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체험단 등 지난 10여 년 간 제가 찍어온 수많은 소품촬영들은 모두 2005년식 미놀타 A200이 담당했습니다.
별다른 고장 없이 노익장을 과시하는 다른 카메라들과는 달리 A200은 CCD 센서에 오일이 튀고 스위블 LCD의 FPCB 케이블이 끊어지거나 AF 유닛이 먹통이 되어 통째로 교체하는 등 크고 작은 고장이 있었고 지금은 백업 배터리 부품이 단종되어 카메라 배터리 교체와 함께 저장된 세팅이 모두 날아가는 기억상실증 환자가 되었지만, 지금도 접사촬영 세팅에서의 사진만큼은 기똥차게 뽑아주는 고마운 녀석입니다.
촬영 세팅은 거의 항상 이렇습니다. 반사판을 활용하는 등 조명의 각도에 대한 연구를 해볼까 하면서도 결국은 귀차니즘으로 이 세팅을 8년째 우려먹고 있습니다.
발전이 없는 녀석 같으니라고...
이 사진에서 가장 오른쪽에 보이는 A200은 제가 가진 미놀타 3인방 중 출시연월로는 가장 막내이지만 정작 셋 중 가장 먼저 구입한 카메라입니다. 그리고 셋 중 유일하게 중고가 아닌 신품 구매죠. 가장 나중에 구입한 신참인 소니 A7III를 제외하면 네 녀석 모두 오랜 시간에 엮인 사연을 가지고 있는 카메라들입니다. 그래서 이런 골동품 전시회가 가능한 것이죠.
그리고 얼마 전...이라고 해도 벌써 두 달이나 지났군요. 심각한 공급부족으로 공식 스토어에서 정가에 구입하는 것이 가장 저렴한 상태의 괴이한 렌즈인 SEL24105G(이하 24-105G)를 정가에 구입했습니다. 약 4개월 간 소니스토어 홈페이지에 즐겨찾기 걸어두고 수시로 잠복한 결과물이죠. 이 렌즈가 도대체 뭐라고...
이 24-105G를 구입하려고 용을 쓴 이유는 이 렌즈 하나로 어지간한 촬영은 다 해먹을 수 있는 올라운더 표준줌, 거기에 동급 최고의 화질이면서도 동급 최저 중량이라는 위엄 넘치는 스펙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올라운더의 조건 중에는 강력한 접사 성능이 포함됩니다. 접사배율 0.31배이니 접사에 특화된 매크로 렌즈를 제외하면 최상급이죠.
이제 저 위에 올려둔 접사 세팅에 삼각대만 교체하고 그대로 A7III를 물려보기로 합니다.
접사 테스트로 책상 위에 굴러다니는 평범한 버스 모형을 찍어봤습니다. 한국 시내버스 시장의 양대산맥 중 하나인 현대 에어로시티와 먼 친척 관계인 미쯔비시 후소 에어로스타의 초저상(논스텝) 사양입니다. 버스에 둘러진 데칼 테마는 틈새시장 공략으로 반다이 독점의 캐릭터 프라모델 시장에서 파란을 일으킨 코토부키야의 역작, 프레임암즈 걸입니다.
저런 데칼 인쇄를 한 모형이 나온다는 건 일본 현지에서 저런 버스가 굴러다닌다는 의미입니다. 한국에서는 버스 자체가 캐릭터화된 타요 버스 말고는 캐릭터 시내버스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데 말이죠.
조리개가 F16인데도 심도가 확보되지 않아 버스 전체에 초점이 맞지 않는다는 데에서 짐작하신 분도 계시겠지만 이 버스의 크기는 상상 이상으로 작습니다. 실제 버스의 사이즈를 1/150로 축소한 Z 게이지 모델로 100원짜리 동전과 비교하면 말도 안 되게 작은 사이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덧붙여 저 크기에 저 디테일, 거기에 한정판이라 그런지 가격 또한 크기에 비해 상당히 비쌉니다. 저는 한국 돈으로 17000원 정도에 구입했습니다.
위의 에어로스타와 동일한 Z 게이지 규격의 레인저 2세대/4세대 펌프소방차 모형입니다. 이 중 4세대 레인저는 한국에서 2세대 라이노의 원본 모델이 되기도 했죠. 대형트럭이 주류인 한국 소방차와는 달리 일본 소방차는 듀트로나 레인저같은 소형~중형트럭을 베이스로 삼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최근에는 한국에도 구조공작차나 펌프차같은 사양은 메가트럭 베이스의 중형 소방차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물론 24-105G의 접사 성능은 매우 훌륭한 수준입니다만 기존에 사용하던 A200보다는 떨어지는 수준이라 살짝 실망한 것도 사실입니다. 위의 덤프트럭 사진 두 장은 마찬가지로 Z 게이지인 레인저 덤프트럭들입니다. 풀프레임 바디에서 이 정도 접사를 기대하려면 역시 매크로 렌즈가 정답이겠죠.
24-105G를 구입하고 나서 A200은 이제 쉬게 해주려고 했는데 Z 게이지 모형을 촬영할 일이 생기면 아마 다시 호출될 것 같습니다.
그림은 전혀 그리지 못하면서도 여러 권의 만화 작법서를 구입했습니다. 그 이유는 액션 피규어들의 포즈를 참고하기 위해서죠. 여기서부터는 제 블로그의 공무원 중 하나인 리볼텍 시리즈 아리스 씨와 함께 포즈 연습 겸 24-105G를 굴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색감이 들쭉날쭉한 것은 A7III의 화이트밸런스 검출 성능을 시험 해보겠답시고 화이트밸런스를 백색 우선 자동으로 두었다가 발생한 사태입니다. 다시는 인공광 조건에서 자동 화이트밸런스로 깝치지 않겠습니다...
조리개를 F5.6까지 개방하니 부담스러울 정도로 심도가 얕아지는군요. 그동안 컴팩트 카메라와 크롭센서 카메라만 사용하다가 풀프레임의 심도를 새삼스럽게 체감하고 있습니다. AF 포인트를 놓쳐 초점이 얼굴이 아닌 가슴에 맞은 건 덤입니다.
만화 작법서 중 총기류 액션을 전문으로 다루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는 실전 전투에서의 총기 사용 뿐만 아니라 실용성은 버리고 간지만 챙기는 액션 예시도 다수 등장하는데 권총 액션은 이 실전성 제로의 액션을 다수 참고했습니다. 어차피 총검 달린 쌍권총이라는 것부터 실전성은 개나 줘버렸죠.
사실 이 포즈에서의 사진은 A컷이 따로 있습니다. 문제는 옷과 상체가 따로 움직이는 피규어 특성상 가슴이 드러나서 전체이용가 사진으로는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죠. 결국 포즈와 구도를 약간 수정해서 유두 노출을 막긴 했는데 애석하게도 A컷에서의 역동적인 느낌은 상당히 줄어들었습니다.
...하도 개그컷만 찍어서 새삼스러운 사실이지만 아리스 이 친구, 이래뵈도 원피스는 물론 속옷까지 탈의가 가능한 성인용 피규어입니다.
제 블로그의 사진만 보자면 아리스 씨와 해골 씨는 둘도 없는 베프인 것 같지만 원작대로라면 이런 모습일 겁니다. 아리스의 직업이 고대문명 유적을 뒤져 보물을 캐내는 모험가이니 유적 속에서 튀어나오는 살아있는 해골 몇 구의 기습공격을 받아도 이상할 것이 없겠죠.
...사실 이 해골은 살아있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생기가 철철 넘쳐서 문제지만요.
가챠는 파산 등 각종 멘탈붕괴의 원인이 됩니다. 그래도 돌리시겠습니까?
...사실 우리 집 아리스 씨와 해골 씨는 위와 같은 진지한 연출보다는 이런 연출이 더 어울립니다.
24-105G를 두 달 정도 사용해본 소감은 정가로 구입했을 때 한정이긴 하지만 가격이 절대 아깝지 않은 렌즈입니다. 접사 성능도 이 정도면 합격, 앞으로 자주 애용하게 될 것 같습니다. 이상, 접사 테스트를 빙자한 인형놀이는 여기까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