행을 구현할 수 있습니다. 특정 조건 하에서는 자동차가 스스로 주행할 수 있지만 자동차가 운전자의 개입을 요청했을 경우 운전자는 이에 따라야 하며 그에 대한 책임도 운전자에게 있는 단계죠.
현대차그룹은 HDP(고속도로 주행 보조)라는 이름으로 레벨 3 자율주행 시스템을 공개했는데 현대차그룹이 밝힌 작동 조건은 고속도로 또는 자동차전용도로에서 80km/h 이하 속도에서의 주행입니다. 현 시점에서 레벨 3 인증을 받은 해외 브랜드들의 인증 조건이 50~60km/h 수준에 머물러있는 것을 감안하면 거의 처음으로 쓸만한 수준의 레벨 3 시스템이 등장한 것이죠.
북미 시장에서는 미드사이즈이지만 한국 시장에서는 대형으로 분류되는 만큼 현대차그룹의 BEV 전용 플랫폼인 E-GMP를 적용한 차 중 가장 큰 차로 등장했고 이에 따라 배터리 용량도 99.8kWh로 증가하면서 공차중량이 무려 2.6톤에 육박하게 되었습니다. 가격표가 공개되자 국산차 주제에 풀옵션 때리면 1억이라는 불평이 나왔지만 BEV의 원가상승 지분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배터리의 용량과 이 차에 집어넣은 수많은 편의사양들을 감안하면 고가이기는 해도 아주 납득 못할 가격까지는 아니긴 합니다.
다만 국산차 최초로 도입되는 옵션 구독 제도는 타사와 마찬가지로 시원하게 욕을 얻어먹고 있는데 이미 하드웨어로 구현되어 있는 기능을 소프트웨어로 과금한다는 발상은 이래저래 긍정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ICE와 비교했을 때 소모품 유지비용이 월등히 적은 BEV의 특성을 감안했을 때 제조사의 입장에서는 차를 팔고 나서도 지속 가능한 먹거리를 발굴해야 한다는 점은 이해하겠는데 그 방법을 치사하게 있던 기능 못 쓰게 막는 것으로 구현하겠다는 발상은 아무래도 소비자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입니다.
이 이야기를 이 사진에 달아놓은 이유는 헤드램프 내측의 LED 라이팅 그릴이 구독 옵션이기 때문입니다.
자세히 보면 휠캡의 기아 엠블럼이 정중앙이 아니라 오른쪽으로 치우쳐진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990년대의 몇몇 차종에서나 볼 수 있었던 디자인인데 기아는 이를 두고 디자인 검토 단계에서 엠블럼을 휠캡 한가운데에 두었더니 어색하게 보여 비대칭으로 구성했고 추후에 출시되는 기아차에도 이런 디자인이 적용될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기아는 이번 모터쇼에서 EV9, EV6, 니로, 니로 플러스만을 전시하면서 모든 전시차를 BEV로만 구성했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는 작년의 주인공 중 하나였던 EV6 GT도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국산차로서는 최초로 슈퍼카에 준하는 발진가속 성능을 내세워 여러 모로 주목을 받은 EV6 GT의 중간 평가는 복합적입니다. 여러 모로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평가를 받고 있는 중인데 긍정파와 부정파의 공통적인 의견은 아이오닉 5 N의 데이터를 쌓기 위한 베타테스트 모델같다는 평가였습니다. 여러 모로 실험적이고 정제되지 않은 차라는 의미죠.
기아는 EV6 GT를 스팅어 GT의 후신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올해 초에 스팅어의 단종 기념 광고를 공개하면서 이를 확실하게 공표했죠. 경이를 넘어 경악스러운 수준의 배터리 컨디션 관리능력을 기반으로 외제 전기차들을 서킷에서 탈탈 털고 다니면서 '개막, 고성능 전기차의 시대'라는 캐치프레이즈대로 그저 직빨 원툴이 아닌 진정한 고성능 전기자동차의 시대를 연 것은 덤이고요.
그런데 스팅어가 가지고 있던 헤일로 카로서의 역할까지 이어받았는가를 생각하면 물음표가 그려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당장 EV6 GT가 출시되기 전부터 EV6 택시가 전국을 돌아다니고 있었다는 점에서 결론이 나왔죠.
EV6 GT의 옆에 위치한 스크린에서 스팅어 단종 기념 광고가 종종 상영되었는데 이왕이면 스팅어의 유산을 EV6 GT가 이어받는 구성, 더 나아가 내연기관 시대의 유산을 전기자동차가 이어받는 구성의 전시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제 차가 스팅어라서 이런 소리 하는 거 맞습니다.
덧붙여 앞서 소개한 EV9도 EV9 GT의 출시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내연기관 시절에는 K3, 씨드, 프로씨드, K5, 스팅어에만 GT 트림을 선보였던 것을 감안하면 차량의 성격상 패밀리카를 지향할 수밖에 없는 EV9의 GT 트림 출시는 여러 모로 의문스러운 결정인데 기아가 GT 트림을 어떤 컨셉으로 운영할 것인지는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을 듯 합니다. EV6 GT까지만 해도 기아 GT는 서킷 주행까지 커버할 수 있는 퍼포먼스 라인업으로 가닥을 잡나 싶었는데...
▶ 제네시스
부스의 테마, 전시차량의 구성 등을 모체인 현대차와 마찬가지로 작년과 거의 동일한 구성의 부스를 꾸렸습니다. 사실 제네시스는 작년 뿐만 아니라 매년 구성이 거기서 거기인지라 부스의 면적에 비해 부스 보는 재미는 없는 편입니다.
제네시스의 X 컨셉트 시리즈는 이미 몇 차례 국내외의 모터쇼에서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X 스피디움 쿠페는 작년의 모터쇼 포스트에서도 소개드린 적이 있죠. 큐레이터의 해설에 따르면 사진 상의 왼쪽, 그러니까 제네시스 X는 말 그대로 컨셉트로서의 방향성을 검토하는 모델이고 우측의 X 스피디움 쿠페는 기술적인 구성, 양산화 가능성 등을 검토하는 실질적인 프로토타입이라고 합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컨셉트 단계라고 했었던 것을 감안하면 X 스피디움 쿠페로 양산화의 틀을 잡은 모양이군요.
제네시스가 4세대 G90(RS4) 이후에 등장할 신차에는 더이상 내연기관을 탑재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을 감안하면 ICE 또는 HEV가 아니라는 것을 제외하면 공식적인 제원은 전혀 밝혀진 것이 없지만 큐레이터의 귀띔으로는 트리플 모터 탑재가 유력하고 플랫폼 또한 E-GMP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했습니다. 현대차그룹이 발표한 전기자동차 라인업 확장 계획에서 언급된 내용을 참고하면 승용차 전용으로 개발 중이라는 신규 플랫폼인 eM 플랫폼 기반이 될 것으로 보이는군요.
그리고 제네시스가 이번 모터쇼에서 메인으로 내놓은 모델은 X 컨셉트 시리즈의 세 번째 모델인 X 컨버터블입니다. 월드 프리미어는 아니고 아시아 프리미어로 공개되었죠.
기본적인 구성은 앞서 소개한 X 스피디움 쿠페를 기반으로 합니다. 마찬가지로 이 차도 트리플 모터가 탑재될 것이 유력하고요. 양산화 계획에 대해서는 X 스피디움 쿠페와 마찬가지로 다방면에서 양산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으며 만약 양산될 경우 통상적인 양산차가 아닌 생산 수량이 제한되는 한정판 성격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큐레이터의 설명이 있었습니다.
한국의 자동차 업계는 70년에 가까운 세월에 걸쳐 자동차를 만들어왔지만 컨버터블과는 별 인연이 없었습니다. 쌍용과 기아가 각각 팬더 칼리스타, 로터스 엘란을 생산라인 째로 들여와 한국에서 제작한 경력이 있지만 한국에서 자체적으로 설계하고 개발한 컨버터블은 모두 양산화의 벽을 넘지 못하고 컨셉트카로만 남았죠.
이는 컨버터블이라는 장르 자체가 가진 한계에서 따라온 문제이기도 한데 컨버터블은 기본적으로 실용성 면에서 멀쩡한 지붕이 달린 하드탑 모델 대비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즉, 태생은 차체 제작기술이 뒤떨어졌던 과거의 기술로 경량화를 시도하기 위한 흔적일 지라도 현재의 시점에서는 먹고 살기 위해 타는 차가 아닌 돈 많은 사람들이 취미용 세컨드 카로 구매하는 차라는 거죠. 마쯔다 MX-5같은 2시터 경량 로드스터로서 퓨어 스포츠를 즐기기 위한 수요도 조금은 있겠지만요.
한국에서 1가구 1차량 수준으로 자동차가 보급된 '마이카 시대'가 열린 것이 빨라봐야 1980~90년대 정도라는 것을 감안하면 2020년대의 한국이 지금까지도 컨버터블의 불모지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컨버터블은 차체 강성을 잡기 위한 설계 난이도가 높기 때문에 개발비는 많이 들면서도 판매량은 안 나와서 적자 보기 딱 좋은 모델이거든요.
그럼에도 제네시스가 돈 안 되는 컨버터블을 시도하는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브랜드의 이미지를 이끌어갈 헤일로 카가 필요했기 때문이죠. 프리미엄 브랜드로서의 정체성을 굳히기 위해서는 그 브랜드를 상징하는 이미지 리더가 있어야 하고 제네시스는 그 역할을 럭셔리 GT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성인 2+2시터 컨버터블에 맡긴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어차피 프리미엄 브랜드의 차를 구매할 정도의 재력이면 뚜껑 달린 차는 이미 가지고 있을 것이니까요.
물론 한국에서도 로망을 자극하는 자동차가 나오는 것은 좋은 방향입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현대차그룹이 N 브랜드로서는 모터스포츠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고 있지만 제네시스 브랜드로서는 모터스포츠에 전혀 도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동차 브랜드가 명성을 얻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모터스포츠에서의 성과를 통해 우수한 자동차임을 증명하고 승리의 이미지를 얻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저로서는 아쉬운 부분입니다. 영화 '포드 V 페라리'를 보신 분들이라면 이해하실 맥락이죠.
당장 한국에서 프리미엄 자동차의 기준이 된 '벤비아' 독일 3사가 얼마나 모터스포츠에 미쳐 있는지는 자동차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분들은 잘 아실테고 벤틀리와 같이 모터스포츠에 뿌리를 둔 럭셔리 브랜드도 있다는 것을 보면 세계 시장에서 프리미엄 브랜드로서의 브랜드 파워가 약한 제네시스로서는 한 번쯤 시도해 볼 과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네시스의 플래그십인 G90는 2023년형으로 연식변경을 거치면서 롱 휠베이스 모델인 G90 LWB에만 탑재되던 일렉트릭 터보차저 MHEV 파워트레인을 스탠다드 모델에도 적용할 수 있도록 옵션이 조정되었습니다. 이로서 국산차 최초이자 최후의 8기통 엔진인 타우 엔진의 포지션이 완전히 대체되었죠.
다만 현대차그룹을 통틀어 G90에 최초로 탑재될 것으로 알려졌던 레벨 3 HDP는 당초 예정보다 시스템의 완성이 늦어지면서 앞서 소개한 EV9 GT 라인이 스타트를 끊게 되었습니다. 아마 G90에는 다음 연식변경 때나 탑재될 듯 하군요.
그건 그렇고 제네시스 부스에는 대부분의 주요 라인업이 전시되었는데 G70는 단 한 대도 전시되지 않았군요. 여러 모로 제네시스 라인업을 통틀어 G70가 유독 홀대받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플랫폼과 파워트레인을 공유하는 형제 모델인 스팅어는 기아가 스팅어 오너 대상 이벤트를 꾸준히 개최하고 국산차 최초로 단종 기념 헌정 광고까지 만들 정도로 제조사 차원에서 강한 애착을 보였던 모델임을 감안하면 G70의 팬에게는 입맛이 씁쓸해지는 대목입니다. 아, 살아남은 것만 해도 어디냐고 말씀하신다면 뭐...
▶ BMW/미니
작년의 부산국제모터쇼에서 '국제'를 홀로 탱킹했던 BMW 그룹은 작년보다는 약간 힘을 뺀 모습으로 모터쇼 부스를 꾸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하게 한국 모터쇼에 신경써주는 것을 보면 한국인 차덕후 입장에서는 여러 모로 고마운 회사입니다. 개인적으로 BMW에 호감을 가지는 이유 중 하나죠.
왜건의 불모지인 한국 시장에 세계에서 가장 빠른 왜건이 출시됩니다. 바로 M3 컴페티션의 왜건 사양인 M3 투어링 컴페티션이죠.
M3 라인업 중에서는 최초의 투어링 버전인데 3세대 M3(E46) 시절에 M3 투어링의 프로토타입이 만들어진 적이 있으나 20년이 넘게 지난 7세대에 와서야 M3 투어링의 출시가 결정되었죠. 덧붙여 M3 투어링은 5세대 3시리즈부터 시작된 코드네임 작명법에 따라 G80이 아닌 G81이라는 별도의 코드네임을 받습니다.
M3 투어링은 벤츠 E63 AMG S 에스테이트가 가지고 있던 뉘르부르크링 랩타임 최고기록을 갈아엎으면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왜건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었습니다. 다만 고성능 왜건 분야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운 아우디가 내연기관 시대의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한 명목으로 RS6 아반트의 최종 버전을 내놓을 것을 예고했고 BMW도 8세대 5시리즈 기반의 M5 투어링을 출시할 것을 예고하면서 M3 투어링이 이 타이틀을 오래 지킬 수 있을 지는 의문이 듭니다.
한국에서 왜건은 짐차같다는 이유로 해치백보다도 홀대받는 지독하게 인기가 없는 장르로 손꼽힙니다. 정작 왜건에서 파생된 SUV는 승용차 시장을 쥐락펴락 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죠.
하지만 왜건은 유럽에서는 특유의 실용성을 기반으로 꾸준하게 인기를 이어가는 장르로 고성능 자동차 분야에서도 의외로 선호하는 사람이 많은 포맷입니다. 동일 플랫폼의 세단보다 후축에 더 많은 무게가 실리면서 전후 무게 배분이 50:50에 가깝게 바뀌기 때문에 중량이 늘어나도 무게 밸런스는 더 좋아지기 때문이죠.
개인적으로는 이런 고성능 왜건이 일상과 일탈을 모두 잡을 수 있는 궁극체가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넘친다면 한 대 가지고 싶지만 현실은 M3 투어링의 마이너 버전인 M340i 투어링도 접근하기 어렵죠.
작년 모터쇼에서 정식 출시 이전 히든 부스를 통해 극비 공개되었던 XM이 이번에는 정식 부스로 공개되었습니다. M 디비전의 첫 모델인 M1 이후 두번째로 등장하는 M 디비전 전용 모델이죠.
개인적으로도, 그리고 많은 차덕후들의 시각으로도 물음표를 남긴 모델이기도 한데 왜 극한의 스포츠성을 추구하는 M 디비전의 전용 모델로 태생적으로 온로드 스포츠 드라이빙과는 거리가 있는 SUV를, 그것도 대형 SUV로 등장했는지입니다. BMW가 7시리즈는 M 디비전 모델을 내놓지 않는다고 공언했던지라 X7급 대형 SUV는 M과는 인연이 전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M 디비전 최초의 M 전용 SUV인 것도 모자라 M 디비전 최초의 HEV 파워트레인을 얹은 것으로도 화제를 모았습니다. HEV 파워트레인을 선택하게 된 배경이 탄소배출량 제한 때문인지, 아니면 포르쉐 918이나 페라리 라페라리같은 슈퍼카들처럼 내연기관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결정일지는 BMW만이 진실을 알고 있을 듯 합니다.
모터쇼에 등장한 기본 트림을 시작으로 고성능 트림인 라벨 레드, 보급형 트림인 50e가 뒤이어 출시되면서 각각 시스템 출력 653마력, 748마력, 475마력을 기록하고 있는데 2.8톤에 육박하는 공차중량을 감안하더라도 무시무시한 성능임은 분명합니다. 이래저래 M 디비전의 이레귤러로 기록될 모델이 될 듯 하군요.
전체적인 디자인은 7세대 7시리즈(G70)와 X7 후기형에서 선보인 바 있는 무식하게 커진 키드니 그릴과 상하분리형 헤드램프를 그대로 적용하면서 위압감을 주는 디자인으로 만들어졌습니다. 4시리즈의 뉴트리아 그릴도 그렇지만 저 멧돼지코 그릴도 볼 때마다 과유불급이라는 사자성어를 생각하게 합니다. 물론 M 시리즈라면 흡기면적 증대를 통한 보다 효과적인 냉각을 위한 선택이라는 변명이 가능하긴 합니다.
토요타 수프라의 5세대에 해당하는 GR 수프라와 공동 개발되어 플랫폼을 공유하는 3세대 Z4는 페이스리프트를 거쳤지만 외관의 변화는 유심히 살펴보기 전에는 변화를 찾기 힘들 정도로 극히 일부만 바뀌었습니다. 굳이 적는다면 라디에이터 그릴 패턴, 휠 디자인, 신규 외장 컬러 정도군요.
토요타와의 공동 개발이긴 하지만 BMW의 색채를 여러 모로 더 강하게 띄고 있기 때문인지 기존의 팬들로부터 극심한 호불호 논쟁에 시달리는 GR 수프라와는 달리 3세대 Z4는 이전 세대의 성격을 그대로 이은 덕에 그럭저럭 고유의 포지션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BMW에 왜색 묻었다고 싫어하는 순혈주의자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요.
BMW 부스에서 유일하게 프리미어라 불릴 수 있는 모델은 X5의 FCEV 사양인 iX5 하이드로젠입니다. 2021년 IAA 모빌리티(舊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최초로 공개된 이후 2년만에 아시아에서는 처음 공개되는 아시아 프리미어죠. 통상적인 시판차량이 아닌 100대만 생산되어 연구 데이터를 쌓기 위한 파일럿 모델로 운영되는 차량이라 이번 모터쇼의 BMW 부스에서 유일하게 탑승할 수 없도록 문을 잠가둔 모델이기도 합니다. 정식 양산모델은 2025년 정도에 나올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큐레이터는 BMW가 자체적으로 개발한 수소연료전지 스택을 탑재했다고 소개했지만 BMW는 2021년에 승용차용 수소연료전지 스택의 개발 중단을 선언했기 때문에 실제로는 BMW와 협력 관계인 토요타의 시스템을 사용합니다. 현 시점에서 제대로 된 FCEV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가 현대와 토요타 단 둘밖에 없는 상황이니 BMW 입장에서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고 앞서 소개한 Z4의 공동 개발을 통해 인연을 트게 된 토요타를 파트너로 선정하게 된 것이죠.
BMW는 이륜차, 즉 오토바이로 자동차 사업을 시작한 회사입니다. 이와 같은 사례로는 혼다, 기아 정도를 꼽을 수 있는데 기아의 이륜차 사업부인 기아기연은 1981년의 자동차공업 합리화조치에 의해 이륜차 사업부를 대림그룹에 매각하면서 대림자동차(現 DNA모터스)로 바뀌었지만 BMW와 혼다는 지금까지도 명맥을 이어가고 있죠. BMW의 이륜차 사업부인 BMW 모토라드는 2023년에 브랜드 설립 100주년을 맞아 이를 기념하기 위해 R 18과 R nineT의 100주년 기념 모델을 내놓았습니다.
...각각의 설명은 오토바이 좋아하시는 분들께서 더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하기에 생략합니다.
미니는 그동안 미니 오리지널에서 파생된 컨셉트카를 내놓았지만 이번에는 아예 처음부터 컨셉트를 검토하는 문자 그대로 컨셉트카로서의 모델을 등장시켰습니다. 비전 어바너트라는 이름의 모델인데 미니의 소개 문구로는 공간에 대한 혁신적인 비전을 담은 모빌리티로 해석한 모델이라고 하죠. 즉, 여러 브랜드에서 한 번쯤 선보인 적이 있는 자율주행 자동차 시대에 대한 고민을 담은 모델입니다.
이러한 모델이 늘 그렇듯 기술적인 제원은 전혀 없습니다. 그나저나 미니 브랜드로 이런 해석을 내놓으니 어째 옆 동네 폭스바겐의 T1 트랜스포터가 생각나는군요.
사실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있게 본 부분은 슬라이딩 도어가 열릴 때 쿼터 글라스도 함께 바깥으로 접히면서 열린다는 것입니다. 이런 복잡한 기믹을 넣으면서 얻는 기술적인 이득이 있는지, 혹은 그저 컨셉트에 충실하기 위한 요소인지는 알 길이 없군요.
이번 모터쇼에 등장한 미니들은 비전 어바너트를 제외하면 특별한 모델은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진에서 소개하는 미니 일렉트릭 레솔루트 에디션은 웅이 아버지 수염을 비롯한 내외장의 일부 포인트를 레솔루트 브론즈라는 색상으로 처리하고 몇몇 전용 디자인 요소를 더한 드레스업 트림입니다. 당연히 퍼포먼스 면에서의 특성은 기존의 미니 일렉트릭과 동일합니다.
미니 컨버터블 출시 30주년 기념 모델인 미니 컨버터블 씨사이드 에디션은 미니 컨버터블의 단독 에디션으로는 마지막 모델이 될 것으로 보도했습니다. 쿠퍼 S 컨버터블을 베이스로 삼고 있으며 앞서 소개한 레솔루트 에디션과 마찬가지로 드레스업 트림 구성이며 바다와 백사장을 컨셉트로 잡았다고 하는데...
전시차는 기존의 화이트들이 모두 단종되면서 신규 컬러로 등장한 나누크 화이트라고 하는데 이왕이면 n주년 기념 에디션답게 한정판 전용 외장 컬러를 사용하는 편이 좋지 않았을까 합니다. 단가 문제로 꼭 양산 색상을 사용해야만 했다면 미니의 시그니처 컬러 중 하나인 캐리비안 아쿠아로 했다면 해변가를 모티브로 했다는 한정판의 취지에 좀 더 어울렸을 듯 하군요.
▶ 메르세데스 벤츠
1년 쉬고 나왔다고 나름대로 힘을 주고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벤츠 박물관을 차렸던 2018년의 임팩트가 워낙 강력해서인지 조금 더 상징적인 모델이 나와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부스이기도 했습니다. 전동화 시대로 넘어오면서 연거푸 삽을 푸고 있는 최근의 벤츠의 행보가 썩 마음에 들지 않는 것도 있고 말이죠.
1954년에 1세대 모델이 등장한 이후 E 클래스, S 클래스와 함께 메르세데스 벤츠 역사의 산증인 중 하나로 자리잡은 SL은 7세대 R232부터는 메르세데스 벤츠가 아닌 메르세데스 AMG의 독점 모델이 되면서 이름 또한 AMG SL로 바뀌었습니다. SL의 계보를 따르지만 실질적으로는 AMG GT의 로드스터 사양인 AMG GT C의 후속모델 포지션에 해당하죠.
7세대 SL의 경우 올해 중으로 공개될 예정인 2세대 AMG GT와 플랫폼을 공유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AMG GT와 SL은 여러 모로 성격이 다르긴 하지만 사실상 2세대 AMG GT의 미리보기 포지션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죠. 이와는 별개로 AMG SL은 역대 SL 중 가장 오랜 기간 기간동안 생산되었던 3세대 R107의 재해석을 목표로 했다고 하는데 현 세대 그랜드 투어러로서는 시대에 뒤떨어지는 아이템인 소프트탑의 채택도 재해석의 일환이라고 하죠.
본명보다는 'G바겐'이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한 G 클래스는 메르세데스 벤츠 코리아 설립 20주년 기념 한정판인 AMG G63 K-에디션20이라는 모델로 등장했습니다. 히아신스 레드 마그노, 브릴리언트 블루 마그노라는 두 가지 컬러로 등장했는데 아무리 봐도 태극의 색상 배치를 노린 듯 하죠.
내외장을 전용 사양으로 꾸민 드레스업 트림인데 사실 개인적으로는 이런 것보다도 내년에 출시될 예정인 G클래스의 BEV 사양인 EQG가 더 궁금합니다. 2021년 서울모빌리티쇼에 컨셉트카가 나왔으니 이번에는 프로토타입 정도는 나올 줄 알았는데 말이죠.
메르세데스 벤츠에서 파생된 전기자동차 브랜드인 메르세데스 EQ의 행보는 내연기관 자동차의 살아있는 역사인 벤츠의 명성에 혼신의 힘을 다해 먹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럭저럭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한 BMW i 시리즈나 아우디 e-트론 시리즈와는 달리 벤츠의 EQ 시리즈는 심각한 판매 부진에 시달리고 있는데 오죽하면 EQ 브랜드가 폐기될 예정이라는 외신들의 추측성 보도까지 나오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는 EQ의 성능과 완성도가 벤츠의 이름을 걸기에는 기대 이하 수준으로 낮았다는 것, 그리고 EQ 시리즈를 위해 내놓은 전용 패밀리 룩이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지 못한 것이 원인으로 꼽히고 있는데 이러한 EQ의 실태를 여실히 보여주는 EQ 시리즈의 신작이 등장했습니다. 바로 EQE SUV인데... 어째 대충 만들었음이 팍팍 느껴지는 이름입니다.
EQ 시리즈의 최상위 모델이자 S 클래스의 BEV 포지션에 해당하지만 대형 세단임에도 캡포워드+패스트백 라인을 적용하면서 플래그십 세단으로서의 위엄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외모 탓에 이래저래 시장에서 외면받고 있는 EQS입니다. 이전까지 등장했던 EQ 시리즈와는 달리 BEV 전용 플랫폼인 EVA 플랫폼을 적용했고 뒤이어 등장한 EQE도 같은 플랫폼을 적용했죠.
사실 이 녀석은 차 자체의 완성도보다 흉악한 구독 제도로 더 유명한데 후륜 조향 시스템의 타각 각도가 구독 서비스 사용 시에는 10도, 구독을 하지 않을 경우 경우 4.5도로 제한을 두면서 돈 들여서 옵션을 넣고도 꾸준히 과금을 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성능을 낼 수 없다는 뒷목 잡는 상황을 만들어 욕을 푸짐하게 억어먹고 있습니다. BMW의 통풍시트 구독제와 마찬가지로 선을 넘었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행태죠.
이탈리아의 패션 브랜드인 몽클레르와의 콜라보레이션 기획인 프로젝트 몬도 G 몽클레르는 이름 그대로 G 클래스를 베이스로 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몽클레르라는 브랜드를 여기에서 처음 봤는데 패딩으로 유명한 브랜드인지 패디드 셸로 캐빈과 타이어를 뒤덮고 있군요. 잘 보면 캐빈에는 지퍼도 구현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구동은 불가능한 조형물이지만 이게 움직인다면 그거 나름대로 꽤 진귀한 구경거리가 되었을 듯 하군요.
모터쇼 입장권 외에 벤츠 부스 직원을 통한 별도의 신원 인증을 거쳐야만 출입이 허용되는 이너 부스에는 미국의 패션 디자이너인 버질 아블로와의 콜라보레이션이자 그의 유작으로 알려진 마이바흐 명의의 BEV 컨셉트 모델인 프로젝트 마이바흐, 마찬가지로 버질 아블로와의 콜라보레이션인 마이바흐 S클래스 버질 아블로 에디션도 전시되었습니다. 다만 저는 모터쇼에서 인원 통제랍시고 출입 절차 따지면서 들어가는 부스는 질색하는 사람인지라 부스 안에 들어가지는 않았습니다.
▶ 포르쉐
이번 모터쇼에서 유일하게 참가한 폭스바겐 그룹의 브랜드이자 최근 몇 년 사이에 한국에서 위세가 크게 떨어진 아우디를 대신하여 사실상 폭스바겐 그룹의 대표로 참석한 포르쉐는 이전의 모터쇼와 마찬가지로 독보적으로 화려한 부스 레이아웃을 선보였습니다.
스포츠카 제작 75주년을 메인 테마로 걸었는데 포르쉐의 설립은 1931년, 스포츠카를 처음 만들기 시작한 해는 1948년입니다. 스포츠카를 만들기 전에는 뭘 만들었냐 하면... 탱크, 그러니까 전차를 만들었습니다. 아니 진짜로요.
포르쉐의 메인 턴테이블을 장식한 모델은 포르쉐의 두 번째 전기자동차 프로젝트인 미션 R입니다. 첫 번째 프로젝트인 미션 E는 타이칸이라는 이름으로 양산되었죠.
전기자동차로도 스포츠 드라이빙이 가능하다는 것을 사실상 처음으로 입증한 타이칸을 만든 포르쉐답게 미션 R은 718 카이맨을 베이스로 FIA GT3 규격에 대응하는 전기 레이싱카를 타겟으로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양산 모델이 출시되기 전에 모터스포츠에 출전하면서 실전 테스트를 거치겠다는 계획이라고 하죠.
사실 이 턴테이블의 진짜 주인은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포르쉐가 처음으로 스포츠카를 만들기 시작한 1948년으로부터 75주년이 되었음을 기념하여 만든 컨셉트카인 비전 357이 진짜 주인공이었습니다. 포르쉐 최초의 스포츠카인 356을 오마주한 구성으로 포르쉐가 공을 들이는 합성연료이자 향후 내연기관의 명줄을 좌우할 e-퓨얼의 사용을 고려한 모델로도 알려졌죠.
하지만 비전 357은 서울모빌리티쇼에 뒤이어 개최된 상하이모터쇼 참가를 이유로 서울모빌리티쇼 개최 5일만에 한국을 떠나면서 제가 도착한 4월 5일에는 이미 과거의 차가 되었습니다. 비전 357의 아시아 프리미어 무대가 한국이라는 데에 위안을... 삼을 리가 없잖습니까. 제가 못 봤는데. 아무튼 비전 357이 사용하던 턴테이블은 플로어에 전시되어 있었던 미션 R이 이어받았습니다.
아마 독일어를 읽을 수 있는 분들이라면 이 차에 입혀진 리버리(레이싱카용 도색)를 보고 뿜으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빨간 점선과 함께 적힌 독일어는 앞다리살, 목살, 갈비, 안심, 족발 등 돼지고기의 부위를 뜻하는 단어들입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장난인가 싶은데...
포르쉐가 르망 24시 내구레이스 출전을 위해 만든 레이스카인 917의 파생형 중 917/20이라는 모델은 기존의 917보다 불어난 몸집 때문에 돼지같다고 놀리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포르쉐의 엔지니어들은 돼지임을 인정하고 아예 정육점 에디션을 만들었습니다. 이 때문에 '핑크피그'라는 별명이 붙었죠. 독일인들이 유머 감각이 없다고 하는 건 역시 고정관념이군요.
아무튼 이 핑크피그는 1971년의 르망 24시 내구레이스에서 예선 1위를 달성했지만 정작 본선에서는 브레이크 고장으로 인해 완주하지 못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2018년, 포르쉐는 2대의 911 RSR을 르망 24시 LMGTE 클래스에 출전시키면서 한 대에는 1998년 대회에서 우승한 911 GT1의 리버리를, 그리고 나머지 한 대에는 917/20의 돼지고기 리버리를 입혔습니다. 2대 핑크피그인 911 RSR 핑크피그는 이렇게 탄생했죠.
아무튼 이 분홍돼지를 포디움(시상대)에 올리겠다는 집념의 포르쉐는 2018년 대회에서 기어이 LMGTE 클래스 우승을 따내면서 선대 돼지의 한을 풀었고 수십 년 전에 잊혀진 핑크피그의 사연 또한 널리 알려지게 되면서 레이싱계의 전설이자 기담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이 2018년이 포르쉐의 스포츠카 제작 70주년임을 감안하면 이래저래 포르쉐와 레이싱은 뗄레야 뗄 수가 없군요.
앞서 소개한 911 RSR 핑크피그는 양산형 스포츠카를 베이스로 하는 LMGTE 클래스에 출전하는 차량입니다. 하지만 현 시점의 르망 24시는 하이퍼카 클래스로 분류되는 LMH와 LMDh 클래스를 최상위 클래스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LMH는 아예 레이스 출전에만 목표를 둔 프로토타입 모델, 또는 이걸 기어이 양산시킨 하이퍼카들이 출전하는 무대이며 LMDh의 경우 LMP2 규격의 섀시를 기반으로 HEV 시스템을 얹은 하이브리드 하이퍼카가 출전하는 규격입니다.
포르쉐가 당연히 LMGTE 클래스만 출전할 리는 없고 최상위 클래스에도 꾸준히 출사표를 던졌습니다. LMP1이 최상위 클래스였던 시절에는 919 하이브리드를 출전시켜 2015~17년 시즌 3년 연속 챔피언이라는 기록을 썼고 LMP1 클래스가 LMH/LMDh 클래스로 개편되자 포르쉐는 919 하이브리드의 후속작을 준비합니다. 바로 963이죠.
963은 2023년 시즌부터 르망 24시가 포함되는 역사와 전통의 내구레이스인 FIA 월드 인듀어런스 챔피언십(WEC)에서 LMDh 클래스로, 그리고 미국을 대표하는 내구레이스인 IMSA 웨더테크 스포츠카 챔피언십에서 GTP 클래스로 출전하고 있습니다.
실전에서의 성적은 IMSA에서는 3라운드에서 우승을 따내는 등 꽤나 괜찮은 성적을 올리고 있지만 WEC에서는 상당히 실망스러운 편입니다. WEC 2라운드인 포르티망 6시에서 3위를 기록한 것 외에는 포디움 근처에도 오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물며 4라운드인 르망 24시에서는 하이퍼카 클래스의 르망 24시 첫 리타이어라는 불명예를 썼죠.
WEC만 놓고 보자면 여러 모로 선대인 919 하이브리드의 명성을 따라오지 못하고 있는데 포르쉐가 과연 치욕을 이겨내고 부활할 수 있을지, 아니면 토요타가 왕좌를 차지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을지는 조금 더 두고 봐야겠군요.
2019년 서울모터쇼에서 8세대 911을 소개하면서 독일 슈투트가르트 본사에 위치한 포르쉐 박물관에서 1세대 911을 꺼내와 전시한 적이 있습니다. 이 때의 호응이 좋았던 덕인지 포르쉐는 이번에도 박물관의 유물을 모셔왔습니다. 이번에는 911 카레라 RS의 3세대 모델을 가져왔군요.
개인적으로 포르쉐 부스의 진짜 주인공은 이 녀석이었다고 봅니다. 포르쉐의 스포츠카 제작 75주년의 첫 단추인 356이 전시되었는데 아무리 봐도 비전 357과 페어를 맞추기 위해 박물관에서 꺼내온 것이 아닐까 싶군요. 폭스바겐 비틀을 기반으로 한 모델이기에 여러 모로 비틀의 이미지가 묻어있는 것이 외형 상의 특징으로 이 356의 후속 모델에 해당하는 차가 바로 포르쉐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911입니다.
포르쉐 최초의 스포츠카라는 기념비적인 타이틀을 달고 있는 모델이지만 정작 포르쉐 부스 내에는 356의 역사를 안내하는 홍보물이 없었던지라 이런 배경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클래식 스포츠카로만 비쳐지게 되는 것이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포르쉐'라 하면 자동차 제조사인 포르쉐 AG를 가장 먼저 떠올리지만 패션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라면 시계, 선글라스 등의 액세서리를 주력으로 삼는 '포르쉐 디자인'이라는 이름의 회사도 아실 겁니다. 기본적으로는 패션 관련 사업이 중심이지만 회사 이름답게 건축물, 공산품 등의 디자인 용역도 맡는 곳이죠.
그래서 이 회사가 포르쉐 AG와는 어떤 관계인가 하면... 포르쉐 AG의 창업주인 페르디난트 포르쉐의 손자인 페르디난트 알렉산더 포르쉐가 설립한 회사가 바로 포르쉐 디자인입니다. 어째서인지 할아버지와 손자의 이름이 같아보이는 것은 기분 탓일까요. 한국인들에게 친숙한 표현으로 풀자면 포르쉐 디자인은 범포르쉐가 기업이죠.
그런 포르쉐 디자인이 2022년에 설립 50주년을 맞게 되면서 포르쉐 AG는 이를 기념하기 위한 한정판 모델을 제작합니다. 바로 911 에디션 50주년 포르쉐 디자인이죠. 뭔가 이름이 왈도체같지만 원래 이렇습니다.
911 에디션 50주년 포르쉐 디자인은 8세대 911의 배리에이션 중 하나인 911 타르가 4 GTS를 베이스로 두고 포르쉐 디자인의 첫 시계인 '크로노그래프 I'의 디자인 요소를 반영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당장 차량의 외장 컬러가 매트 블랙인 것도 여기에서 따온 것이라고 하죠. 실내외에 50주년 기념 엠블럼이 곳곳에 붙어있고 센터페시아의 아날로그 시계도 포르쉐 디자인에서 제공받은 시계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블랙핑크의 팬과 포르쉐의 팬 양쪽으로부터 어그로를 끌면서 서로 관계가 없을 것 같던 팬덤의 싸움을 불러온 차가 있습니다. 바로 지금 소개할 타이칸 4S 크로스 투리스모 포 제니 루비 제인입니다. 포르쉐의 비스포크 서비스 중 최상위 프로그램인 존더분쉬(Sonderwunsch; 특별요청사항)를 통해 제작된 모델로 한국에서는 블랙핑크의 제니가 이 프로그램의 첫 고객이 되면서 블랙핑크의 팬에게도, 포르쉐의 팬에게도 주목받는 차가 되었습니다.
언론에서는 '제니가 직접 디자인한 포르쉐'로 홍보되었는데 실상은 타이칸 크로스 투리스모에서 인테리어 전체와 엠블럼, 휠 등 외장 일부의 색상 조합이 바뀌고 제니가 그린 구름 그림이 B 필러, 헤드레스트 등에 추가되는 정도에 그쳐 포르쉐가 제니를 자사 프로그램 홍보에 써먹었다는 비판을 시작으로 애꿎은 제니에게까지 불똥이 튀는 등 여러 모로 좋은 이야기를 듣지 못했던 모델이죠.
그런데 이 말 많고 탈 많은 모델이 모터쇼에 등장한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모터쇼 기간 중 이 차가 경매에 출품되었기 때문이죠. 경매 수익금 중 일부를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으로 기부한다고 하는데 제니가 타던 차를 출품하는 것은 아니고 제니의 존더분쉬 모델과 동일한 사양을 자선경매용으로 한 대 더 제작하는 것으로 제니와 협의했다고 밝혔습니다.
▶ 그 외
어디서 많이 보던 것들부터 "이게 여기 왜?"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모델까지 소규모 부스에서도 의외의 볼거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우선 이 차의 제조사를 소개하자면 영국의 화학회사인 이네오스의 자회사인 이네오스 오토모티브입니다. 이네오스의 회장인 제임스 래트클리프는 랜드로버 디펜더의 광팬이었는데 디펜더가 배출가스 규제를 이유로 2016년에 단종되자 랜드로버에게 안전장치와 편의장비를 최신 수준으로 업그레이드한 디펜더의 재출시를 수 차례 요청했습니다. 당연히 거절되었죠.
래트클리프 회장은 랜드로버가 디펜더를 다시 만들어줄 수 없다면 본인이 디펜더를 코치 빌드로라도 직접 만들기 위해 랜드로버로부터 디펜더의 지적재산권을 사오려고 했지만 이마저도 번번히 퇴짜를 맞자 결국 뚜껑이 열린 래트클리프는 아예 직접 자동차 회사를 차려 디펜더의 정신적 후속작을 만들기로 결정합니다. 바로 지금 소개할 그레나디어죠.
덧붙여 그레나디어라는 이름은 근대 유럽에 존재했던 병과인 '척탄병'을 의미하지만 진짜 어원은 래트클리프의 단골 술집 이름입니다. 여러 모로 이 차가 만들어진 경위에 어울리는 이름입니다.
디펜더의 정신적 후속작을 표방하는 차답게 전체적인 전체적인 외형은 1세대 디펜더를 기반으로 한 박스형 어퍼바디의 레트로 룩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 차의 공개보다 1년 앞선 2020년에 공개된 2세대 디펜더가 1세대의 디자인에 도심형 SUV스러운 이미지를 버무려 특유의 투박함이 희석된 것과 비교하면 '디펜더'로서의 감성은 아이러니하게도 2세대 디펜더보다 그레나디어 쪽이 더 제대로 물려받았다고 생각되는군요. 마치 1세대 디펜더의 리마스터라고나 할까요.
자동차라고는 손대본 적도 없는 이네오스가 회장의 덕질을 위해 뜬금없이 준비한 사업 치고는 꽤나 철저하게 준비했습니다. 벤츠 그룹 산하의 경차 제조사인 스마트가 볼보 승용차 부문의 모기업으로도 유명한 지리 홀딩스와의 합작을 선언하며 생산라인을 모두 중국으로 옮기자 프랑스에 남은 스마트 공장을 이네오스가 인수하면서 생산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토요타로부터 하이럭스의 프레임 설계를 구입하여 마그나 슈타이어가 이를 기반으로 재설계한 프레임을 사용하고 파워트레인으로는 BMW의 B계열 6기통 엔진과 ZF의 8단 자동변속기를 탑재했습니다.
자동차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이 프로젝트를 위해 참여한 기업들의 이름을 보고 짐작하시겠지만 맨땅에 헤딩이 아닌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부터 손을 빌린 형태라 첫 작품 치고는 의외로 높은 완성도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되는 모델입니다. 다만 영국차답게 조립품질은 딱히 기대하지 않는 게 정신건강에 이로울 듯 합니다. 공장이 프랑스에 있으니 품질만큼은 프랑스 수준이려나요.
덧붙여 그레나디어는 FCEV 모델의 출시도 예고되어 있는데 수소연료전지 스택은 토요타가 아닌 현대로부터 공급받을 예정입니다. 이 차가 아시아 프리미어 무대로 일본이나 중국이 아닌 한국을 선택한 데에는 이를 위한 눈도장 찍기의 일환일지도 모르겠군요.
아우디와 토요타에서 근무했던 한국계 미국인 엔지니어인 에드워드 리가 설립한 미국의 전기자동차 제조사인 알파모터스가 서울모빌리티쇼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신차를 공개할 것을 선포했습니다.
소규모 전기차 스타트업 기업들이 으레 그렇듯 컨셉트카는 줄줄이 공개되고 있지만 정작 양산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알파모터스의 경우에도 몇몇 모델을 공개하였지만 모두 2023년 말 양산이 예정되어 있을 뿐 아직 알파모터스의 이름을 걸고 출시된 차는 없는 상태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알파모터스의 라인업이 추가되었습니다. 지금 소개할 전기 픽업트럭인 울프죠.
2021년에 3D 렌더링이 공개된 이후 2023년 서울모빌리티쇼에서 실물로 처음 공개되었습니다. 다만 배터리 셀의 공급원, 파워트레인의 출력 등 상세 제원은 공개되지 않았으며 부스에서 제공하는 팸플릿은 단 한 글자의 한국어도 없는 순수 영어로만 구성되었습니다. 짧은 영어로도 읽는 데에는 문제가 없을 수준으로 간단한 구성이었지만 여러 모로 아쉬운 부분이죠.
모터쇼에서는 기본형 모델인 울프와 장축 모델인 울프 플러스가 공개되었으며 모터쇼에는 등장하지 않은 크루캡 모델인 슈퍼울프도 라인업에 들어간 상태입니다.
울프 플러스의 캐빈은 1열 뒤에 간이침대 정도의 여유공간을 두는 슬리퍼캡과 2열 좌석을 설치하는 크루캡의 중간 정도의 성격으로 구성되었는데 B필러가 생략된 수어사이드 도어, 무자비한 2열 시트백 등 여러 모로 이걸 사람이 타라고 만들었나 싶은 구성이지만 의외로 미국의 픽업트럭에서 클럽캡, 슈퍼캡 등의 이름으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구성이기도 합니다. 미국인들의 체구를 생각하면 더더욱 물음표가 그려지는군요.
이번에는 한국의 전기자동차 스타트업을 소개할 시간입니다. 현대차 출신 디자이너들이 설립한 디자인 설계 용역사인 마름디자인이 '아이레온'이라는 브랜드를 걸고 전기자동차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이들이 선택한 시장은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자동차인 1톤 트럭입니다. 의외로 레드오션 시장을 대놓고 선택했는데 포터와 봉고를 기반으로 한 1세대 전기 트럭들이 실전에서 구르면서 운전자들이 내놓는 여러 피드백들을 보고 시장성이 있다고 판단한 모양입니다.
먼저 소개할 모델은 적재량 1톤에 대응하는 아이레온 IR5입니다. 캐빈은 1.3박스 세미보닛으로 구성되었는데 소형 트럭의 안전성 관련 규제가 강화될 것으로 예고된 시점이니 여기에는 충분히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내년에 출시될 예정인 만큼 현재의 단계에서는 양산화되었을 때 수정될 부분이 많다는 설명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적재함인데 현재의 모델에는 화물 탑재를 고려하지 않은 더미 적재함을 설치해둔 상태라고 합니다.
배터리는 55kWh 리튬이온 사양과 30kWh 리튬인산철 사양으로 구분되는데 리튬이온 사양은 한국과 일본 시장에, 리튬인산철 사양은 중국에 출시하는 사양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중국은 폭발 위험성을 이유로 리튬이온 배터리가 자동차에 탑재되는 것을 점차 규제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1톤 트럭이면서도 구동륜인 후륜을 복륜으로 구성하지 않았다는 것인데 무게 균형이 균일하지 않은 화물을 주로 취급하는 카고 트럭임을 감안하면 후축의 접지면적이 좁은 단륜 구조는 화물 적재 상태에서의 주행 안정성에서 손해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1톤 트럭 시장에 도전한다고 출사표를 낸 사람들이면 이런 내용을 모르지는 않았을텐데 말이죠.
전륜과 후륜에 동일한 규격의 타이어가 적용되면서 적재함의 높이가 높은 고상 적재함으로 구성된 것도 아쉬운 부분인데 이는 이 차의 설계상 어쩔 수 없는 부분으로 추정됩니다. 캐빈 아래에 모터를 두고 프로펠러 샤프트를 통해 후륜을 구동하는 포터 EV/봉고 EV와는 달리 모터를 적재함 아래에 설치한 구조일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죠.
아이레온 IR5와 함께 0.5톤 사양인 아이레온 IR3도 공개되었습니다. 이 쪽은 통상적인 3면 개방 적재함이 아닌 픽업트럭 스타일의 적재함을 적용하면서 상용차 시장보다는 레저 스포츠를 위한 유틸리티카를 좀 더 지향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0.5톤 트럭이 상용차로서 경쟁력을 가지려면 경차로 분류되어 현재 단종된 한국지엠 라보의 포지션을 노리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나 IR3의 덩치는 경차 기준을 초과하기 때문에 상용차 시장에서의 성공은 조금 의문스러운 모델이죠.
덧붙여 마름디자인은 가격 졍쟁력 확보를 위해 한국 공장이 아닌 중국의 신허자동차를 통해 OEM으로 제작하여 공급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문제는 상용차의 생명인 신뢰성과 정비성이 입증되지 않으면 아무리 구입가가 싸게 나와도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기 어렵기 때문에 정식 출시 전에 사후정비망을 얼마나 잘 갖추느냐가 아이레온의 성패를 결정짓는 요소가 될 듯 하군요.
전동 고라니를 주력상품으로 판매하는 스위스의 스타트업 기업인 마이크로는 마이크로리노라는 이름의 초소형 전기자동차를 선보였습니다. 아니 근데 이거... 누가 봐도 BMW의 마이크로카인 이세타입니다. 실제로 마이크로 측에서도 이세타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건 영감을 받은 정도가 아니라 그냥 이세타 BEV 버전이라고밖에 할 말이 없군요. 이게 왜 BMW가 아니라 스위스 회사에서 튀어나왔는지도 의문이고요.
마이크로리노는 현재 스위스, 독일 등 일부 국가에서 판매되고 있으며 한국에는 빠르면 2025년 경에 출시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전동 킥보드가 이런 초소형 전기차로 대체되면 도로가 좀 더 쾌적해지려나요.
전기자동차 업계의 선두주자인 테슬라는 모델 S와 모델 X의 플래드 트림을 신차로 소개했습니다. 해외에서는 이미 팔리고 있는 모델이니 굳이 따지면 코리아 프리미어군요.
테슬라는 모델 S 플래드에 트랙 패키지를 장착한 사양이 뉘르부르크링의 노르트슐라이페에서 전기자동차 부문 랩타임 최고기록을 찍었다고 홍보하고 있는데 고성능 전기자동차의 가장 큰 과제인 고출력을 꾸준하게 지속하는 능력에서는 여전히 확실한 해답을 보여주지 못해 기록을 세우고도 직빨 원툴이라는 평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자동차 매체인 라거스가 공개한 기아 EV6 GT 리뷰[링크]에서 노르트슐라이페 3바퀴를 깔끔하게 완주하는 어떤 의미로 더 대단한 기록을 세우면서 EV6 GT가 새로운 전기차 학살자로 떠올랐기 때문이죠.
덧붙여 서킷 3바퀴 도는 것이 뭐가 그리 대단한 일이냐에 대해 설명드리자면 뉘르부르크링, 그 중에서도 북쪽 구간인 노르트슐라이페는 1바퀴에 3~5km 선으로 구성되는 일반적인 서킷과는 달리 1바퀴에 20.8km로 구성된 초장거리 서킷입니다. 길이도 길이이지만 이 서킷의 진면모는 300m에 이르는 엄청난 고저차와 극단적인 코너들을 기반으로 자동차에 엄청난 부하를 가한다는 것인데 이 때문에 자동차의 극한조건을 손쉽게 끌어낼 수 있어 고성능 자동차의 연구개발을 위한 시험장으로도 널리 알려진 서킷입니다. 현대의 N 브랜드도 남양연구소와 뉘르부르크링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밝히고 있죠.
노르트슐라이페는 1바퀴만 주행해도 자동차가 일반 도로 2,000km를 주행한 것과 비슷한 수준의 스트레스를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때문에 무거운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들은 노르트슐라이페를 1바퀴 도는 것도 버거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전기 스포츠카의 끝판왕으로 알려진 포르쉐 타이칸 터보 S조차 두 바퀴를 돌지 못하죠. 테슬라는 뭐... 모델 S 플래드 정도는 되어야 한 바퀴를 돌고 모델 3 퍼포먼스는 반 바퀴만에 배터리가 과열되고 코너 3개 꺾으면 브레이크가 맛이 갑니다. 현대가 최근 공개한 아이오닉 5 N의 티저 광고에 차덕후들이 열광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죠.
일론 머스크가 전기자동차에 이은 테슬라의 새로운 사업 아이템으로 점찍은 테슬라 옵티머스, 통칭 '테슬라봇'도 함께 전시되었습니다. 테슬라의 ADAS 시스템인 오토파일럿에 적용된 AI를 사용했다고 하는데 모터쇼에서 이 녀석이 움직이는 모습은 볼 수 없었습니다.
현대모비스는 현대차그룹이 차세대 자동차로 홍보하고 있는 PBV(Purpose Built Vehicle; 목적 기반 모빌리티)로서의 컨셉트카인 엠비전을 내놨습니다. 사실 세계 최대의 전자제품 박람회인 CES의 2023년 행사에서 먼저 선을 보인 적이 있는 모델이죠. 목적 기반 모빌리티라는 이름에 걸맞게 극단적으로 기능을 추구한 형태가 되어 자동차로서의 재미는 없군요.
모든 바퀴가 조향륜으로 작동하는 전차륜 조향으로 구성하고 크랩 스텝이라 불리는 횡방향 기동을 시연했는데 사실 이런 방식은 전지형 크레인(All-Terrain Crane)같은 대형 건설기계에서 종종 볼 수 있는 구성입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엠비전은 인휠 모터로 구동륜을 구성하여 드라이브 샤프트에 구애받지 않게 되면서 직각에 가까운 수준으로 조향할 수 있다는 것이죠.
SK텔레콤의 부스에는 뜬금없이 볼보의 모델들이 전시되었는데 이는 볼보의 한국 사양이 SK텔레콤에서 개발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탑재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작년에도 선보였던 UAM(Urban Air Mobility; 도시 항공교통)의 가상 체험기구를 다시 들고 왔습니다. 쉽게 말해서 비행택시 체험관인데... 현재로서는 UAM의 시제기 비스무리한 것도 나오지 않았기에 이런 형식으로 컨셉트를 체험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관람객들이 이걸로 UAM의 미래를 체험한다기보다는 그냥 공짜 놀이기구로서만 생각할 것 같다고 보는 건 저 뿐일까요.
#2. 모터쇼를 보고 남는 생각들
- 위의 사진에서 제 카메라의 오른쪽에 위치한 텀블러는 제가 서울모빌리티쇼에 간다고 하니까 친구 녀석이 저에게 사오라고 시킨 심부름입니다. 이 친구는 아반떼 N을 타고 있죠. 과거의 재미없고 흔한 국산차를 넘어 이제는 한국 자동차의 퍼포먼스에 자동차광이 열광하고 팬덤이 생길 수 있음을 증명하는 단편을 보게 되어 개인적으로는 바람직한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수익이 나지 않는 분야라고 해도 자동차 회사들이 고성능 자동차에 투자하는 이유 중 하나랄까요.
- 한국을 외면하는 한국계 업체와 한국을 찾는 해외 업체가 공존한 모터쇼였습니다. 당장 국산차 5개사인 '현기르쌍쉐'의 르와 쉐는 이번 모터쇼에 부스를 내놓지 않았습니다. 한국지엠의 경우 GM 본사의 '1대륙 1모터쇼' 정책에 따라 아시아에서는 가장 돈이 되는 시장인 중국에서만 모터쇼에 참가하기로 결정하면서 이번 모터쇼에서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국지엠이 창원공장을 살리기 위해 트랙스의 판촉에 온 힘을 쏟아붓는 상황임을 고려하면 여러 모로 유감스러운 결정이죠. 마찬가지 이유로 스텔란티스 소속 브랜드도 모두 자취를 감췄습니다. 더럽다 더러워...
르노코리아의 경우 이번 모터쇼에서는 내놓을 신차가 없다는 이유로 야외에 간이 부스를 마련해서 노쇼 사태만큼은 면했습니다. 하지만 르노코리아에 신차가 없다 해도 QM6의 후속으로 무수한 떡밥이 오가는 단계임을 고려하면 6세대 에스파스 정도는 파일럿으로 보여줘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반면 포르쉐의 경우 한국이 세계 6위의 자동차 시장임을 강조하며 다방면으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벌였습니다. 실제로 한국에서의 실적도 매년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고요. BMW의 경우 아시아 최초의 BMW 드라이빙 센터를 인천에 개설한 데에 이어 BMW 그룹의 5번째 연구개발센터를 인천의 청라국제도시에 건설하기로 확정하고 올해 5월에 착공에 들어갔을 정도로 한국 시장의 투자에 진심인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들을 보고 있자면 검은머리 외국인보다 그냥 외국인이 더 정겨워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군요.
- 한국 모터쇼의 체질은 코로나 시대를 기점으로 과거의 모습에서 크게 바뀌었습니다. 이제 컴패니언 모델은 일부 군소업체의 부스에서만 볼 수 있는 과거의 유산이 되었죠. 컴패니언 모델의 빈 자리는 자동차의 해설역을 맡는 큐레이터들이 채우게 되었는데 큐레이터의 역량이 여러 모로 기업의 역량을 따라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현대차그룹의 큐레이터들은 매번 저를 실망시키지 않았는데 모터쇼 관람 시간의 상당수를 큐레이터와 노가리 까는 데에 썼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긴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다만 티키타카가 기술적인 분야로 종종 들어가다 보니 자동차 기자나 유튜버로 오인받기도 했지만요. 저는 자동차로는 밥벌이 못 하는 그냥 차덕후일 뿐입니다.
반면 몇몇 부스의 큐레이터들은 제원표를 읽는 데에 급급하거나 기본적인 해설조차 버거워하는 모습을 보여 아쉬움을 줬습니다. 한국 모터쇼가 큐레이터의 해설과 실차 시연 중심으로 재구성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단순한 안내직원이 아닌 해설가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관람객을 맞이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2023년 서울모빌리티쇼의 관람기는 여기까지입니다. 그러고보니 오토살롱위크는 매번 사진만 찍고 그대로 SSD에 썩히고 있는데 이번에는 포스트를 만들 수 있을지 의문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