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는 애들이나 보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수십 년째 뿌리박혀 애니메이션의 불모지라는 딱지가 떨어지지 않는 한국에서 겨울왕국의 기록적인 흥행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이 페이지를 보시는 분들이라면 모두 알고 계실 <Let It Go>가 있습니다.
겨울왕국은 보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Let It Go를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 정도로 이 곡에 대한 호응도는 폭발적입니다. 한국에서 애니메이션 삽입곡이 이 정도로 주목을 받았던 적이 있었나 싶군요. 국내 주요 음원사이트의 랭킹을 휩쓸고 있는 것도 모자라 본진인 미국에서는 Let It Go가 수록된 겨울왕국 OST 앨범이 애니메이션 OST 사상 네 번째로 빌보드 앨범차트 1위를 찍는 등 전세계에 걸쳐 '돌풍'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성과를 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겨울왕국도 각종 기록을 갈아치우며 디즈니 역사의 한 페이지를 새로 쓰고 있지요.
렛잇고를 보기 위해 겨울왕국을 보러 간다는 이야기가 온라인 오프라인을 통틀어 줄을 잇는 가운데 겨울왕국을 본 사람들에게는 렛잇고 외의 다른 수록곡들도 화제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특히 <Do You Want to Build a Snowman?>은 각종 패러디가 이어지면서 또다른 인기를 끌고 있지요.
겨울왕국을 본 많은 사람들이 겨울왕국을 '뮤지컬 영화'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극중의 등장인물이 노래로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때문에 한 편의 뮤지컬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저는 뮤지컬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뮤지컬 전공하는 지인이 그렇다고 하니 그렇다고 해둡시다.
겨울왕국이 지금과 같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로 뮤지컬 넘버들의 높은 완성도가 큰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렛잇고도 그 중 하나이지요. 이를 반증이라도 하듯 겨울왕국 OST의 판매 실적도 호조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도 별 생각없이 음반가게에 들렀다가 CD 한 장을 집어왔습니다. 바로 아래에서 보실 겨울왕국 OST, 그 중에서도 디럭스 에디션입니다.
리뷰에 앞서 공지 하나.
스포일러 주의!
아이템 특성상 겨울왕국을 이미 본 사람들을 소비자로 겨냥하여 구성된 탓에 리뷰도 이에 맞게 진행됩니다. 초반에는 스포일러를 최대한 배제하고 리뷰를 작성해보려고 했는데 책이 다루고 있는 내용도 내용인데다 제 리뷰 스타일을 봐서는 스포일러 없이는 도저히 진행이 안 될 것 같아서 결국 스포일러 잔뜩 섞인 리뷰를 진행합니다. 그런고로 아직 겨울왕국을 안 보신 분은 이 페이지 말고 영화관 예매 페이지를 검토하시길 바랍니다.
이번 리뷰는 아래의 아이템과 함께 진행되었습니다. 동일한 작품을 다루기 때문에 함께 보시면 리뷰에서 다루는 설정의 이해에 도움이 됩니다.
[리뷰/도서] The Art of Frozen / 겨울왕국 컨셉 아트북
▶ Frozen Soundtrack [2-Disc Deluxe Edition]
겨울왕국, 원제 프로즌(Frozen)의 OST는 1디스크 구성인 일반판과 2디스크 구성인 디럭스판의 두 가지 버전으로 기획되었습니다. 이번에 리뷰하는 물품은 사진에서 보시다시피 디럭스판입니다.
앨범아트는 겨울왕국의 공식 포스터 이미지 중 하나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일반판의 경우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고 커다란 눈 결정 하나로만 장식되어 있는데 소비자들에게는 어째 일반판의 앨범아트가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거기에 종이 케이스+플라스틱 바인더 구성인 디럭스판과는 달리 일반판에는 정규 플라스틱 케이스가 적용되어 있어 적어도 시각적인 만족도만 보자면 일반판보다 더 떨어지는 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뒷면에는 CD 두 장에 걸친 수록곡들의 제목이 빽빽하게 적혀있습니다. 디스크 1은 일반판과 공유하고 디럭스판에는 여기에 디스크 2가 추가되어 있습니다. 디스크 1은 영화 삽입곡, 디스크 2는 영화에 삽입되지 않은 데모곡들과 스토리의 변경으로 삽입되지 않은 곡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덧붙여 디스크 2에는 Let It Go의 카라오케* 버전도 수록되어 있는데 멜론, 벅스 등의 음원 사이트에서 판매하는 다운로드 버전의 경우 여기에 4곡의 카라오케 버전이 더 추가되어 있습니다. 이게 무슨 짓거리야...
재킷 후면에 영어가 빽빽하게 적혀있어서 수입 음반으로 오해할 수 있지만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라면 한국 라이센스반임을 눈치챌 수 있습니다. 880으로 시작하는 바코드와 오른쪽 하단에 깨알같은 글자로 적힌 제작일자 한글표기가 그 증거죠.
[* 카라오케(karaoke; カラオケ) : 노래방을 의미하는 일본어로 '가짜 오케스트라(空orchestra)'의 줄임말입니다. 쓰나미(tsunami; 지진해일), 스시(sushi; 초밥) 등과 더불어 영미권에서도 그대로 사용하는 일본어 단어죠. 카라오케 버전은 보컬 없이 반주만 녹음된 음원을 의미하며 한국에서는 MR(Music Recorded)이라는 표현이 더 자주 사용됩니다.]
케이스를 열면 디스크 1과 함께 얼음궁전이 건설된 북쪽 산을 오르는 안나가 그려진 일러스트가 보입니다.
여기에서 한 장을 더 젖히면 디스크 2와 함께 얼음마법을 시전하는 엘사 여왕님과 얼어붙은 아렌델이 그려진 일러스트를 볼 수 있습니다. 덧붙여 일반판 CD케이스의 뒷면 앨범아트이기도 하죠. 위의 사진과 이 사진에서 보이는 두 장의 일러스트를 각각 엘사-안나 순으로 배열하면 한 장의 일러스트처럼 구도가 이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어진 그림은 인터넷 검색하면 쉽게 찾아볼 수 있으니 궁금하신 분들은 검색해보시길 바랍니다.
원기옥 쓰시는 여왕님 밑에는 부클릿이 슬리브 형태로 수납되어 있습니다. 부클릿 표지에는 엘사, 안나, 크리스토프, 그리고 올라프가 그려져 있는데 한스는 빠졌습니다. 사실 CD를 처음 구입했을 때만 해도 스포일러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고 리뷰를 만들어보려고 했는데 부클릿을 보고 그 생각을 접었습니다. 한스를 대놓고 빼버릴 줄 누가 알았으리...
부클릿은 위의 사진과 같이 일러스트와 가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중 몇 곡만 함께 보도록 합시다. OST에 수록된 보컬 넘버들은 뮤지컬 영화라 불리는 작품의 수록곡답게 노래를 듣는 것만으로도 극중의 장면을 연상시킬 수 있을 정도로 묘사력이 뛰어난 것이 특징입니다. 여기에는 엘사와 안나를 비롯한 주요 캐릭터들의 성우가 현역 뮤지컬 배우인 것이 크게 작용했죠.
<Do You Want to Build a Snowman?>은 안나의 솔로 넘버이지만 엘사와 안나 두 자매의 이야기를 모두 담고 있는 독특한 구성의 곡입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약 빤 패러디물이 쏟아지면서 컬트적인 의미로도 대 히트를 치고 있기도 하죠. 그리고 <For the First Time in Forever>는 안나의 성우인 크리스틴 벨의 구김없는 연기와 더불어 안나와 엘사의 대비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지요. 두 자매 간의 대비는 <For the First Time in Forever (reprise)>에서 두 성우의 가창력 배틀로 다시 한 번 이어집니다.
겨울왕국에는 많은 수록곡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겨울왕국을 대표하는 곡을 꼽으라면 누구나 <Let It Go>를 떠올릴 것입니다. 작곡가인 로페즈 부부의 인터뷰에 의하면 처음부터 엘사의 성우인 이디나 멘젤의 발성을 고려하여 만들어진 곡으로 곡의 구성과 시나리오의 전개, 그리고 연출과 특수효과에 이르기까지 많은 부분에서 공을 들인 흔적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자타공인으로 겨울왕국의 하이라이트를 담당하는 곡이지만 디즈니로서는 이례적으로 개봉 2주만에 겨울왕국의 명장면이라 할 수 있는 렛잇고 영상을 유튜브에 공개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판단은 대성공을 거두고 수많은 팬들을 끌어모으게 되었죠.
겨울왕국의 미국 첫 개봉은 2013년 11월 27일이지만 한국 개봉은 그보다 훨씬 늦은 2014년 1월 16일입니다. 그 덕분에(?) 인터넷에 공개된 렛잇고 클립은 보고 한국의 수많은 관객들이 개봉 전부터 겨울왕국을 기다리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죠. 한국 개봉이 왜 이렇게 늦었냐고 불평이 나올 수 있지만 그래도 중국이나 일본보다는 사정이 나은 편입니다. 중국은 2월 5일 개봉, 일본은 겨울 다 지나간 3월 14일 개봉입니다.
의외로 많은 분들이 모르는 사실인데 본편에 삽입된 이디나 멘젤 버전과 렛잇고와 엔딩 크레딧에 삽입된 데미 로바토 버전의 렛잇고는 가사와 음색에 차이가 있습니다. 이는 한국어 더빙판에서 뮤지컬 배우 박혜나가 부른 극중 버전과 씨스타의 효린이 부른 엔딩 크레딧 버전도 마찬가지죠.
겨울왕국의 주제를 가장 직설적으로 말하고 있는 곡을 꼽자면 바로 이 곡, <Fixer Upper>입니다. 유쾌한 분위기의 가스펠 풍 악곡으로 연출 덕분에 개그 넘버로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그 뒤에는 이 작품의 주제를 담은 키워드인 진정한 사랑(True Love)이 무엇인지 명쾌하게 해설하고 있습니다.
악곡 소개는 일단 여기까지. 부클릿의 후반부에는 겨울왕국을 이끌어가는 주요 인물들+축생+무언가의 컨셉아트가 그려져 있습니다. 아트북에서도 봤던 이미지들이군요.
부클릿의 가장 뒤에는 디럭스판에 추가된 디스크 2의 컨텐츠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디스크 2에 수록된 곡들은 가사집이 따로 제공되지 않습니다. 'Deluxe Edition'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달면서 추가된 디스크 2는 그야말로 떡밥의 고향이라 할 정도로 많은 이야깃거리가 담겨 있습니다.
영화에 삽입되지 않은 곡들을 다루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Outtake로 표기된 미삽입 보컬곡들이 이 디스크의 핵심입니다. 이 곡들은 스토리의 진행을 좀 더 타이트하게 가져가기 위해 잘렸거나 스토리보드의 변경으로 사용할 수 없게 된 곡들인데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 곡들로 변경되기 전의 스토리보드를 추측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시나리오가 엎어지면서 삭제된 '예언'의 정체, 순탄치만은 않았던 두 자매의 과거, 곡조는 경쾌하지만 역설적으로 더 잔혹해진 두 자매 간의 다툼, 크리스토프의 빈 자리 등 많은 흔적을 찾아볼 수 있으니 겨울왕국의 팬이라면 체크해보는 것을 권합니다. 아울러 엎고 뒤엎고 갈아엎은 겨울왕국 스토리보드의 기나긴 역사는 아트북 리뷰에 잠시 언급했으니 그 쪽을 참고하시면 도움이 됩니다.
여담으로 OST 디럭스판과 더불어 겨울왕국의 공식 트레일러 중 하나에서도 엎어진 스토리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 직접 보시죠.
앞서 언급한 엎어진 스토리의 흔적은 1분 41초의 여왕님을 주목하시면 찾을 수 있습니다.
부클릿의 뒷면의 일러스트가 앞면과 이어집니다. 뒷면은 스벤의 독무대군요.
부클릿 사이에는 이런 종이가 끼어있습니다. 한국에서 라이센스판 해외음반을 구입해본 사람이라면 익숙한 종이죠.
여담으로 리뷰 초반에 언급했던 일반판의 앨범아트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구글링을 해보면 디럭스판의 경우 출시되는 국가 별로 앨범아트에 조금씩 차이가 있었고 일반판과 앨범아트를 공유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한국판도 앨범아트를 통일했다면 적어도 앨범아트 논란은 생기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네요. 아니면 둘 다 사라는 디즈니 코리아의 농간인가...
겨울왕국을 지금의 위치까지 끌어올린 원동력, 그리고 숨겨진 뒷이야기를 담고있는 겨울왕국 OST 디럭스판입니다.
뮤지컬 영화라는 별칭에 걸맞게 겨울왕국에서 노래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습니다. 캐릭터의 소개와 더불어 스토리의 전개, 그리고 주제의 전달에 이르기까지 영화의 주축을 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겨울왕국의 지금과 같은 성공에는 이 수록곡들이 큰 역할을 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긴 말 필요없이 Let It Go 하나면 설명이 끝나죠. 기본적으로는 겨울왕국을 본 사람을 위한 아이템이지만 겨울왕국을 보지 않았더라도 뮤지컬 음반으로서 추천할 수 있을 법한 아이템입니다.
디럭스판의 패키지 구성만을 보자면 솔직히 디럭스라는 이름이 아까울 정도로 차라리 일반판이 더 나은 면모를 보이는 부분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불만을 한 방에 잠재울 수 있는 이유는 역시 디스크 2가 다루는 떡밥 가득한 뒷이야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짤린 곡들 또한 본편에 수록된 곡들 못지않게 멋진 곡들이 많아서 이를 그냥 버리는 것은 디즈니와 팬들, 양자 모두에게 아까운 상황이었을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두 자매의 어린 시절을 다룬 <We Know Better>가 굉장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여담으로 외국산 애니메이션이나 아동용 영화들이 대부분 연예인을 기용하여 더빙하는 것과 달리 겨울왕국의 한국어 더빙판은 모든 배역이 전문 성우와 뮤지컬 배우가 배정되었습니다. 디즈니의 정책 상 모든 배역은 디즈니 본사에서 직접 오디션을 거치며 원판과 가장 비슷한 연기를 선보이는 성우를 캐스팅하는 것으로 유명하죠. 그 결과 아래와 같은 무시무시한 물건이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디즈니가 직접 편집해서 공개한 Let It Go의 25개국어 더빙 버전입니다. 이걸 사촌동생에게 보여줬더니 한 명이 25개국어를 모두 노래했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디즈니의 괴물같은 성우 캐스팅 능력을 체감할 수 있는 영상이죠. 사정이 이렇다보니 발더빙이 나올래야 나올 수가 없습니다.
덕분에 겨울왕국의 한국어 더빙판은 훌륭한 연기가 더해져 악평 일색인 다른 애니메이션 더빙판들과는 달리 유례없는 호평을 누리고 있습니다. 특히 안나 역을 맡은 성우 박지윤의 연기는 원판을 초월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캐릭터에 완벽히 녹아든 연기를 선보였습니다. 저도 원어판과 더빙판 모두를 감상했지만 두 버전 모두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완벽에 가까운 완성도를 보여줬습니다.
이런 호응 덕분이었을까, 디즈니 코리아가 한국어 더빙판 OST의 정식발매를 확정[링크]했습니다. 그러합니다. 지를 물건이 또 생겼습니다. 전국의 엘사안나 덕후들이여, 단결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