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zing terr.2011. 2. 22. 00:02

#0.
예전부터 어느 정도는 계획하고 있었지만 정작 복학을 코앞에 두고서야 실천에 옮긴 일이 있습니다.
이른바 무계획 배낭여행. 문자 그대로 무계획이라 여행 기간-2박 3일-과 일차 목적지-서울-만 정해두고 시간 계획, 일정, 숙소 등을 모두 현장에서 즉석으로 결정하는 방법입니다. 골자는 인간이 어디까지 무계획으로 생활이 가능한가.

대략 6개월 간 휴학하면서 정신적으로 여러 모로 해이해져 있었기에 약간이나마 정신을 환기시킬 계기가 필요했습니다. 사실 이 여행은 휴학 시작하고 수 개월 이내(즉, 작년 10월 안팎)에 실행될 예정이었으나 정작 실제 시기는 해를 넘겼습니다.

굳이 서울로 정한 이유는 꼭 가보고 싶었던 곳-선유도 공원-도 있었고 계획 없이 싸돌아다녀도 생존 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이유가 참... -┏


여행 자체는 별로 특출난 것이 없으니 여행 도중의 지극히 드문 스냅사진과 나름 심혈을 기울인 연출사진을 소개하는 선에서 포스트를 정리할까 합니다.

일정에는 주요 행선지를 기록해 두었지만 실제로는 거의 대부분 해당 행선지에 대한 언급이나 사진이 없을 겁니다. 이유는 숙박, 교통, 취식, 지름 등과 관련된 행선지라 특별히 언급할 필요가 없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N게이지 히노 프로피아를 뽑기 위해 3만원을 꼴아박고도 실패했다거나...]




#1. 2월 19일 : 울산 시외버스터미널 → 동서울터미널 → 국제전자센터 → 용산 전자상가 → 홍익대 → 영등포


울산에서 동서울까지 뛰어주신 KM949S 그랜버드.




고속버스에서는 안전벨트를 맵시다. 갑갑하다고 풀지 맙시다.




홍대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보게 된 거리 공연. '사운드박스'라는 이름의 밴드였는데 나중에 알고 봤더니 홍대 앞 '놀이터'에서 유명한 팀이었습니다. 유명세답게 실력은 출중 그 자체. 아니, 실력보다도 공연 자체를 즐기는 모습이 더 강했습니다.

ISO를 800까지 올렸는데도 셔터스피드는 나오지 않고 삼각대는 커녕 몸을 지지할 기둥도 없었던 터라 사진 상태가 말이 아닙니다. ISO 3200이 한계인 구형 카메라라 ISO 1600을 사용하는 것도 두려웠습니다. [...]




유흥가로 빼곡히 들어찬 홍대 거리에서 우연찮게 찾은 낡은 간판. 일부러 철거하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철거를 잊은 것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기묘한 물건임은 분명합니다.




#2. 2월 20일 : 영등포 → 인천 차이나타운 → 선유도 공원 → 홍익대 → 서울역


서울 여행에 뜬금없이 웬 인천인고 하니... 짜장면 먹으려고 잠깐 들렀습니다. [......]




이번 여행의 실질적인 주 목적지이자 2박 3일 일정 중 대부분의 사진을 찍은 선유도 공원.
폐정수장 시설을 유용한 공원으로 폐시설 특유의 독특한 느낌 덕분에 많은 컨셉 사진이 발굴되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하필 왜 <금연공원> 표지판을 찍었는고 하니...




이 녀석이 담배를 피우기 때문입니다. [...]










...선유도까지 가서 이런 걸 찍을 줄은 몰랐습니다.
여행 출발 전날 밤에 지인들과 잠시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 때 잠시 지나간 말이 씨가 되어 이런 말도 안 되는 사진이...-_-;;













어잌후 발이 미끄러졌네




지긋지긋한 관절염




살려줘




선유도 공원 촬영시 주의사항. 도심지에 위치해있고 컨셉 사진을 찍기 좋은 환경이라 공원 전체에 커플이 득시글거립니다.




......




......쉬벌.




극히 드물긴 하지만 가끔씩 사진에 제 진심을 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과정에 의해 만들어진 사진은 대부분 공감대를 얻지 못하고 평가절하되지만 저에게만큼은 각별한 의미로 남는 사진이 됩니다.

이번 사진도 그런 심정으로 찍었습니다. 씁쓸하더군요. 남들 다 암수 짝맞춰 히히덕거리는데 저 혼자 해골이나 찍고 있다니.













이 녀석을 멀찍이서 봤을 때는 해골이라고 혐오감을 표하던 사람들이 가까이에서 녀석이 담배 피는 모습을 보고선 빵 터지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







이리하여 반쯤 의도된 해골 연출사진이 완성되었습니다.
...폐시설과 해골의 씁쓸함을 나타내고 싶었는데 어째 찍다보니 개그만 부각된 것 같습니다.




실질적으로 이번 여행이 첫 출사인 미놀타 7D. 첫 여행에서 첫컷 에러라는 본색을 드러냈습니다. -_-

7D도 '구라 LCD' 보유기인데 다른 구라 LCD들과는 달리 실제 사진보다 LCD 화면이 더 구리게 나오는 경향이 있습니다. [...]
이번 여행에서의 사진을 정리하면서 이 점만큼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녀석의 LCD에서 괜찮아보이는 사진은 진짜 잘 나온 사진입니다. [........]




첫 출사라 카메라가 손에 제대로 익지 않았음에도 단단한 손맛으로 즐겁게 촬영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건 안 바라니 부디 고장만 나지 말아다오.







저기에다 폭탄 한 발만 떨구면 속이 다 시원할텐데.







삼각대가 없어서 선유도 공원의 명물인 야간의 선유교를 찍지는 못했지만 도심지에서 일몰을 찍을 수 있었던 것은 의외의 수확이었습니다.




#3. 2월 21일 : 서울역 → 충무로 카메라거리 → 종로 카메라골목 → 동서울터미널 → 울산 시외버스터미널


울산으로 돌아갈 버스를 기다리던 중.




서울로 올라올 때와 마찬가지로 KM949S 그랜버드가 마중을 나왔습니다.




경치 좋다.


...어째 2박 3일간 내셔널 해골그래픽을 찍고 온 것 같지만 넘어갑시다.



#4.
무계획 배낭여행이라는 문자 그대로 내키는 대로 행동했던 탓에 여러 모로 낭비되는 체력과 시간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복학-전쟁-하기 직전에 마음껏 행동하고 확실하게 추스리는 것도 나쁘진 않다고 봅니다.

서울의 도심을 돌며 인파에 떠밀리기도 했고 지도를 제대로 읽지 못해 길을 잃기도 하면서 바쁘게 돌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지켜보고 글로는 풀어내기 힘든 많은 것을 보고 느낀 여행이었습니다. 서울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지극히 당연한 일상이겠지만 저에게는 그게 일상이 아니거든요. [쓴웃음]

얻은 것과 잃은 것이 공존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얻은 것이 더 많았다고 평가하는 쪽이 좋겠죠. 아니, 하고싶은 것을 하고 왔는데 괜히 갔다고 후회하는 것은 이상하잖습니까.

Posted by Litz Blaze