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드디어 국제 딱지를 떼다
매 행사 때마다 규모가 쪼그라들며 항상 '존폐 위기'라는 단어를 꼬리표처럼 달고 다녔던 부산국제모터쇼는 직전 행사인 2022년에 결국 완성차 브랜드로는 6개사, 자동차그룹 단위로는 현대차그룹과 BMW그룹 단 두 그룹만 참여하는 역대 최악의 행사가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전 세계적인 모터쇼 폐지 및 축소 기조와 맞물려 부산국제모터쇼는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예측도 있었는데 부산광역시는 이걸 놓아줄 생각이 없었던 듯 합니다. 서울모빌리티쇼로 이름을 바꾼 서울모터쇼와 마찬가지로 '부산모빌리티쇼'로 이름을 바꿔 2024년 행사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행사를 열어도 참가하는 브랜드가 없으면 말짱 꽝인데...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2022년과 유사한 규모의 행사가 되었습니다. 그 와중에 아시는 분들은 아시다시피 이번 모터쇼에서는 어그로를 수집한 곳이 꽤 있었죠. 그리 유쾌한 어그로가 아니라 문제였지만요.
아무튼 올해도 모터쇼 끝난 지 n개월 지나서 올리는 쉰떡밥 후기를 올려봅니다.
최근의 자동차 시장 트렌드에 맞춰 이번에도 참조용 약어집을 먼저 올려두고 시작하겠습니다.
* ICE(Internal Combustion Engine) : 내연기관을 의미합니다. 즉, 우리가 알고 있는 기름 먹고 달리는 자동차입니다.
* BEV(Battery Electric Vehicle) : 별도의 연료 주입 없이 배터리로만 전력을 얻는 전기자동차를 의미합니다. 통상적으로 별다른 수식어 없이 'EV'라는 약칭을 사용하는 차량은 십중팔구 BEV를 의미합니다.
* HEV(Hybrid Electric Vehicle) : 내연기관과 모터 동력을 함께 사용하는 자동차를 의미합니다. 한국 시장에서는 HEV라는 약어보다는 '하이브리드'라 칭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 MHEV(Mild Hybrid Electric Vehicle) : 통칭 '마일드 하이브리드'로 불리며 통상적인 HEV보다 낮은 출력의 모터를 사용하는 HEV입니다. 모터는 내연기관의 출력을 보조하는 역할만 수행하며 다른 HEV와는 달리 모터 단독으로 차량을 구동시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 PHEV(Plug-in Hybrid Electric Vehicle) :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로 불리는 방식으로 BEV처럼 충전기를 통해 배터리를 충전할 수 있는 HEV입니다. HEV 중에서는 모터의 출력이 가장 높아 그만큼 모터 동력의 비중이 높아 ICE와 HEV의 장점을 모두 취했다고 홍보하는 방식입니다.
* EREV(Extended Range Electric Vehicle) : 통칭 '레인지 익스텐더'로 불리는 방식입니다. 엔진이 장착되어 있지만 이 엔진은 발전기를 돌려 배터리를 충전하는 용도로만 사용하고 주행 시에는 엔진이 개입하지 않고 배터리에 충전된 전기로만 주행하는 방식입니다. 구조적으로는 직렬 하이브리드에 해당하며 PHEV와 마찬가지로 충전구를 통한 충전 또한 가능하기에 한때는 PHEV의 일종으로 분류되었지만 현재는 EREV라는 별도의 카테고리로 취급하는 경향이 늘고 있습니다.
* FCEV(Fuel Cell Electric Vehicle) : 수소연료전지를 통해 전력을 얻는 전기자동차입니다. 연료전지를 통해 모터를 구동하기 위한 전력을 직접 생산하기 때문에 배터리의 사이즈는 BEV 대비 소형화된 대신 연료전지를 가동하기 위한 수소 연료탱크를 사용합니다.
* NCM/NCA/NCMA(Li-NMC; Ni+Co+Mn/Al) : 리튬이온 배터리의 일종으로 양극재로 수산화 리튬을 중심으로 니켈, 코발트, 망간, 알루미늄 등의 금속을 사용하는 이차전지(충전지)를 의미합니다. 주로 세 가지 금속을 사용한다고 하여 '삼원계 배터리'라는 명칭으로도 일컫는데 삼원계 중 가장 널리 사용되는 NCM의 경우 니켈+코발트+망간을 양극재로 사용하였음을 의미합니다. 에너지 밀도가 높아 부피 대비 충전량을 늘리는 데 유리하고 온도의 영향을 덜 받아 한국의 BEV용 배터리 제조사들이 주로 채택하는 방식입니다. 단점이라면 원자재 가격이 비싸고 리튬이온 배터리의 종족특성 격인 열폭주에 취약하다는 점이 있겠군요.
* LFP(Li-FePO4) : 리튬이온 배터리의 일종으로 양극재로 리튬인산철을 사용하는 이차전지를 의미합니다. 인산, 철 등 구하기 쉬운 재료를 사용하기에 NCM과 비교했을 때 단가가 저렴하고 열에 대한 안정성과 내연성이 좋은 인산철의 특성상 열폭주 현상이 거의 일어나지 않아 화재 및 폭발의 위험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하다는 것이 장점이지만 에너지 밀도가 낮고 겨울철에 성능이 크게 떨어지는 단점이 있습니다. NCM 대비 기술적인 장벽이 낮기 때문에 주로 중국의 배터리 제조사들이 채택하는 방식입니다.
#1. 모터쇼 관람 보고서
▶ 현대자동차
다양한 장르의 자동차를 만드는 제조사답게 보여주고 싶은 것도 많겠지만 그만큼 매번 부스의 구성이 산만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던 현대자동차의 부스는 이번에도 여전했습니다. 현대차가 특정한 테마를 강조하기 위해 힘을 빡 주고 부스를 꾸민 기억은 거의 없었지 싶군요. 있다 하면 쏘나타 DN8 출시 당시의 2019년 서울모터쇼 정도...?
현대차 부스의 주인공 자리를 차지한 차는 캐스퍼 일렉트릭입니다. 현대차 부스의 유일한 월드 프리미어(세계 최초공개)이기도 하죠.
이름과 외형에서 짐작할 수 있듯 기존에 출시된 경형 SUV인 캐스퍼를 기반으로 한 BEV 모델인데 단순한 파워트레인 신설이라고 보기에는 꽤 많은 부분이 바뀐 것이 특징입니다. 물론 외형만 보자면 기존의 캐스퍼 디자인의 틀을 유지하고 있지만요.
기아에서 먼저 출시된 레이 EV는 항속거리 205km급의 LFP 배터리를 사용하는 반면 캐스퍼 일렉트릭은 항속거리 315km급의 NCMA 배터리를 사용합니다. 이에 맞춰 캐스퍼 일렉트릭 쪽에 더 강한 출력의 모터가 탑재되어 결론적으로 조금 더 상위 모델의 포지션을 취하게 되었습니다.
캐스퍼 일렉트릭의 출시 즈음에 기존 캐스퍼의 컬러 중 판매가 부진했던 유채색 컬러 다수가 단산되었는데 그 빈자리를 채우기라도 하듯 캐스퍼 일렉트릭에는 다양한 신규 컬러가 적용되었습니다. 확실히 짙은 무광이 강하고 다부진 인상을 주는 건 사실인데 관리의 난이도를 생각하면... 음...
현대차의 BEV 모델이 늘 그랬듯이 캐스퍼 일렉트릭도 '파라메트릭 픽셀'이라 칭하는 픽셀 테마로 꾸며졌습니다. 등화류, 그릴, 가니쉬 등등에 픽셀 패턴을 빼곡히 심었고 심지어 견인훅, 충전구 등 알림 기호마저도 픽셀로 꾸며졌습니다. 전기차답게 기본적으로 라디에이터 그릴은 막혀있는 구조이지만 범퍼 하단에 액티브 플랩을 설치하여 주행 조건에 따라 개방되도록 구성했습니다.
헤드램프는 2구 할로겐 프로젝션 타입에서 4구 LED 프로젝션 타입으로 변경되었는데 이 변화는 얼마 뒤에 출시된 캐스퍼의 페이스리프트 모델에도 적용되었습니다.
사실 캐스퍼 일렉트릭의 가장 큰 변화는 체급의 변화입니다.
BEV로 구성하는 과정에서 전장이 230mm 길어지고 전폭이 15mm 넓어졌는데 이 때문에 한국의 경차 규격인 전장 3.6m, 전폭 1.6m를 초과하게 되어 한국의 자동차관리법상 캐스퍼 일렉트릭은 경형 승용차가 아닌 소형 승용차로 분류됩니다.
이런 사례는 예전에 출시되었던 쉐보레의 M300 스파크 기반 스파크 EV도 마찬가지였는데 배터리 수납을 위해 길어진 전장 탓에 경차를 베이스로 했음에도 경차가 아닌 소형차로 분류되었죠. 반면 기아 레이 EV의 경우 차체를 키우지 않고 배터리를 수납했기에 여전히 경차로 분류됩니다. 즉, 캐스퍼 일렉트릭과 레이 EV는 동급 차량이 아니라는 것이죠. 시장에서는 타사의 소형 전기 SUV들과 경쟁하게 됩니다.
전장이 길어지면서 휠베이스도 180mm 길어졌고 이 덕분에 전체적인 프로포션에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여러 모로 일렉트릭 쪽이 조금 더 안정적이고 완성도 높은 디자인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캐스퍼는 한국 내수용 모델이었지만 캐스퍼 일렉트릭은 해외 수출이 계획되어 있습니다. '캐스퍼 일렉트릭'은 내수용으만 사용하는 이름이고 해외 시장에서는 '인스터(Inster)'라는 이름이 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를 종합할 때 해외 시장에서의 A세그먼트 시장 공략과 더불어 내수 시장에서 동 그룹사의 레이 EV와의 시장 간섭을 피하기 위해 별도로 한국 경차 규격에 맞춘 버전을 따로 개발하지 않고 수출사양 그대로 내수 시장에 출시했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체급이 커지면서 사라지는 경차 혜택은 전기자동차 혜택으로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을테니까요.
전장과 휠베이스가 길어지면서 2열과 트렁크의 공간이 넓어졌습니다.
테일게이트를 개방하면 하단 범퍼의 콤비네이션 램프에 빨간색 램프가 켜집니다. 이는 캐스퍼의 제동등이 테일게이트를 올리게 되면 아예 보이지 않는 구조이기에 테일게이트를 개방한 상태에서 보조 제동등으로 작동하는 램프입니다. 형태는 다르지만 캐스퍼 시절부터 있던 물건으로 타사에서는 아우디 Q 시리즈, BMW iX 등에서 볼 수 있는 구성이지요.
이게 법규를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구성이라고는 하는데 한국의 자동차관리법에는 아무리 뒤져봐도 이에 대한 내용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쉐보레 볼트 EUV의 괴악한 테일램프 구성 사례를 감안했을 때 FMVSS(미국 연방 자동차 안전기준)에 이 내용이 적혀있을 것 같은데 제가 영알못인 탓에 FMVSS를 아무리 뒤져봐도 이에 대한 내용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혹시 이 규정에 대해 아시는 분이 있다면 제보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목적은 없고 그냥 궁금할 뿐입니다.
실내는 캐스퍼와 대동소이하지만 플로어 시프트 변속 레버가 칼럼 시프트로 대체되고 LCD 계기판, EPB(전자식 주차브레이크), 어라운드뷰 모니터 등 상위 차종에 사용되는 몇몇 편의사양을 추가로 탑재하였습니다. 최근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고 있는 고령 운전자의 페달 오조작 사고를 시스템 차원에서 예방하는 PMSA(페달 오조작 안전보조)를 국산차로는 최초로 탑재한 것도 주목할 부분이죠.
다른 것보다 스티어링 휠의 혼캡에 [····]가 추가된 것이 반가운 변화인데 이후 출시된 캐스퍼 페이스리프트에는 이번에도 혼캡에 어떠한 상징도 새기지 않았습니다.
저 점 4개가 뭐가 그리 대단한가 싶은데 '····'가 모스부호로 'H'를 의미하기 때문에 최근 출시되는 현대차들은 이 ····를 혼캡에 LED로 박아넣어 엠블럼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캐스퍼의 경우 실내를 볼 때마다 스스로 현대차이기를 거부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민무늬 혼캡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현대차를 넘어 한국 자동차의 새로운 아이콘이 된 N 비전 74는 현재의 실험기 단계를 넘어 조금씩 양산 관련 떡밥이 풀리고 있습니다.
'N74'라는 코드네임으로 올해 하반기에 T-카(선행개발용 시험차량) 제작에 착수하여 2026년부터 200대 한정으로 생산하고 각 부품사에 관련 정보를 제공했다는 기사가 5월 경에 보도되었는데 이 기사가 사실이라면 사실상 한국 최초의 슈퍼카로 탄생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충 짐작이 가시겠지만 이 차만을 위한 전용 금형과 파워트레인을 요구하는 차량을 고작 200대만 찍어낸다는 것은 결국 현대차는 이 차로는 수익을 낼 생각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산을 추진하는 이유는 세계 최초의 수소 슈퍼카를 만들어냄으로서 FCEV 업계의 선두주자로서의 위상을 확실히 굳히기 위해서겠죠.
당연히 가격 또한 수억 원 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지만 구입할 수 없더라도 한국에서 이런 차가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반가운 일이라는 것을 부정하실 분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아이오닉 5 N은 데뷔 이전의 기대 반 의심 반이었던 시선과는 달리 국내외의 자동차 전문 매체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고성능 내연기관 수준의 시스템 지속력을 전기자동차의 가속력으로 소화할 수 있고 전기자동차 특유의 뒤떨어지는 감성을 최대한 내연기관에 가깝게 모사했다는 것이 그 호평의 포인트죠. 저도 택시 프로그램을 통해 조수석에 동승한 상태로 한국테크노링 서킷을 달린 적이 있었는데 변속기가 없는 전기자동차 주제에 변속충격을 꽤 그럴 듯하게 만들어냈더군요.
현대차그룹은 PBV(Purpose-Built Vehicle; 목적 기반 모빌리티)라 하여 특정한 목적을 위해 맞춤 제작한 교통수단을 프로젝트 중 하나로 밀고 있습니다. 그 프로젝트의 첫 번째 주자는 기아의 택시 전용 모델인 니로 플러스였죠.
현대차는 자사의 첫 번째 PBV로 ST1을 출시했습니다. 외형에서 보시다시피 스타리아를 기반으로 한 모델로 사실상 스타리아 카고의 BEV 버전이라고 보면 무방합니다. 어떻게 보면 스타렉스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1톤 트럭이었던 리베로의 정신적 후속작 포지션이기도 하죠.
화물차 차주들이 ST1에 대해 내리는 평가는 놀라울 정도로 리베로와 유사합니다. 동급 차량인 포터 일렉트릭/봉고 EV 대비 풍부한 편의장비와 안락한 승차감, 후드가 돌출된 1.5박스 구조에 의해 캡오버 구조 대비 높아진 충돌안전성은 확실한 장점이지만 짧은 적재함에 의한 불편, 긴 휠베이스에 의한 기동성 저하, 비싼 가격이 단점으로 꼽히고 있죠. 덤으로 데이캡(=슈퍼캡, 킹캡) 사양이 없다는 점 또한 의외의 불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ST1은 전륜구동 구성이고 배터리가 섀시 아래로 배치된 구조이기에 후륜 측에는 별다른 돌출물이 없어 적재함의 바닥 높이를 통상적인 저상 화물차보다 더 낮게 끌어내릴 수 있습니다.
이 덕분에 전고를 낮추면서도 적재함 내의 높이를 1.7m 수준으로 확보할 수 있게 되었는데 최근 신축 아파트 지하주차장의 택배 차량 출입 관련 이슈를 고려하면 낮아진 전고는 분명한 이점이지요. 물론 이 때문에 휠하우스가 적재함 내부로 돌출되면서 적재능력에서 약간 손해를 보긴 했습니다만 택배 차량으로서는 이점이 좀 더 많은 구성이라고 판단됩니다.
현재 ST1은 탑차와 냉동탑차 두 가지 사양으로만 출시되고 있지만 추후에 적재함이 빠진 섀시캡 모델이 출시될 예정입니다. 화물칸 또는 별도의 특장 설비는 특장 업체를 통해 설치하라는 의도인데 이를 통해 일반적인 드롭사이드 적재함이 탑재되면 아마 기존 1톤 트럭들과의 진검승부가 가능하지 않을까 합니다.
이번 모터쇼의 유일한 대형 상용차인 엑시언트 FCEV는 적재함에 어린이 놀이터를 구성하여 전시차량이었던 무언가 취급이 되었습니다.
이 외에 이번 모터쇼에서는 의외로 드물었던 UAM, 유리상자에 바퀴 달아놓고 공공 모빌리티라고 우기는 스페이스 모빌리티 등등이 미래의 모빌리티에 대한 비전으로 소개되었는데 아직까지는 와닿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미래에는 날아다니는 자동차 타고 다닌다고 이야기하던 게 언제부터였더라...
▶ 기아
모든 전시차를 BEV로만 구성했던 작년의 서울모빌리티쇼 때와는 달리 올해는 카니발 HEV가 전시차 목록에 올랐지만 ICE를 배제하는 기조는 여전했습니다.
현 시점에서 현대차그룹의 완성차 3사 중 전동화에 가장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는 기아는 EV3를 전기자동차 시장 확대를 위한 전략차종으로 선포했습니다. 5월 말에 온라인 프리미어를 통해 공개되었는데 이왕이면 공개 시기를 한 달 정도만 더 늦춰서 모터쇼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하면 좀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EV3는 현재까지 출시된 기아 EV 시리즈 중 가장 작은 소형 SUV 포지션이자 현대차그룹의 전동화 플랫폼인 E-GMP를 사용하는 차종 중 가장 작은 모델입니다. 앞서 소개한 캐스퍼 일렉트릭의 경우 캐스퍼와 동일한 K1 플랫폼을 베이스로 두고 있죠. 파워트레인은 앞서 소개한 캐스퍼 일렉트릭과 마찬가지로 NCMA 배터리를 기반으로 하는데 현대차그룹과 LG엔솔의 인도네시아 합작법인인 'HLI그린파워'를 통해 공급받고 있습니다.
디자인의 각 구성요소는 기아의 최신 패밀리룩인 스타맵 시그니처 라이팅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전반적인 이미지, 특히 후면의 구성은 상위 모델인 EV9을 그대로 빼다박은 구성이죠. 전체적으로 완성도 높은 디자인이지만 측면의 경우 하단의 클래딩과 사이드 스커트에 너무 많은 디테일을 박아넣어 산만하게 보이는 감도 없지 않긴 합니다.
현 시점에서의 최상위 트림은 GT라인입니다. 하지만 어느 매체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EV3도 별도의 고성능 트림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EV6처럼 GT 트림을 만들겠다는 의미겠죠.
현재는 전륜 모터만 장착된 전륜구동 사양이지만 GT 트림에는 후륜에 모터를 추가한 듀얼 모터 사양이 되지 않을까 하는 추측이 가능합니다. 사실 고성능 소형차도 꽤 매력적인 장르인데 한국은 소형차 자체가 기피되는 시장인 탓에 국산 브랜드의 고성능 소형차가 정작 고향 땅을 밟지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죠. 네. 아실 분들은 아시는 WRC의 강자인 i20 WRC의 베이스 모델인 현대 i20 N 이야기입니다.
먼저 등장한 EV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GT라인은 파워트레인의 변화는 없이 디자인에 차별화를 둔 최상위 트림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하위 트림인 에어, 어스는 위 사진과 같이 범퍼의 형태가 바뀌고 휠하우스 클래딩의 블랙 하이그로시가 빠지는 등 조금 더 수수한 외모가 됩니다.
파워트레인은 트림과 배터리 용량에 관계없이 150kW(=204마력)급 모터를 사용하는데 소형차 덩치에 204마력이면 날아다니는 게 아닐까 싶지만 이 차의 무게가 자그마치 1.8톤을 넘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생각만큼 민첩한 움직임을 보여주지는 않을 것이라 예상됩니다. 동사의 ICE 모델과 비교하면 쏘렌토 2.5T보다도 더 무거운 무게입니다.
제 이전 차였던 K3 GT가 204마력에 1,385kg였는데 비슷한 덩치에 같은 출력을 가진 EV3 풀옵션의 무게가 1,850kg에 달한다는 점을 보면 BEV는 여러 모로 배터리 무게에 발목을 잡힌다는 점을 새삼 체감하게 됩니다. 물론 빠르게 최고출력을 끌어낼 수 있는 모터의 특성상 마냥 느리지는 않겠지만요.
모하비의 출시 초기부터 끊임없이 던져졌던 픽업트럭 파생모델 떡밥은 결국 모하비가 단종될 즈음에서야 회수의 조짐이 보이고 있습니다. 모하비의 프레임을 기반으로 한 픽업트럭인 타스만이 위장막을 덮어쓰고 공개되었습니다.
타스만은 호주 시장 전략차종으로 개발된 모델로 기아 호주법인의 강력한 요청에 의해 기획되었고 그만큼 기아 호주법인이 개발 과정에 깊게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애초에 이름부터가 호주 최남단에 위치한 태즈메이니아 섬에서 유래했죠. 이 때문인지 저 휘황찬란한 위장막도 호주의 자연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실 5월 경에 기아가 타스만 위장막 경진대회를 개최한 적이 있기에 대회 수상작을 베이스로 한 위장막을 사용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의외로 대회 수상작이 아닌 기아가 최초로 공개했던 위장막으로 전시되었습니다.
타스만은 모하비의 프레임을 사용한다는 것 외에는 아직 제대로 밝혀진 정보가 없는 상태입니다. 사실 전시된 모델도 카울 외형만 구현된 목업 모델로 전시차를 통해 파워트레인, 섀시 등을 추정할 수 있는 단서는 일절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번 모터쇼에서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은 '야성미를 강조한 근육질의 픽업트럭이 될 것이다'라는 방향성 뿐이죠.
현재 현대차그룹에서 사용할 수 있는 후륜구동 파워트레인이 그리 많이 남지 않은 상황이기에 현행 제네시스 모델들과 파워트레인을 공유한다는 전망이 가능합니다. 당장 모하비에서 사용하던 S2 엔진은 유로7 등 앞으로 더욱 점점 가혹해질 환경규제에 대응하기 어려워 모하비의 단종과 함께 단산된 상황이라서 말이죠. 이 외에 BEV 사양도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포지션 상 쉐보레 콜로라도, 포드 레인저 등의 중형 픽업트럭과 경쟁하게 되며 국산차로는 KGM 렉스턴 스포츠와 체급이 겹치게 됩니다. 바디 온 프레임에 대한 노하우가 미국 제조사 대비 부족할 수밖에 없는 기아로서는 상당한 도전을 하는 셈인데 우선은 픽업트럭의 천국이자 전쟁터인 미국 시장이 아닌 당초 계획인 호주 시장부터 투입할 계획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미국 진출 여부는 호주 시장에서의 성패에 달려있다고 하는군요.
타스만은 모하비로부터 유래된 파생 모델이지만 한국에서는 모하비를 대체하는 후속모델 성격도 어느정도 가지게 됩니다. 당장 기아에서 모하비의 뒤를 이을 바디 온 프레임 정통 오프로더의 후계자가 이 차 외에는 아예 없죠. 실제로 모하비를 생산하던 기아 화성공장에서 타스만을 이어 생산하는 것으로 결정되면서 명목상으로나 실질적으로나 후속모델 포지션이 되었습니다.
기아는 메인 부스 외에 별도의 구획을 마련해 기아가 앞으로 내놓을 PBV 라인업인 PV 시리즈를 위한 서브 부스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부스의 중심 모델은 기아의 차기 주력 PBV가 될 PV5 컨셉트, 그 중에서도 섀시캡입니다.
사진 상으로는 거의 체감되지 않지만 현재의 1톤 트럭과 유사한 수준의 체급을 지닌 차량으로 담당 큐레이터에게 문의했을 때 현대차그룹이 상용 BEV용으로 준비 중인 eS 플랫폼이 아닌 별도의 전용 플랫폼을 사용한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eS 플랫폼을 개수한 파생 플랫폼일지, 아예 새로운 플랫폼일 지는 뚜껑을 열어봐야겠군요.
컨셉트카이기에 양산차에서는 빠질 것이 뻔한 포인트들이 눈에 띄는데 전면 그릴부에 위치한 세그먼트 전광판 또한 그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전광판의 온도 단위계가 화씨인 것을 보면 PV5가 미국 시장에 팔릴 것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추정이 가능합니다. 미국 시장에서는 GM계열 전기차 제조사인 브라이트드롭에서 제작하는 Z에보 시리즈가 아마 직접적인 경쟁상대가 될 것 같네요.
한국에서의 베스트셀러인 봉고3 트럭은 개발도상국 시장에서는 활발하게 수출되고 있으나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시장에서는 판매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캡오버 구조로 인한 취약한 충돌안전성 때문인데 PV5를 비롯한 PV시리즈는 1.5박스 구조를 취하면서 어느정도의 안전성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큐레이터의 설명에 따르면 컨셉트 단계이기에 파워트레인, 충돌안전성을 비롯한 기술적인 검토는 최대한 배제한 컨셉트의 구현으로서만 만들어진 모델이라고 하는데 아마 양산 단계에서도 의외로 디자인 면에서 큰 차이는 없을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PV5 섀시캡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이것, 이지 스왑 시스템입니다. 전용 설비를 이용해 캐빈 뒤의 적재함을 모듈 단위로 교체할 수 있으며 적재함 모듈 뿐만 아니라 밴 모듈을 얹어 트럭에서 밴으로 컨버전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즉, 평일에는 화물차로 운행하다가 주말이 되면 캠핑용 RV로 탈바꿈한다거나 하는 것이 가능해진다는 이야기죠.
당연하겠지만 주차난에 시달리는 한국에는 이 모듈을 모두 보관할 넉넉한 차고를 보유한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기아에서는 섀시캡 단위로 차량을 판매하고 모듈은 개인에게 판매하는 것보다 구독 형태로 대여할 수 있는 PBV 센터를 운영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합니다. 모듈의 탈부착을 위해서는 전용 설비도 필요하기 때문이죠. 기아로서는 각 모듈을 교체할 때 이음새를 어떻게 체결하고 고정성, 수밀성, 내구성 등을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양산 단계에서의 가장 큰 숙제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PV5의 기본 모델에 해당하는 베이직의 모습은 위와 같습니다. 이대로 양산된다면 봉고3 코치의 단종으로 명맥이 끊겼던 '봉고차' 계보가 PV5로 부활하게 되겠군요.
Z세대와 알파세대로 일컬어지는 젊은 세대 중에서는 원박스카가 왜 '봉고차'로 불리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을텐데 기아가 간만에 봉고차 원조 맛집의 실력을 보여줬으면 하는 기대가 있습니다.
전동식 사이드 스텝에 휠체어 리프트를 내장한다는 방안은 꽤 흥미롭군요. 플로어 아래에 프로펠러 샤프트나 배기 파이프가 없는 BEV이기에 가능한 발상인데 허용하중만 충분하게 확보할 수 있다면 장애인용 차량으로서 꽤 괜찮은 대안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에는 하이루프 바디를 얹은 PV5입니다. PV5 하나로 이것저것 다 해먹는데 이지 스왑 시스템의 확장성이 여러 모로 돋보이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PV5보다 조금 더 큰 덩치를 가진 PV7 컨셉트입니다. 기아에서는 대형 PBV로 분류하고 있지요. 마찬가지로 기술적인 제원은 현재로서는 모두 불명이며 PV5와 마찬가지로 이지 스왑 시스템을 통한 모듈의 교체 또한 검토되고 있다는 설명이 있었습니다.
PV7의 경우 내부의 파티션을 차 밖으로 통째로 들어내어 상품 진열대로 활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소개되었는데 저걸 볼 때마다 저걸 누가 들어다 옮겨줄까 싶은 의문이 듭니다. 아무리 봐도 사람 한두 명이 옮길 수 있는 무게가 아닌 것 같은데...
서브 부스의 신 스틸러, PV1 컨셉트입니다. 이번에 전시된 PV 시리즈 중 유일하게 실제로 구동하는 모습이 시연된 모델이기도 합니다.
체구만 다를 뿐 대동소이한 구성을 보인 PV5, PV7과는 달리 이질적인 형태를 가진 모델로 PV 시리즈 중에서는 가장 작은 사이즈입니다. 전장이 고작 3,210mm밖에 되지 않는 짧디 짧은 차량임에도 불구하고 전폭 1,675mm로 1.6m를 초과하기 때문에 한국의 법규로는 경차가 아닌 소형차로 분류됩니다.
차량의 내부를 자세히 보면 스티어링 휠과 시트를 아예 찾아볼 수 없는데 이는 오로지 화물 운송만을 위한 무인 자율주행 차량으로 기획되었기 때문입니다. 운전원도 승객도 없이 오직 화물만을 내부에 채워넣을 수 있는 차량이죠. PV5나 PV7이 화물 거점까지 운송한 화물을 옮겨받아 최종 소비자의 앞까지 배달하는 목적으로 운용됩니다.
앞바퀴를 자세히 보시면 90도로 조향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PV1은 네 바퀴 모두 90도로 조향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완전히 직각으로 주행하는 크랩 주행, 제자리에서 360도 회전하기, 뒷바퀴를 축으로 앞바퀴로 회전하는 피봇 턴 등의 기상천외한 주행을 할 수 있죠. 다만 시연차량은 뒷바퀴의 조향이 잠겨있어 피봇 턴으로 선회하고 뒤에 보이는 PV5에서 화물을 가져오는 과정만 시연되었습니다.
이런 기묘한 운용 방법의 비결은 바퀴 안에 모터 유닛을 내장한 인휠 모터입니다. 이 때문에 드라이브 샤프트에 구애받지 않고 조향축을 꺾을 수 있어 90도 조향을 구현할 수 있는 것이죠. 다만 현재로서는 인휠 모터의 기술이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크고 강한 인휠 모터를 개발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어 양산차에 적용되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한 기술이죠.
이 외에 차고 조절장치를 응용하여 차체를 특정 방향으로 기울일 수 있는 닐링(kneeling) 시스템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주로 휠체어의 탑승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저상형 시내버스에 채용되는 기능인데 경차급 차량에 닐링이 붙는 건 상당히 신선하군요.
EV6의 페이스리프트는 사진으로만 봤을 때는 으악 소리가 절로 나왔는데 실물로 보니 의외로 괜찮게 나와서 긍정적인 의미로 기대를 벗어났습니다.
다만 큐레이터에게 문의했을 때 EV6 GT는 당분간 페이스리프트 계획이 없다는 답변을 받았는데 기아로서는 EV6 GT의 향방에 대해 꽤 고민이 많을 시기이긴 합니다. 형제차로 취급되는 아이오닉 5 N은 전문가들의 호평을 받으며 입지를 굳히고 있는데 EV6 GT는 그저 아이오닉 5 N의 프로토타입으로만 취급될 뿐이니까요. 실제로 EV6 GT보다 뒤에 나온 아이오닉 5 N은 EV6 GT에서 노출된 약점을 대부분 보완하고 나왔기에 고성능 전기차를 원하는 소비자들은 더더욱 EV6 GT를 선택할 이유가 없는 상황입니다. 그렇게 판매량이 박살나고 있으니 페이스리프트 시기는 점점 늦춰질테고...
EV6 GT의 페이스리프트 때 아이오닉 5 N과 동일한 수준으로 파워트레인과 섀시의 완성도가 개선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들도 꽤 있는데 이 예측이 실제로 이뤄질 지는 여러 모로 지켜봐야 할 상황입니다. 이미 기아의 고성능 지향 모델들은 현대차가 'N 뭐시기' 등의 이름을 붙여 자랑스럽게 공개한 기술과 동일한 기술을 적용하고도 기아 측의 홍보자료에서는 이 내용을 쏙 빼놓는 차별을 겪은 사례가 종종 나오거든요.
기아의 기획부서는 헤드램프에 ㄱㄴ놀이 하는 것 좀 그만 하고 GT 브랜딩 전략부터 좀 제대로 짰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도대체 기아의 GT 브랜드는 언제까지 표류해야 합니까. 스팅어가 울고 있습니다.
차쟁이들이라면 '쉬라츠의 저주'라는 농담을 아실 겁니다. 옛날옛적 대우자동차가 아카디아의 뒤를 플래그십 세단으로 쉬라츠를 개발하고 있었으나 대우차가 쌍용자동차를 인수하면서 쌍용 체어맨이 대우차의 플래그십이 되고 쉬라츠는 개발 중단이 결정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아카디아 이후로 출시되는 대우차 계보의 플래그십 세단은 쉬라츠의 원한을 받아 모조리 망했다는 이야기가 바로 쉬라츠의 저주이죠.
이와 비슷하게 플래그십과 인연이 없는 회사가 있었으니, 바로 기아입니다.
기아의 플래그십 세단이었던 엔터프라이즈가 IMF 금융위기로 인한 기아자동차의 부도로 망한 이후 현대차로부터 넘겨받아 이름만 바꾼 오피러스를 제외하면 기아가 내놓는 플래그십은 모두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악연은 결국 기아가 야심차게 내놓은 플래그십 SUV인 EV9에게까지 이어졌습니다.
기아는 브랜드 자체는 대중차 브랜드를 지향하나 브랜드 내의 플래그십 모델은 프리미엄 차량으로 간주한다는 전략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 전략에 따라 K9과 스팅어는 전용 멤버십 서비스를 운영하고 모하비의 경우 멤버십 서비스는 없지만 전용 시동키와 전용 오너먼트를 제공받는 등 기아 내부적으로 프리미엄 모델로서 분류되고 있지요. EV9 또한 EV9 전용 멤버십을 운영하면서 프리미엄 모델로서의 마케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델들의 공통점은 차량 자체의 완성도와는 무관하게 '기아'라는 이름값으로는 비싸다는 이유로 처참한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때문에 현대가 제네시스를 분리한 것처럼 기아도 '에센시스'(또는 '에센투스')라는 프리미엄 디비전을 분리하는 것을 추진하였으나 결국 무산된 적이 있죠. 기아로서는 여러 모로 골치아픈 숙제입니다.
▶ 제네시스
모터쇼 때마다 늘상 같은 테마의 부스를 만들었던 제네시스는 이번에도 여전했지만 마그마 프로그램을 홍보하기 위한 구성이 더해진 점이 올해의 특이사항이겠군요.
자동차 제조사는 종종 특정한 성격을 가진 자동차를 위한 서브 브랜드를 런칭하고는 합니다. 특히 고성능 디비전은 어느정도 규모와 역사가 있는 자동차 브랜드라면 높은 확률로 만들어지게 되죠. 현대차그룹의 경우 현대차의 서브 브랜드로 현대 N을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시킨 바 있습니다.
제네시스는 본격적인 고성능 디비전의 시작으로 '마그마 프로그램'을 출범했습니다. 다만 여타 고성능 디비전들과는 달리 '브랜드'가 아닌 '제네시스의 확장'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제네시스의 사장인 루크 동커볼케의 설명을 감안하면 서브 브랜드보다는 프로젝트로서의 성격에 가깝습니다.
이번 모터쇼에서 마그마 프로그램을 홍보하기 위해 등장한 모델은 월드 프리미어로 등장한 X 그란 레이서 비전 그란 투리스모 컨셉트입니다. 작년에 등장한 X 그란 베를리네타 비전 그란 투리스모 컨셉트를 베이스로 제작된 컨셉트카죠.
우선 이 차를 설명하기 전에 비전 그란 투리스모(이하 'VGT')가 무엇인지를 간략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겠군요.
VGT는 시뮬레이션 레이싱 게임의 대표주자 중 하나인 그란 투리스모 시리즈에서 파생된 프로젝트입니다. 그란 투리스모 시리즈의 15주년을 기념하여 각 자동차 제조사가 상상하는 미래의 GT카를 게임 내에서 구현하는 프로젝트로 2013년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명맥이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현대차그룹에서는 2015년에 현대차 명의로 N 2025 VGT를 만들어 게임에 수록시킨 적이 있었죠.
뒤어어 VGT의 10주년이 되는 2023년에 제네시스가 VGT를 위해 제작한 컨셉트카가 X 그란 베를리네타입니다. 그리고 지금 소개하는 X 그란 레이서는 마그마 프로그램이 지향하는 요소를 더해 한층 더 공격적인 형상을 갖추게 되었죠. 즉, X 그란 베를리네타의 마그마 버전이 X 그란 레이서라고 보시면 얼추 맞습니다. VGT 명의를 달고 나온 모델인 만큼 그란 투리스모 게임 내에서 사용 가능한 차량으로 추가될 예정입니다.
양산을 염두에 두고 제작된 모델이 아닌만큼 상세한 제원은 불명입니다. 큐레이터의 설명에 따르면 X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X 스피디움 쿠페, X 컨버터블 등 이전까지 공개되었던 X 시리즈와는 별개의 노선을 타게 되며 이에 따라 플랫폼 또한 범용 플랫폼이 아닌 이 차를 위한 전용 플랫폼의 사용이 예상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차는 BEV가 아닌 HEV로 기획되었기 때문이죠.
제네시스가 현행 G90을 마지막으로 추후 출시되는 풀체인지 신차는 내연기관을 완전히 배제한다는 언론 보도가 종종 있었지만 큐레이터는 제네시스가 내연기관을 포기하는 것은 제네시스의 공식 입장이 아니라며 완강하게 부인했습니다. 큐레이터의 설명으로 이 정도로 강한 부정의 표현을 듣는 건 처음이군요. 그동안 떡밥으로만 던져지던 현대차그룹의 후륜구동 HEV 파워트레인 개발이 추진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알음알음 들리고 있는 것, 그리고 현대차그룹이 공식적으로 EREV 개발에 착수했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듯 합니다.
이 차의 베이스 모델인 X 그란 베를리네타와 마찬가지로 람다 엔진을 기반으로 하고 일렉트릭 슈퍼차저를 더한 HEV 파워트레인으로 구성되는데 엔진과 모터의 출력을 합쳐 시스템 출력이 1,071마력에 달하는 하이퍼카로 기획되었습니다. 물론 게임 속의 제원일 테지만 극도의 현실성을 추구하는 그란 투리스모 시리즈의 특성상 무턱대고 허무맹랑한 제원을 제시하지는 않았을테고 제네시스가 현재의 기술력을 기반으로 목표로 하는 제원이라고 보면 무방할 듯 합니다.
비록 양산되지는 않지만 이 차의 디자인 요소는 추후 다른 양산차에 반영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아마 이후에 등장하게 될 마그마 프로그램에 차례차례 적용될 듯 하군요. 덤으로 아직까지는 마그마 프로그램을 상징하는 전용 엠블럼이 없는데 현재로서는 전용 바디컬러인 '마그마 오렌지' 컬러를 마그마 프로그램의 상징으로 삼고 마그마 엠블럼은 추후에 등장할 수도 있다는 큐레이터의 귀띔이 있었습니다.
마그마 프로그램은 여타 고성능 디비전과 같이 운전의 즐거움을 추구하지만 서킷을 달리고 속도 경쟁을 목표로 하는 타사의 고성능 디비전과는 달리 럭셔리에 고성능을 더하는 것이 마그마 프로그램의 지향점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궁극의 그랜드 투어러를 지향한다는 것인데... 고성능 디비전이 브랜드 가치를 인정받고 대중들에게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모터스포츠라는 것을 감안하면 다소 의문이 드는 방향입니다. 현대 N과의 시장 간섭을 우려하는 것일까요.
마그마의 영역을 벗어나면 언제나의 제네시스가 그랬듯이 가로줄 인테리어가 반겨주는데 그 중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모델은 네오룬이었습니다. 현재로서는 GV90라는 이름으로 양산될 것이 유력한 모델이죠.
설명으로는 한국의 전통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인테리어로 구성했다고 하는데 어차피 컨셉트카의 인테리어는 양산차 단계로 가면 큰 윤곽만 남고 디테일은 거의 대부분 갈아엎어지니 외형이 어떻게 자리잡게 될 지를 예상하는 척도로 활용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입니다. 현대차그룹의 컨셉트카가 양산화되면서 외형이 거의 변하지 않는 사례가 점점 늘고 있으니까요.
만약 이대로 양산화가 추진된다면 이 차는 한국 자동차 역사상 최초의 풀사이즈 SUV로 기록되게 됩니다. 팰리세이드와 GV80는 어디까지나 한국 시장에서의 분류로만 대형 SUV이지 미국 시장 기준으로는 미드사이즈 SUV이니까요.
G90는 등화류를 제외한 실내의 모든 요소를 블랙 컬러로 마감한 최상위 트림인 G90 블랙이 전시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쉐보레가 블랙 놀이 장인이었는데 어느새 현대차가 블랙 놀이에 푹 빠지더니 기어이 제네시스까지 이 풍조가 넘어왔군요.
새까매진 것을 제외하면 기술적인 변화점은 없습니다. 왜 G90가 공기업 및 대기업 법인차로만 취급받는지 조금은 고민을 해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이 외에 제네시스 G80 BEV 모델의 페이스리프트도 공개했는데 최근의 제네시스 페이스리프트 풍조에 따라 외형의 변화는 거의 없었습니다. 제 관심 밖을 벗어나서인지 사진을 단 한 컷도 찍지 않았군요.
▶ 르노코리아
사실 작년의 KGM 부스와 마찬가지로 이번 모터쇼의 주인공이 되었어야 할 부스이고 모터쇼가 열리기 직전까지만 해도 당연히 이번 모터쇼의 주인공은 르노코리아가 될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모터쇼가 열린 직후 르노코리아 홍보팀이 어처구니없는 사건을 터뜨리면서 르노코리아는 노를 저어야 할 시기에 암초에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에 대한 내용은 제 포스트에서는 굳이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이런 주제로 시간과 정신력을 소모하고 싶지는 않거든요. 그냥 원래 하려고 했던 자동차 이야기만 간단하게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르노삼성자동차가 삼성그룹과의 상표권 계약이 종료되고 르노코리아로 사명을 바꾸는 동안 2020년에 출시된 XM3를 마지막으로 단 한대의 신차도 내놓지 못하던 르노코리아가 드디어 신차를 내놓았습니다.
르노코리아로 사명을 바꾼 이후 '오로라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신차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음을 대대적으로 홍보해왔는데 그 첫 번째 모델인 '오로라 1'이 그랑 콜레오스라는 이름으로 공개되었습니다. 르노삼성이 제작한 QM5와 QM6가 콜레오스라는 이름으로 수출된 것을 감안하면 QM6 계보를 잇는 차량임을 짐작할 수 있죠. 실제로도 회사와 소비자 모두 QM6의 후속모델 포지션으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르노와 닛산이 공동으로 개발한 CMF-C 계열 플랫폼을 기반으로 했던 전작들과는 달리 그랑 콜레오스는 중국의 저장지리홀딩스가 개발한 CMA 플랫폼을 기반으로 두고 있습니다.
아마 중국 자동차에는 관심이 없더라도 자동차 산업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저장지리라는 이름을 잘 아실 겁니다. 저장지리의 자회사인 지리자동차는 그리 큰 존재감이 없었지만 볼보 승용차 부문의 지분 100% 인수를 시작으로 로터스, 메르세데스 벤츠, 애스턴 마틴 등 유명 자동차 브랜드의 지분을 차례차례 인수하면서 세계 자동차 시장의 큰손으로 성장한 그룹이죠.
르노 그룹 또한 저장지리와의 합작 지주회사로 파워트레인 제조사인 '호스 파워트레인'을 설립하면서 저장지리와의 관계를 이어오고 있었는데 르노 그룹이 CMA 플랫폼을 비롯하여 그랑 콜레오스를 개발하기 위한 기술 사용료로 르노코리아 지분의 34%를 저장지리에게 지급하는 결정을 하면서 저장지리가 르노코리아의 2대 주주로 오르게 되었습니다. 다만 르노코리아의 경영권은 여전히 르노 그룹이 가지고 있습니다.
플랫폼과 파워트레인만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에서 조달하고 대부분의 개발 과정을 르노삼성에서 직접 설계한 QM6와는 달리 그랑 콜레오스는 지리의 '싱유에 L'이라는 모델을 베이스로 삼고 있습니다. 전반적인 외관 디자인과 인테리어에서 원본 모델인 싱유에 L의 분위기가 강하게 남아있고 파워트레인 또한 앞서 언급한 호스 파워트레인에서 개발한 2.0T 가솔린 엔진과 1.5T HEV 파워트레인을 사용하고 있죠.
이 때문에 그랑 콜레오스의 골자가 공개되자 중국차 택갈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는데 좀 더 세부적인 카테고리로 보면 말 그대로 상표만 바꾸는 배지 엔지니어링은 아니고 외형을 비롯한 몇몇 요소를 독자적으로 수정한 스킨 체인지 정도의 포지션입니다. 과거 90년대 국산차들이 일본 제조사로부터 기술 제휴를 받으면서 고유 모델을 만들던 방식이죠.
사실상 중국 자동차가 한국 완성차 제조사를 통해 진출하는 최초의 사례라고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전략적 제휴가 이루어진 이유는 세계적으로 관세 장벽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중국 자동차가 한국 제조사를 통해 한국 및 해외 시장에 우회 수출하기 위한 포석일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합니다.
그랑 콜레오스는 최상위 트림에 '에스프리 알핀'이라는 이름이 붙습니다. 범퍼와 라디에이터 그릴 등 몇몇 부분에 파란색 포인트를 준 것으로 구분할 수 있죠. 르노는 R.S.(르노 스포트)라는 고성능 디비전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르노 스포트가 르노 산하의 스포츠카 제조사인 알핀에 흡수 통합되면서 사라졌기에 고성능 지향 트림에 알핀이라는 이름이 붙는 것이 아주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은 아닙니다.
헌데 담당 큐레이터에게 에스프리 알핀 트림의 특징을 물어보니 외관과 실내에 에스프리 알핀 전용 디테일이 추가될 뿐 파워트레인, 서스펜션, 브레이크 등 주행에 영향을 주는 변경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고 하는군요. 즉, 타사의 '뭐시기 Line' 처럼 자사 고성능 브랜드의 이미지만 빌린 디자인 패키지입니다.
프랑스어 'esprit'이 '영혼'이라는 걸 감안하면 거의 '알핀 향' 정도의 뉘앙스인데 이왕 알핀을 강조할 거면 알핀 A110 정도는 참고 출품으로 함께 전시하는 게 좀 더 설득력이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실내 또한 싱유에 L과 대부분의 틀을 공유합니다. 싱유에 L과 마찬가지로 3개의 디스플레이로 계기판,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조수석 모니터를 굴리는 구성인데 조수석 모니터는 볼 때마다 존재의 이유를 이해하기 힘든 장비입니다. 장거리 여행 때 조수석 승객이 영화같은 걸 보라고 만들어놓은 물건인데 아무리 운전자와 떨어져 있다고 해도 운전자의 시선을 뺏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세닉은 한국에서는 처음 소개되는 모델이지만 본토인 유럽 시장에서는 1996년부터 출시된 MPV입니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MPV 시장이 약세였기에 그동안 한국 땅을 밟을 일이 없었지만 5세대 모델이 MPV에서 SUV로 포맷을 변경하면서 한국에도 출시가 결정되었습니다.
이전 세대까지의 세닉이 ICE 모델이었던 것과 달리 5세대 세닉은 모든 트림이 BEV로만 구성됩니다. 즉, 세닉이라는 이름만 유지한 채 전기 SUV로 바뀐 것이죠. 앞서 언급한 그랑 콜레오스가 대부분의 기반 기술을 저장지리로부터 받아온 것과 달리 세닉은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의 CMF 플랫폼을 BEV 전용으로 개수한 플랫폼을 베이스로 두며 LG엔솔의 NCM 배터리를 사용합니다. 이 모델은 이전의 QM3가 그랬듯이 르노코리아 부산공장에서 제작하지 않고 내년부터 전량 수입해서 판매할 예정이라고 하는군요.
국영기업 시절 르노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베스트셀러 소형 해치백인 르노 5 또한 한국시장 출시를 검토하고 있는데 이를 반영해서인지 르노 5의 실루엣만 담은 1:1 스케일 모형이 전시되었습니다. 이 르노 5를 기반으로 알핀 A290이 제작될 것으로 알려졌죠.
르노 5 또한 앞서 언급한 세닉과 마찬가지로 풀 체인지를 거치면서 BEV 모델만 출시됩니다. 다른 자동차 브랜드들과 마찬가지로 주력 라인업의 전동화를 서두르고 있는데... 르노가 한국 시장에 내놓았던 클리오가 유럽에서의 기세와는 달리 한국에서 대차게 망했던 것을 고려하면 르노 5도 해치백의 무덤인 한국에서 성공할 수 있을 지는 의문입니다.
▶ 어울림모터스
이번 모터쇼에서 신차를 내놓는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만 해도 수많은 차덕후들의 기대와 관심을 모았으나 정작 뚜껑을 열고 보니 그 기대를 의문으로 바꾼 브랜드입니다. 앞선 르노코리아와 마찬가지의 이유로 이에 대해서는 굳이 썰을 풀지 않겠습니다.
지난 2010년, 한국 최초의 수제 미드십 스포츠카로 차덕후들의 관심을 받았던 스피라가 출시되었습니다. 비록 소규모 브랜드의 수제작 자동차였기에 종합적인 완성도는 대기업 제품에 비할 바가 아니었지만 한국에서도 이런 시도를 했다는 것 자체에 많은 이들이 박수를 보냈죠.
물론 그와는 별개로 시장은 냉정했고 자금 조달을 비롯한 회사의 전후 사정이 상당히 열악했기에 결국 스피라는 상업적으로 실패한 차 중 하나로 남게 되었습니다. 이후 이 차를 개발한 기술진과 임원진 대부분은 어울림모터스 퇴사 후 리무진 특장차량 제조사인 KC모터스를 설립하였습니다. 시장에서는 사명보다도 '노블클라쎄'라는 브랜드명으로 알려져 있죠.
이윽고 시간이 흘러 2023년, 어울림모터스의 대표가 스피라의 2세대 모델을 출시할 것임을 선언하고 2024 부산모빌리티쇼에서 그 2세대 모델을 스피라 크레지티 24(이하 'SC24')라는 이름으로 공개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이전 세대의 스피라와 마찬가지로 미드십 구조의 쿠페입니다. 시제 1호차가 전시되었다고 하는데 풀 카본 바디를 채용했음을 공언했지만 모터쇼 출품 시기까지 카본 카울을 완성하지 못한 탓인지 전시된 차량은 카본패턴 랩핑 필름을 씌워 전시했습니다. 차대를 구성하는 기본 구조는 스피라와 동일하게 튜브 파이프를 용접하여 구성한 스페이스 프레임 구조입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현대차그룹의 엔진과 변속기를 도입하여 적용하였는데 공개된 정보로는 세타2 2.0T G4KH형과 세타3 2.5T G4KP형이 탑재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각각 아반떼 N, 쏘나타 N라인 2.5T에 올라가는 엔진이죠. 어차피 흡배기 튜닝 및 ECU 맵핑을 통해 출력을 끌어올릴 거라 크게 의미는 없긴 하지만 어째서 세타3 중 가장 고출력인 G4KR형이 아닌 G4KP형을 베이스로 삼는지는 의문이긴 합니다.
그런데 스톡 상태로 290마력인 엔진으로 508마력을 만들겠다고 하는데... 뭐 양산차로서의 내구성을 포기하고 하드코어 튜닝을 거친다면 어찌저찌 가능은 하겠지만 이 출력을 받아줄 변속기가 없을텐데 어떻게 구현하겠다는 것인지 의문이군요. 이를 시작으로 미심쩍은 구석이 한둘이 아닙니다만 여기에 다 적자니 체력이 딸려서 생략하겠습니다.
사실 SC24가 논란에 휩싸인 가장 큰 이유는 이 차를 판매하는 방식, 그리고 이 차의 방향성을 설명하는 제조사의 자세 때문입니다. 아무리 소규모 제조사라고 해도 자동차를 만들고 파는 회사의 공식 발언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구석이 한둘이 아니었죠. 이 포스트에서는 자세히 적기 껄끄럽지만 이 때문에 전설의 차가 돌아온다고 기대했다가 신차 발표 프레젠테이션을 보자마자 학을 떼고 돌아선 사람이 많았습니다.
위의 사진은 SC24의 전 세대이자 한국 최초의 미드십 스포츠카인 스피라입니다. 이 차가 남긴 도전정신 넘치는 발자취 덕분에 2세대 스피라를 기대하는 사람이 많았죠.
헌데... 현재까지 밝혀진 정황을 보면 SC24는 1세대 스피라를 해체 후 프레임을 재활용해서 제작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단지 테스트카만 이렇게 제작할 지, 고객에게 인도될 양산차량까지 이렇게 만들 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의심까지 가지게 만들 정도로 제조사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다는 점이 SC24의 가장 큰 약점이 되겠습니다.
SC24가 이런 비관적인 시선을 이겨내고 제대로 한 방 먹일지, 아니면 (안 좋은 의미로)전설의 신차발표회만을 남겨두고 출시조차 되지 못한 어울림모터스의 리무진 세단인 뱅가리의 재림이 될 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 BMW
직전 행사인 2022년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해외 완성차 제조사는 BMW 그룹 산하의 BMW와 미니만 참가했습니다. 부산 모빌리티쇼 조직위원회는 하루에 세 번 뮌헨에 위치한 BMW 본사를 향해 절을 하시기 바랍니다.
매년 한국 모터쇼를 잊지 않고 찾아주는 BMW이지만 BMW 부스에서 컨셉트카를 출품하는 것은 꽤나 오래간만의 일이군요. 이번 모터쇼에서는 비전 노이에 클라쎄가 BMW 부스의 메인 턴테이블을 차지했습니다.
비전 노이에 클라쎄는 BMW가 추진하는 전동화 시대의 비전을 제시하는 모델로 소개하고 있는데 신규 플랫폼인 NK1 플랫폼에 대한 청사진을 보여주는 모델이라고 보시면 무방합니다. 이 NK가 노이에 클라쎄의 줄임말이죠. 이전까지는 CLAR 플랫폼으로 ICE, BEV, HEV를 모두 커버했다면 NK1 플랫폼은 BEV 전용 플랫폼이 될 예정입니다. 타사와 마찬가지로 전기차 전용 스케이트 보드를 만든 것이죠.
Neue Klasse, 영어로 번역하면 New Class가 되는 이 이름은 BMW가 예전에 사용했던 적이 있습니다. 노이에 클라쎄는 1962년에 출시한 준대형 세단 라인업으로 2차 세계대전 이후 파산 위기에 빠진 BMW를 구원한 모델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의 5/6/8 시리즈의 모태가 되는 모델이기도 하죠.
BMW의 역사에 있어 큰 족적을 남긴 노이에 클라쎄라는 이름을 다시 사용한다는 것은 그만큼 BMW가 NK1 플랫폼이 BMW의 미래를 책임질 중요한 역할을 해낼 것이라는 기대를 담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NK1 플랫폼을 적용하는 최초의 양산차는 내년에 첫 선을 보일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나저나 세단도 패스트백에 가까운 모습으로 루프라인을 다듬는 것이 최근의 트렌드인데 오래간만에 보는 정직한 3박스 노치드 세단의 실루엣이군요. BMW를 대표하는 시그니처 디자인 중 하나인 C 필러의 호프마이스터 킹크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BMW의 키드니 그릴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콧구멍이 헤드램프를 잡아먹었군요. 언젠가 짤방으로만 보던 전면부 전체를 뒤덮은 콧구멍을 보게 될 날이 올 지도 모르겠습니다.
음... BEV 전용 플랫폼 특유의 낮고 평평한 플로어는 당연한 것이겠지만 아무리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컨셉트카라고는 하지만 실내는 너무 재미없군요. 개인적으로 허허벌판에 태블릿 하나 떡 갖다놓고 최신 인테리어랍시고 주장하는 최근의 트렌드를 굉장히 싫어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트렌드를 만든 테슬라 또한 싫어합니다.
뉴트리아 이빨을 닮은 키드니 그릴로 뉴트리아 쇼크를 선사했던 M4의 페이스리프트 모델이 이번 모터쇼를 통해 한국에 첫 선을 보였습니다. BMW에서는 페이스리프트를 'LCI'라는 명칭으로 칭하고 있죠.
LCI라고는 파워트레인의 일부 개선이 이루어졌을 뿐 외관 상의 변화는 등화류에만 국한되어 있습니다. 다만 헤드램프가 자동차의 눈으로 비견되는 만큼 헤드램프의 내부 그래픽 변화만으로도 뭔가가 바뀌었음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죠.
M4의 LCI 버전에서 가장 크게 변화한 부분은 리어 콤비네이션 램프입니다. 리어 콤비네이션 램프를 구성하는 등화류 중 후미등에 레이저 라이트 기술이 적용되었는데 이를 통해 면발광 LED로 후미등을 구성하던 기존 모델보다 한층 더 날카로운 인상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X2의 BEV 사양인 iX2도 이번 모터쇼를 통해 한국 시장에 정식으로 출시되었습니다. 어... 네. X2의 전기차 버전입니다. 이 차는 딱히 덧붙일 말이 없군요.
M 디비전 최초의 전용 모델인 XM은 한정판 모델인 XM 레이블 레드로 전시되었습니다. 레이블 레드라고 해서 새빨간 포인트를 사용할 줄 알았는데 실물로 보니 버밀리온에 가까운 색이었습니다.
한정판 모델은 몇 번째로 출고된 모델인지를 알리는 시리얼 넘버를 새겨놓는 경우가 많은데 XM 레이블 레드의 경우 센터페시아에 시리얼 넘버를 남깁니다. 헌데 시리얼 넘버 1번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보고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 귀한 차를 오너가 아닌 불특정 다수의 손이 타는 전시차로 굴린다고?
담당 큐레이터에게 이를 문의해보니 확인해보겠다며 다른 스텝을 통해 전산망을 찾아본 후 이 차는 실제로 몇 번째로 생산된 모델인지는 알려줄 수 없지만 1호차는 아니라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단지 전시를 위해 1번이 새겨진 파츠로 교체했을 뿐이죠. 큐레이터가 바로 답변하지 않고 꽤 오랜 시간의 전산 조회를 거쳐 답변한 것을 보면 이런 의문을 가진 사람은 저 뿐이었던 듯 합니다.
이 차만큼은 후드를 열지 못하도록 제재한 것을 보면 실제 레이블 레드는 500대 모두 오너에게 팔리고 지금 보고 있는 이 차는 외형과 실내만 레이블 레드로 꾸민 전시 전용 모델일 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륜차 사업부인 BMW 모토라드에서는 M 1000 XR을 비롯한 3종의 신차를 출품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저는 이륜차에 대해서는 백지이기에 코멘트는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 미니
모기업인 BMW를 따라 부산 모터쇼 개근을 자랑하는 미니는 모든 전시차가 풀 체인지된 신차로 등장했습니다. 부산 모빌리티쇼 조직위원회는 하루에 세 번 뮌헨을 향해 절 올리는 김에 옥스퍼드에도 한 번씩 절을 올리시길 바랍니다.
미니가 BMW 그룹 산하로 편입된 이후로 4세대를 맞이했습니다. 특이하게도 4세대 미니는 미니 일렉트릭부터 먼저 시장에 투입되고 ICE 버전이 뒤이어 출시되었습니다.
3세대부터 처음 선을 보였던 미니 일렉트릭은 당초에 전동화를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던 모델인 만큼 배터리를 좁디 좁은 센터 터널에 구겨넣어 겨우 수납했습니다. 이 때문에 미니 일렉트릭의 복합 주행거리는 고작 159km였습니다. 1세대 BEV에 비견되는 수준이죠. 반면 4세대 모델의 경우 중국 장성자동차와 합작으로 개발한 BEV 전용 플랫폼을 사용하면서 배터리를 바닥에 깔 수 있게 되었고 이를 통해 복합 주행거리가 300km까지 늘어났습니다. 길다고는 할 수 없지만 직전 모델과 비교하면 장족의 발전을 이룬 셈이죠.
다만 4세대 미니의 디자인에 대한 평가는 그리 좋지 않은데 여러 모로 지나친 미니멀리즘이 독으로 작용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4세대 미니의 ICE 버전은 먼저 소개된 미니 일렉트릭과 거의 유사한 외형을 지닙니다. 다만 BMW 미니의 특징 중 하나인 클램셸 후드를 유지하고 도어 핸들을 도어 캐치 타입으로 유지하는 등 조금 더 헤리티지에 신경쓴 모습이죠. 다만 비슷한 외형과는 달리 플랫폼을 갈아엎은 미니 일렉트릭과 달리 3세대에 적용되었던 UKL 플랫폼을 그대로 유지합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풀 체인지가 아닌 페이스리프트인 셈이죠.
썩 좋은 이야기를 듣지 못하는 외관과는 달리 실내는 비교적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클래식 미니의 심플하기 짝이 없는 인테리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면서 외관과는 달리 미니멀리즘을 효과적으로 적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다만 계기판을 보조할 HUD를 달았다고는 하나 저 인포테인먼트 디스플레이가 실제 주행에서 시인성을 얼마나 확보할 지는 미지수군요.
4세대 미니와 함께 등장한 3세대 미니 컨트리맨 또한 등장하자마자 디자인에 대한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각진 헤드램프와 훌쩍 커진 차체 탓에 이게 어딜 봐서 미니의 일원이냐는 평을 받았죠. 전동화를 염두에 두고 UKL 플랫폼을 개량한 FAAR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는 만큼 BEV 모델의 출시가 기정 사실화되었고 예상대로 BEV 모델이 먼저 출사표를 던지고 나왔습니다.
측면 실루엣을 보면 미니라는 브랜드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군요. 체급이 준중형급으로 훌쩍 뛰었는데 전 세대의 컨트리맨이 담당하던 소형 SUV 라인업은 올해에 첫 선을 보이는 미니의 신차인 미니 에이스맨이 대체하게 됩니다. 그러고보니 이번 모터쇼에서 왜 에이스맨을 출품하지 않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국내 출시일정이 확정되지 않아서 그랬나...
그래도 ICE 버전과 BEV 버전의 디자인 차이를 조금이나마 두었던 해치백과는 달리 컨트리맨은 외형 상으로는 ICE와 BEV의 차이를 찾는 것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컨트리맨이 3세대로 풀 체인지 되면서 미니 컨트리맨 JCW 또한 3세대 버전으로 등장했습니다. JCW의 엠블럼이 체커 플래그의 디자인을 차용한 신규 엠블럼으로 변경되면서 컨트리맨 JCW 또한 체커 플래그를 모티브로 한 디자인 요소를 곳곳에 새겨 넣었습니다.
#2. 전기차 캐즘 시대의 돌파구를 찾아라
이 사진을 보고 있자니 드는 생각은... 이번에도 모터쇼가 열리는 건물의 마당에 수제맥주 축제를 열고 있는 모습을 보면 부산국제모터쇼에서 부산모빌리티쇼로 이름이 바뀌고 나서도 이 행사의 체질은 바뀌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저 돈이 되기 위해 여는 행사일 뿐, 비전을 가지고 여는 행사는 아니라는 걸 스스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캐즘(chasm)'이라는 단어는 본래 지층 사이의 단절을 뜻하는 지질학 용어입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신기술이 시장에 제대로 정착하지 못해 소비자와의 단절이 생겨 수요가 정체되는 현상을 뜻하는 경영학 용어로 더욱 널리 사용되고 있죠.
제가 이 캐즘이라는 단어를 알게 된 계기는 최근의 전기자동차 시장 때문입니다. 최근의 전기자동차 관련 언론 보도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인데 얼리어답터 성향의 소비자들이 BEV를 줄줄이 구입하면서 언제까지나 호황일 것만 같았던 전기자동차 시장이 정작 전기자동차가 어느정도 보급된 현 시점에서 전 세계적으로 주춤거리고 있는 현 상황을 '전기차 캐즘'으로 일컫습니다. 즉, 얼리어답터가 아닌 일반 소비자들은 전기자동차를 구입하는 데에 여전히 주저하고 있다는 것이죠.
저와 같이 내연기관의 매캐한 감성을 좋아하는 페트롤헤드가 아닌 일반 소비자의 입장에서 전기자동차를 꺼리는 이유는 각종 보조금을 얹어도 ICE 대비 확연히 비싼 가격, 그리고 충전의 불편함 때문이라고 봅니다. 이 때문에 각 제조사에서는 이전까지의 메인스트림 모델 또는 플래그십 모델 위주의 BEV 라인업이 아닌 아닌 저렴한 가격으로 접근할 수 있는 엔트리급 BEV 신차를 연이어 내놓고 있습니다. 가격을 무기로 BEV 시장을 활성화하고 이를 통해 시장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의미죠.
이번 모터쇼를 통해 공개된 캐스퍼 일렉트릭, EV3 등의 신차를 통해 이러한 흐름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만 현대차그룹을 비롯한 제조사들이 전기차 캐즘을 돌파할 대안으로 EREV를 선보이고 있는데 이번 모터쇼에서 여기에 대한 흐름을 볼 수 없었던 점은 아쉬운 부분입니다.
모터쇼 개최 시점인 6월까지만 해도 전기차 캐즘이 전기차 시장의 가장 큰 숙제였는데 현 시점에서는 '전기차 포비아'라는 새로운 숙제가 생겼습니다. 그저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주차되었을 뿐인 벤츠 EQE가 스스로 폭발하면서 막대한 재산 피해를 안긴 사고 때문이죠. 이 사고를 계기로 지하 주차장에 주차된 전기차는 공포의 대상으로 각인되어 전국 곳곳에서 마찰을 일으키는 사회적 이슈가 되었습니다.
자동차 제조사들이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나갈 지, 다음 모터쇼 시즌이 되기 전에 전기자동차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지는 아무래도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듯 합니다. 그리고 저와 같은 내연기관 예찬론자들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는 기술이 나올 지도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